▲정수옥과 친구들
이안수
지난 7월 30일, 대학교 3학년이라며 예약했던 정수옥과 그 친구들이 왔습니다. 하지만 4명 모두 풋풋한 대학생의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속으로 품었던 그 의문은 그날 밤 이 네 명의 '늙은 대학생(?)'들과 수다를 즐기면서 풀 수 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정수옥은 대학교 2학년이었고 나머지 3명은 대학3년을 마친 휴학생들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동기인 이 네 명의 공통점은 자신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들을 찾아 열심히 삶을 실험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수옥은 고등학교 때부터 디자인과 이과 과목에 소질이 있었지만 졸업 후 좀 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는데 도움될 만한 이과쪽 전공을 택했습니다. 화학공학과를 다니면서도 금속공예공방에서 일을 돕거나 스스로 디자인한 제품을 선보이는 일들을 계속했습니다. 스스로 디자인한 제품 판매로 소질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패션디자인에 더 관심이 갔습니다. 그녀는 과감하게 대학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패션디자인과로 재입학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또래 학생들보다 '늙은, 그러나 행복한' 대학생입니다.
이아영은 문예창작학과에 톱으로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글을 쓰는 일이 배워서 되는 일이 아니며, 또한 글만 써서 먹고사는 것의 진입장벽이 적지 않게 높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단지 몇 명의 유명작가들만이 생계가 가능한 세계임도 알았습니다. 그녀는 3학년 때 휴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외국으로 영어연수를 갔습니다. 돌아오자마자 학교로 되돌아가는 대신, 영어학원을 개업했습니다. 그녀는 지금 행복한 영어학원 원장님입니다. 물론 작가의 길을 영영 접은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과정들이 모두 그 재료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던 김다영은 대학교 3년 때 휴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언니와 함께 의류 쇼핑몰을 창업했습니다. 개업 3년 만에 쇼핑몰은 어느 정도 안정권에 올랐습니다. 언니와 단 둘이서 모든 파트를 책임졌던 3년 동안의 동분서주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직원도 4명 고용했습니다. 친구들에게 가장 돈 많이 버는 버젓한 '사장님'소리를 듣습니다.
정수옥과 달리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던 김모아는 대학 3학년 때 휴학하고 금속공예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샵에서 그녀를 절실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았고 지금 그 영역에서 기초를 든든히 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졸업을 유보한 이 네 명의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정답이다. 대학이 결코 당신들의 행복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우리 대학들은 공급자 위주의 시장 마인드를 여전히 바꾸지 않고 있다. 매년 등록금을 인상하지만 교육 소비자인 학생들의 입장을 얼마나 절실하게 고민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대학들은 여전히 학생들, 즉 소비자를 끌어모으는 데만 관심이 있고 그들이 졸업한 후, 어떻게 사회의 벽과 부딪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은 전무하다. 대학등록금의 수백분의 일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산 전자제품 하나도 고장나면 공급자가 A/S를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대학들은 졸업 후 취직을 못해도 나 몰라라 한다. 대학이 관심있는 것은 당신들의 미래가 아니라 당신들이 매학기 내는 등록금이다. 대학이 삶의 정답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곳도 아니며 결코 졸업한 학생들의 미래 삶의 질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스스로 행복을 찾아 나선, '대학미필'의 당신들이 정답이다."내 삶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살아라저는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모두 입시에 일로매진하느라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황금 같은 시기를 야간학습으로 보내야 하고 모든 밤들을 지식을 외우느라 보내는 현실이 가슴 아픕니다. 그들이 면벽을 하고 외우고 있는 입시용 지식은 필요하면 언제든지 컴퓨터 자판으로 마법처럼 불러낼 수 있는 것들입니다. 공부외의 모든 것들을 포기한 대가로 그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지향하는 일류대학에 진학했다 하더라도 모두가 고등학교 때처럼 공부와 연구에 치열한 것도 아닙니다.
제 눈에는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스스로 원하는 삶이 아니라 누군가가 원하는 삶, 혹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스스로의 행복을 위한 선택으로 되돌아 갈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알렉스와 샘이 아프리카 오지를 여행하는 것, 호주의 많은 젊은이들이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으로 가는 대신, 세상을 경험하는 일, 정수옥과 그 친구들이 대학 졸업을 유보하고 스스로 사업가가 되어서 세상의 파고와 맞서고 있는 일 등을 내 삶의 진정한 주인공인 나를 위한 주체적인 삶의 한 단면으로 여깁니다.
세칭 일류대학 출신을 선호하는 기업의 신입사원 모집요강 자격을 갖추기 위해 고등학교부터 다른 모든 활동을 유보하거나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귀한 시간을 소비하는 올바른 태도일 수 없습니다. 자신 삶의 당당한 주인공으로서 '타인이 아닌 자신'이 행복한 그리고 '내일이 아니라 오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혼자서 가야 합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불과 진흙이 묻지 않는 연꽃같이,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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