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표 3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필자가 아파트 거래량과 가계 부채 증감액과의 상관관계 함수를 이용해 추정해본 결과 아파트 거래량이 거래 활성화 시기인 2000년대 초반이나 2006년 말 수준으로 늘어나려면 분기별로 32.4조 원(도표에서 가상의 경우)이나 늘어나야 한다.
그런데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의 올해 3~5월 가계 부채 증가량은 2.5조 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지금 DTI규제를 푼다고 해서 얼마나 가계대출이 더 늘어나 이미 주택수요가 고갈된 시장을 떠받쳐 줄 수 있겠는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즉, 이는 DTI 규제 완화 정도로 지금의 집값 거품을 떠받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방증한다.
이미 금융기관 또한 얼마나 과감히(?) 빌려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지금 금융기관들 입장에서는 부실 리스크가 훨씬 큰 기업대출보다는 그나마 주택담보를 잡을 수 있고, 아직까지 연체율이 크게 높지 않은 주택대출을 늘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도 과거 부동산 활황기처럼 주택대출 실적을 올릴 수 없는 상태다.
얼마 전 만났던 금융기관 관계자들도 "DTI규제가 풀린다 해도 과거처럼 주택대출이 늘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DTI규제를 풀었을 때 생각했던 약발이 통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심리적 마지노선까지 무너뜨려 버블 붕괴를 가속화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가계가 무너지면 국민경제가 무너질 수밖에이번에는 마지막으로 DTI규제 해제의 정책적 문제점을 살펴보자.
지금도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부채 규모가 140%를 상회해 세계 최고 수준인 상태에서 부동산 거품을 유지하기 위해 가계대출을 더 늘리라고 촉구하는 행태는 어처구니가 없다. 당장 전세계적 경제위기가 바로 미국 금융기관들이 소수민족 그룹 위주의 저소득층에게 무리하게 모기지 대출을 해준 '서브프라임론 사태'에서 촉발된 마당에도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당장 급한 불을 끄겠다는 부동산 기득권 세력의 근시안적 탐욕의 발로라 볼 수밖에 없다. 개인의 소득 대비 부채 규모를 제한하는 DTI규제는 서브프라임론 사태와 같은 약탈적 대출 관행으로부터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한편 금융시스템 위기를 보호하는 긴요한 장치다.
일부에서는 DTI 규제를 도입한 나라들이 많지 않다며 '불필요한 규제'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한국 금융권의 대출 실태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선진국 금융기관 대부분에서 개인에 대한 신용평가(credit rating)을 통한 대출이 정착돼 있는 반면 한국의 경우 신용평가보다는 담보대출 위주의 후진적 대출관행이 여전히 일반적이다. 따라서 DTI규제는 금융권이 자율적으로 신용평가를 통한 대출을 실시하지 않고 있는 한국 상황에서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이미 느슨한 금융규제로 부동산 버블 붕괴 과정에서 큰 위기를 맞고 있는 미국과 유럽 등의 선진국가들조차 금융 규제를 재강화하는 가운데 국내 DTI규제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마당이다. 그리고 DTI 비율이 이미 40~60%로 정해져 있었는데, 원리금 상환액이 소득액의 40~60%에 이르는 것도 매우 과도한 빚 부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더 늘리라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이번 DTI규제 해제는 '실수요자를 위한 것'이라는 정부 주장과 달리 투기수요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임이 너무나 명확하다. 구체적 근거로 정부 스스로 "소득 파악이 제대로 안 되는 자영자들 가운데는 그동안 소득증명 절차 때문에 집을 사지 못했다"며 "DTI규제 해제로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대목이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자영자소득파악위원회를 구성해 자영자소득을 파악하겠다고 했던 정부가 아직 온갖 핑계를 대가며 자영자 소득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기막힌 현실이다. 그런데 정부가 한 술 더 떠 이런 지하경제를 지상으로 끌어내고 탈세를 처벌할 생각은커녕 이들을 이용해 남은 투기가수요를 짜내려는 정부가 정상적인 것인가? 한마디로 제정신 아닌 정부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 투기적 가수요마저도 상당히 고갈된 상황이다. 