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불 앞에서 기도를 하는 84세 할머니의 정성은 어디서 올까? 모성!
오문수
높이 23미터에 달하는 미륵대불 앞으로 간다. 미륵대불은 1996년에 완공된 봉은사의 성보로 1986년 영암 큰스님께서 발원하여 봉은사 사대부중 1만 명 이상의 동참으로 이루어진 대작불사다. 전통적인 백제 계열의 미륵하생적인 신앙을 표현하는 기법으로 조성되었고, 석재도 미륵신앙의 중심지인 익산에서 가져왔다.
미륵전과 대불 사이는 50미터쯤 떨어져 있을까. 지금 시간은 가장 더운 오후 2시. 하루 종일 쨍쨍 내리쬐는 햇빛에 달구어진 대리석에서 이글거리는 아지랑이가 올라와 시야를 가린다. 이 무더위에 하얀 옷을 입은 할머니와 또 다른 할머니가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다.
가까이 가볼까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아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현판에 씌어진 글씨 '판전'. 어딘가 범상한 것 같은 데 모자를 쓴 스님 한 분이 안내판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호기심이 동한 나도 안내판으로 향한다.
판전은 대장경의 내용을 목판에 글자로 조각하여 종이에 인쇄하도록 된 인쇄용 목재 경전판이다. 일명 장경전·법보전이라 부른다. 법보(경전)는 불교의 3보 중 하나로 불교의 진리를 모아 놓은 곳이다.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으며 1855년 남호 영기율사와 추사 김정희 선생이 뜻을 모아 판각한 화엄경 소초 81권을 안치하기 위해 지은 전각이다.
후에 다시 유마경·한산시·초발심자경문·석가여래유적도 등을 더 판각하여 현재 3438점의 판본을 보관하고 있다. 판전은 봉은사에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특히 판전 편액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마지막 글씨로 유명하다.
이 현판의 크기는 세로 77㎝, 가로 181㎝이다. 김정희는 1852년(철종3) 북청의 유배지에서 풀려난 뒤 과천에 있는 '과지초당'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봉은사를 왕래하다가 1856년 10월 10일에 별세했다. 이 현판은 그가 별세하기 사흘 전에 썼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