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목다리를 벌린 여성의 생신기처럼 생긴 다산목을 보면 아이를 낳을 수 잇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김철관
이곳에서 잠시 발길을 돌려 유달산 노적봉(露積峰)으로 향했다. 노적봉과 시민 종각으로 가는 입구에 들어서면 '다산목(多産木)'이 보인다. 여성이 흉측하게 사타구니를 중심으로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이 나무는 다산을 이루게 한다는 인근 주민의 믿음의 대상으로 은밀하게 보존돼 외지인에게 노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 10월 새천년 시민 종각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외부로 드러났다. 실제로 이 나무를 쳐다보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고 있다. 그 영향으로 인근 주민들의 출산율이 높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관광객들 사이에는 여자나무(여인목)로 불러지고 있으나 오랜 전부터 다산목으로 전해오고 있다. 수종은 팽나무로 150년이 넘은 어미나무 뿌리에서 싹이 나와 성장해 현재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다산목을 지나 노적봉과 새천년 시민의 종이 있는 종각으로 향했다. 노적봉은 해발 60m의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에는 1597년 10월부터 1598년 2월까지 목포에 머물렀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슬기가 돋보인 곳이었다. 충무공은 적은 군세로 많은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이 봉우리를 짚 마름으로 덮어 군량미를 쌓아둔 노적(露積)처럼 꾸몄다. 우리 군사가 많은 것처럼 속여 왜군이 함부로 쳐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일이 있는 뒤로 이 봉우리의 이름을 '노적봉'이라고 불렀다. 왜적들은 "저렇게 많은 군량을 쌓아 뒀으니 군사들이 얼마나 많겠느냐"며 도망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충무공의 뛰어난 전술이 돋보이는 진도의 강강술래, 영산강의 횟가루, 울돌목의 쇠줄 등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노적봉에서 200미터을 지나면 새천년 시민 종각이 나온다. 2000년 10월 완공한 시민 종각 현판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 친필로 쓴 현판이었다. 현판을 보고 있노라니 서거 1주기(8월 18일)를 맞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문득 생각났다. 나도 서거 1주기 추모위원으로 참여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