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야, 찐빵이 아니라 '개찐빵' 이잖아

'빵순이 아내' 위해 난생처음 빵 만들기에 도전했습니다

등록 2010.08.23 21:11수정 2010.08.2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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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했다 몽실몽실한 찐빵을
기대 했다몽실몽실한 찐빵을정수권

며칠 전, 밀가루와 마시다 남은 막걸리로 쉽게 찐빵을 만들 수 있다는 어느 분의 글을 봤다. 읽어보니 만들기가 쉬울 것 같아 언제 한번 만들어 봐야지 하면서 생각했던 것을 토요일 아침, 아내는 외출하고 혼자 심심하던 차에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빵순이 아내를 위해 직접 찐빵을 만들다


미심쩍어 인터넷으로 이곳저곳을 살펴보니 만들어진 빵의 사진은 모두 먹음직하게 보였지만 의외로 재료와 만드는 방법은 다양했다. 그래도 많은 재료가 들어가는 것이 맛도 있고 영양도 좋을 것 같아 꼼꼼히 메모하여 마트로 갔다.

밀가루(강력분+중력분), 팥, 호두, 황설탕, 막걸리, 우유, 식소다, 베이킹파우더, 소금. 그 외 이스트. 이스트는 요즘 팔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밀가루가 강력분이 있고 중력분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으며 베이킹파우더도 생소하여 어떤 작용을 하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보이는 대로 장바구니에 찾아 담다가 아내한테 전화를 했다.

"황설탕하고 소금 집에 있나?"
"하하하…."
"왜 웃노?"
"정말 만들 수 있겠어요?"

찐빵 재료 작업 준비 완료
찐빵 재료작업 준비 완료정수권

우리 집은 몇 년 전부터 아침식사를 밥 대신 빵으로 하고 있다.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빵으로 매일 먹어도 좋다는, 빵을 너무나 사랑하는 '빵순이 아내'의 제안에 따라 아침만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나는 처음에는 영 못마땅했으나 아이들도 괜찮다고 하고, 그것도 매일 먹으니 또한 먹을 만했다. 제철에 나온 과일과 감자, 고구마, 호박 등 이것저것을 채소샐러드와 곁들이다 보니 이제는 밥보다 좋고 어느덧 삶은 계란도 소금 없이 잘 먹는다.


그러다가 어느 날 부터인가 찐빵을 주문하여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여름철에는 날이 더워 배달 과정에 변질을 우려해 주문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찐빵 생산자와 통화하는 아내의 걱정스런 목소리를 옆에서 듣고 그러면 내가 직접 만들어 보겠다고 했었다.

보고 또 보고 반죽이 제대로 부풀어야 하는디...


자, 도전! 지금부터 작업 시작이다. 만드는 과정을 적은 종이를 식탁에 펼쳐 놓고 준비한 재료를 모두 동원하였다. 밀가루 얼마, 막걸리 2컵 설탕 몇 숟갈에다 식소다 한 스푼. 그러나 이게 보기보다 쉽지 않았다.

평소에 주방엔 얼씬도 않다가 갑자기 하려니, 필요한 그릇도 일일이 챙겨야 하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소금을 찾으며 허둥대다가 그만 '철퍼덕!' 하고 밀가루 담은 양은그릇을 둘러엎고 말았다. 선풍기 바람에 날린 밀가루로 주방과 거실이 하얗게 되었다. 글자 그대로 난분(亂粉)이었다.

갑자기 땀이 났다. 그리고 열이 확 올랐다. 청소기로 대충 정리를 한 후, 에라 모르겠다. 적어놓은 메모는 보지도 않고 그릇에 담은 밀가루에 설탕 등 모든 재료를 눈대중으로 대충 집어넣고 바로 막걸리와 우유를 부어 반죽을 시작했다. 왠지 실패할 것 같았다.

보롱이 기다리다 지쳐
보롱이기다리다 지쳐정수권

외출했던 아내가 돌아왔다. 온통 널부러진 주방을 보고는.

"어휴 내가 못살아. 왜 갑자기 찐빵을 만든다며 이 난리고?"

감당하지 못할 일을 벌여서 쩔쩔매고 있던 차 마침 잘됐다 싶어서

"저기 물에 담가놓은 팥 좀 삶아줄래."

그리고는 전기장판을 찾아오라, 이불을 내어달라는 둥, 이것저것 시켰고 뒷정리도 부탁했다. 이제 숙성을 시키기 위해 반죽을 그릇에 담아 비닐로 밀봉한 후, 군에 간 아들 방에다 보일러 온도를 높여 방바닥을 따뜻하게 하고 그것도 부족해 전기장판에 이불까지 덮어 씌웠다. 오전부터 시작한 찐빵 만들기가 점심도 거른 채 저녁이 다 되었다.

'내 두 번 다시 찐빵을 만들면 성을 간다.'

반죽이 발효될 때 엄청 부풀어 오른다는 말에 혹시나 그릇이 넘치지나 않을까 염려해 몇 번이고 들여다보다가 피곤하여 거실에 드러누워 그대로 잤다.

이게 바로 '개'찐빵, 아...허탈하다

찜솥 찐빵을 찌고 있다
찜솥찐빵을 찌고 있다정수권

아침 일찍 눈을 뜨자마자 작은방으로 갔다. 한여름 방안은 찜질방처럼 후끈했다. 생전 처음으로 만드는 찐빵, 제발 잘 부풀어 올랐으면 하는 맘으로 살며시 이불을 제치고 뚜껑을 열었다. '에게, 이게 뭐야?' 반죽이 부풀기는커녕 도로 쪼그라들었다. 아! 허탈했다. 이게 아닌데.

"이제 찐빵 장수들은 당신 때문에 다 굶어죽게 생겼네" 하며 약간의 기대를 하고 들어온 아내도 실망했다. "내 그럴 줄 알았다"는 아내와 서로 쳐다보며 어이없어 크게 웃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아내가 한 마디 더했다.

"그게 하루아침에 되나."

찐빵이야 개떡이야 참 못났다
찐빵이야 개떡이야참 못났다정수권

태산 같은(?) 팥 앙금이 아까워 그래도 혹시나 하고 몇 개를 만들어 쪄봤다. 개나리, 개복숭아, 개살구처럼 못나면 '개'를 붙인다했던가. 김이 서린 몽실몽실한 하얀 찐빵을 생각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새카만 개떡이 되었다. 맛은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씁쓸한 일요일 아침식사였다.
#밀가루 #팥 #호두 #막걸리 #설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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