이들 소득파악이 어려운 자영자들 가운데 부동산 작전 세력이 일부 있을 수 있으나 이들도 과거처럼 자신들의 작전이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들의 단타매매 작전이 성공하려면 자신들을 추격매수해줄 세력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인데, 이들이 작전을 구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추격매세수력이 없다면 오히려 그들이 덫에 물리게 될 공산이 커진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투기조장책'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정부가 부동산 자산가치 대비 대출 비율을 규제하는 LTV규제는 그대로 두면서 DTI규제만 푼 것은 정말 정부가 해서는 안 될 나쁜 짓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미 수도권 집값이 실거래가 기준으로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기존 LTV 비율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상황에서 금융기관을 위한 마지막 보호막은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유명무실한 구조조정으로 시장퇴출이 거의 일어나지 않은 건설업체들과 저축은행 등 금융업체들을 살리기 위해 DTI규제를 풀겠다는 것이다. 금융소비자로서 일반 가계는 미국 서브프라임론 사태와 같은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에 노출돼 파산해도 괜찮다는 식의 정부 태도에 치가 떨린다. 미안하지만 국민경제의 근간인 가계가 무너지면 결국엔 그 경제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어쨌든 정부가 DTI규제를 해제한 것은 그동안 '국내에는 부동산 버블이 없다'던 정부의 공개 립서비스와는 달리 실제로는 정부가 지금 부동산시장 상황을 매우 다급하게 보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궁지에 몰린 나머지 내린 패착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부동산 광고에 목맨 상당수 신문들에서 '강남 급매물 회수' '일부 아파트 들썩' '매도호가 상향 움직임' 등의 선동성 기사를 잇따라 내놓을 공산이 크다. 정부 투기 조장책과 언론의 선동보도 합작으로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기 위한 제물을 찾게 될 텐데 선량한 일반 가계가 속지 마시길 당부한다.
부동산 거품빼기,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요약하자면 이번 DTI규제 해제는 정부가 과거처럼 투기적 가수요를 불러일으켜 부동산시장을 살려보겠다, 일반가계를 제물로 삼아 건설업계와 금융기관을 떠받치겠다는 고육책일 뿐이다. 하지만 DTI규제 해제가 약발이 없음을 확인하게 되면 거품 붕괴는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DTI규제 완화로 실제 부동산 투기로 인한 가계부채가 크게 급증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설혹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는 기준금리 인상을 앞당기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당장 급한 불을 끄겠다고 내놓은 대책이 현 정부와 부동산-건설업계가 원하지 않는 패착으로 이어질 공산이 적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필자가 볼 때 정부가 노리는 마지막 부동산 폭탄 돌리기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건설업계와 부동산업계, 다주택 투기자들의 환호는 다시 한탄으로 바뀔 것이다. 그것을 확인하는 데는 3개월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온갖 빚을 동원해 만든 강력한 모르핀주사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기회복'이라고 국민들을 현혹시키면서 임기 내에만 무탈하면 된다는 식으로 거품빼기를 미루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서만 200조 원 이상이나 국공채 발행을 늘려 쏟아 부었는데도 부동산 거품 붕괴를 막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제는 중앙 및 지방정부, 공기업 가리지 않고 씀씀이와 부채를 줄여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면 각종 국공채 만기는 2012~2013년에 몰리게 돼 있다. 그 때는 빚을 갚아나가는 것만 해도 정신 없게 된다. 지금부터라도 거품을 빼서 충격을 분산해야 그나마 일시에 충격이 몰리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지금도 많이 늦었지만, 그나마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점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선대인 트위터 (http://twitter.com/kennedia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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