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질실> 겉그림.
살림biz
기업은 브랜드 이미지가 타격을 입지 않도록 좀 더 값싸고 신선한 포장지-이를테면 환경이라거나 나눔이라거나 비주류 문화와 같은-를 끊임없이 만드는 일에만 전념하면 되는 것이다. 아웃소싱한 기업에서 아동을 고용하거나 고용계약이 없거나 지극히 비인간적인 조건으로 고용을 하더라도 모든 것은 아웃소싱 회사의 잘못으로 돌리면 되는 것이다.
좀더 기업하기 간편해졌다. 물론 종종 사실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언론을 장악해버리면 그들의 목소리는 대중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이게 오늘날 기업들의 생존 형태이다.
꿈이나 허무맹랑한 자의 잠꼬대가 아니다. 서구사회에서는 노엄 촘스키를 잇는 석학으로 불린다는 나오미 클라인의 <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에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이 책은 이처럼 브랜드의 진실을 전면으로 드러낸다. 그것도 나이키, 스타벅스, 바디샵, 디젤과 같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브랜드의 사례를 통해서 말이다.
게다가 첨부되어 있는 방대한 분량의 주석과 그래프는 이 사례들이 거짓이 아니라 진실임을 뒷받침하고 있으니 이쯤되면 입이 떡하고 벌어진다. 내가 신는 나이키 운동화와 내가 늘 마시는 스타벅스 커피에 이런 잔혹한 비밀이 숨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게다가 이러한 브랜드 사회가 앞으로의 경제를 더욱 주도할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면 숨이 턱하고 멈추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오미 클라인은 이 숨 막히고 잔혹한 진실을 타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뿐더러 먼저 실행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정부나 기업에 대항하면서 반기업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들에 대한 소개가 이 책에는 제법 자세하게 나오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이전의 시위방식과는 다른 재미있는 시위방식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즉흥예술을 가장한 기업광고판에 낙서하기라거나 반기업관련 소식지 발행, 노래 만들기 등등 책 속에서 소개되는 반기업운동의 방식들은 매우 다양하고 때로는 기상천외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이 중 몇몇은 살짝 도용해서 우리나라 시위문화로 정착시키고 싶을 정도다.
물론 이런 방법만으로 기업과 브랜드에 그리고 이를 감싸는 정부에 강펀치를 날릴 수 없다. 그래서 나오미 클라인이 제안하는 방법은 무역협정, 지방자치단체의 선택적 구매, 윤리적 투자기준, 해외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정부대출 및 보험, 정부의 무역개입을 통한 규제 등이다.
기업에 너그러운 대한민국에 반기업정서 싹틀까사실 좀처럼 반기업 정서가 싹트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상당히 낯설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왜 이런 일이 필요하지?'라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하긴 수천억의 세금포탈과 편법 승계, 주가조작 등을 한 최대의 경제사범도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치졸한 명목으로 풀어준 나라가 아니던가?
이번 광복절에도 수많은 양심수 대신에 경제사범을 우선적으로 석방해준 기업에는 한없이 너그러운 대한민국에서 반기업 정서가 싹튼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2000년에 저술된 이 책이 10년이 지난 2010년에야 대한민국 독자들에게 전해지는 것인지도….
그러나 이제 우리는 어렴풋이 안다. 갤럭시S가 아이폰에게 승리를 거두고 스마트 폰 시장을 선점한다고 한들 우리의 밥상에 고기반찬 하나 더 놓이는 게 아니고 대한민국 경제사정이 좋아지는 것도 아님을 말이다.
어렴풋이 알 때 확실히 발목을 잡을 무언가가 필요하다. 나는 이 책이 대한민국의 반기업정서의 불씨에 불을 지르길 바란다. 막연히 나쁜 삼성이 아니라 나쁜 기업만 챙기는 정부를 향해 짱돌 하나 던질 수 있을 정도의 불씨를 질러주기 바란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브랜드를 의심하고 브랜드를 파헤치는 날카로운 시각과 기업을 향한 과감한 행동력이 필요하다. 더 이상 기업의 발전이 국가의 발전이고 삼성을 사용하는 게 애국이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