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특목고 허가, 정치적으로 결정하지 말아야

[주장] 전·후임 교육감 갈등으로 비화... 공청회 등 통해 머리 맞대야

등록 2010.09.02 11:10수정 2010.09.0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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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연속 수능 1등' 빛나는 이 성과는 광주교육계가 내세운 구호였다. 그닥 원론적인 고민에 빠져들지 않는 한 5년간 연속 수능 1등이라는 성과로 말하자면 커다란 자랑거리이지 않겠는가! 다소 씁쓸하기는 하나 살림살이로나 지역적으로나 넉넉하지 못한 광주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해 인재를 희망차게 키웠으니 우쭐 자랑할 만한 일인 것은 맞다.

 

그런데 '수능 1등'이라는 수식어 뒤에 뒤탈은 없었던 걸까? 한때 광주에선 '강제 보충수업' '자율학습' 폐지를 통해 학생들의 인권과 자율을 보장해 주려는 양식있는 교사들이 헌신적인 노력을 한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하고 말았다. 현장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동의를 전적으로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요자 현실에 어울리는 목소리가 못되었던 것이다.

 

그나마 성과라면 정직하지 못했던 관리수당, 부당징수 등의 상납관행들이 바로 잡혔다는 것.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몇 가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박제화된 것이긴 했으나 사교육비 부담 감소, 학교교육의 신뢰, 자기 경쟁력의 향상 등이 그것이다. 이런 기반이 최근에 와서는 적어도 고등학교에서 대학입시를 위해 책임져 주는 학교의 헌신적인 역할이 지역사회의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재 대학입학시험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선의의 뜻을 담고 강제적으로 학교에 머물러 있는 '학생인권'은 거대 담론일 뿐 개별적인 성취욕구는 입시라는 대의 앞에서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있다. 모든 학교에서 너도나도 가리지 않고 대학입시에 열정을 바치는 일은 이제는 실력을 지키는 광주의 자산이 되었다. 장점은 살리고 단점을 고칠 필요가 있다. 명분은 옳았으나 실속 없는 일이 되고 만 실용성은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평준화와 수월성교육의 논란 앞에 특목고의 필요성은 늘 제기된다. 대표적인 이유가 인재유출이다. 그러나 고교 인재유출보다 더욱 큰 문제가 있다. 지역의 대학에서 우수한 인재가 머무를 수 없다면 영구적인 인재 유출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역을 떠날 인재는 시기가 문제이지 특목고를 유치하더라도 떠난다는 것이다. 물론 학연을 만들어 주는 장점(?)은 있겠지만. 그러나 그 인재가 지역으로 다시 돌아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정치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정말, 특목고 설립이 필요할까? 적어도 이렇게 경쟁을 미덕으로 삼는 사회분위기 아래서는 그렇다. 아니다. 실력광주가 인재를 평준화한 환경에서 이루어졌다는 입장에서 광주는 특목고가 필요 없다고 하면 어떤가? 지금 광주에서 '외국어고등학교(이하 외고) 허가'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건실한 논쟁은 없고 비난이나 염려만 난무하다.' 내밀한 관심을 두지 않으면 표면적으로는 현임 안순일 교육감과 새 장휘국 교육감 당선자간의 업무영역에 대한 갈등쯤으로 이해하기 쉽다. 과연 그럴까?

 

현 교육감은 자신의 공약사업이기 때문에 외고 추진을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주장이다. 지난 2006년부터 지금까지 총 4회에 걸쳐 외고 설립 공모를 시도해 모두 무산됐고, A여고만이 유일하게 신청한 학교이니 임기 4개월여를 남겨둔 시점에서 외고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4번이나 신청한 일을 굳이 칭찬받지 못할 과정으로 마무리를 한다는 것이 속절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결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다른 의미가 숨어있을 것이라고들 한다. 특히 A여고는 이미 신청했다가 철회한 학교이지 않는가. 그러므로 더욱 절차적 민주주의를 따져야 한다. 재정자립도가 어떤지 지역으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해의 과정이 필요하다. 나아가 그 재단의 투명도나 지역사회의 신뢰도를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목고를 허가하는 데 있어서 재정자립도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단순하게 지정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사학의 부패지수를 어느 정도 관리 감독했고, 앞으로도 감독의지를 가질 것이냐의 책임 아래 내려질 결정이어야 한다. 이런 요인 때문에 더더욱 현 교육감이 재선되었다고 하였더라도 논란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지 않겠는가.

 

아둔한 표현이지만 학운위 3000여 명의 선거인단으로 당선된 교육감과 100만이 넘는 직선 교육감은 다르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시민의 힘이 실린 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두 배 가까운 격차로 당선된 점도 눈여겨 볼 일이다. 보혁의 갈등이 아니라 합리적 상식과 비상식의 갈등으로 번진다면 자칫 어느 쪽도 적을 만들지 않았다는 현 안순일 교육감은 균형추를 잃고 추한 퇴장의 길을 걸어갈 공산이 크다.

 

솔직히 외고 지정에 대해 신중하자는 장휘국 당선자의 태도는 1등만 칭찬받는 광주교육을 깊이 성찰하자는 제안이다. 1등 뒤에 99명의 희생이 뒤따른다는 어둠을 보자는 것이다. 그의 슬로건처럼 경쟁에서 상생을 찾자는 것 아닌가. 따지고 보면 '여러 줄 세우겠다'는 현 안순일 교육감의 재선 전략과도 통하는 말 아닌가. 왜 외고를 둘러싸고 파행을 불러오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더더욱 외고문제는 교육계의 수장들이 정치적으로 결단낼 문제가 아니다. 시민의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다시금 공청회를 통해 지역의 인재를 어떻게 기를 것인가, 필요하다면 어떤 형태의 학교를 세울 것인가, 설립주체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등등 지역과 머리를 맞대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자치시대에 걸맞은 역할을 할 때 교육감의 사회적 역할은 제대로 만들어질 것이 아닐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특목고 설립 문제는 중앙중심으로 인력을 집중시키자는 거대한 회전축에 휘말려드는 일인데도 지역을 살리는 방안이 무엇인가에 대한 본격적인 논쟁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더더욱 외고 문제는 교육계의 수장들이 정치적으로 결단낼 문제가 아니다. 시민의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다시금 공청회를 통해 지역의 인재를 어떻게 기를 것인가, 필요하다면 어떤 형태의 학교를 세울 것인가, 설립주체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등등 지역과 머리를 맞대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이제는 단일 사안으로 한정되는 외고 설립 문제를 넘어 광주교육이 왜곡되게 쌓아온 실력 1등의 명성을 새롭게 광주만의 교육스타일을 찾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광주가 쌓아올린 위업을 깎아 내리고자 제언하는 것은 아니다. 누가 잘 했느냐를 따지는 진실게임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정말로 진실을 담는 교육의 고민을 누가 하느냐를 따지자는 것이다. 자칫 외고라는 학교 설립이 '빛 좋은 개살구'가 되지 않아야 한다.

2010.09.02 11:10ⓒ 2010 OhmyNews
#외고설립 #학교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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