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의 배추텃밭에 먹을 만큼 심어 놓은 배추, 이 배추가 지금 금값이 되어 모든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종락
'배추'라는 두 글자가 가을녘의 대한민국 사회를 흔들고 있다. 배추 한 포기에 1만5천원이 넘는다는 시장의 경보는 급기야 대통령의 양배추 김치, 중국산 배추 긴급 수입에 이어 정치권의 4대강 사업 논쟁으로 뜨겁게 달구어지고 있다.
들녘이 누렇게 익어 가는 가을의 농촌. 콤바인 소리 요란하게 벼 수확은 시작됐지만 주름 패인 농민들의 얼굴엔 수심과 먼지가 그득하다. 해발 320미터의 고랭지 포도를 재배하는 경북 상주시 화서면과 인근 지역 일대 분위기도 그러하다.
'갈아엎을 때는 언제고...' 오랜 세월 천대받던 배추의 보복추석을 전후해 과수 가격 폭등과 폭락을 겪은 농민들은 이상기후로 인한 미숙 과일과 때이른 추운 날씨로 더욱 속을 태우고 있다. 그에 비해 배추대란에 대해서는 그렇게 큰 일로 여기지 않는 표정이다. 한 마디로 김장철이 시작돼 봐야 안다는 거다.
겉으로는 그래도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한 포기에 겨우 몇 백 원에 거래되던 배추 가격이 이렇듯 폭등한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 같았다. 이래저래 어수선한 농심이다. 사실 일정 부분 가공을 통한 절임배추 등의 특화작물로 이득을 본 몇몇 지역을 제외하곤 배추는 농촌에서 버림받은 작물이었다.
밭떼기, 차떼기로 실어가는 배추는 최종 소비자가의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200원에서 500원 사이에서 거래되었고 씨앗과 비료, 인건비도 나오지 못하는 배추는 성난 농심의 분풀이 대상으로 전락되었다.
오랜 세월 천대받던 배추가 보복한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쌀값이 이렇게 폭등하면 난리가 날 것이라는 말에 절대 그럴 리 없다는 반응이다. 최근 더욱 떨어지는 쌀값에 대한 농민들의 마음은 거의 절망적이다. 그 해 배추 가격이 폭락하면 다음해는 그만큼 폭등하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나, 남들 많이 심을 때 따라하면 망한다는 속설 속에 농심은 투기의 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어느 한 쪽이 피해를 당해야 다른 한 쪽이 이득을 보는 농사 시장의 흐름을 읽고 기민하게 대처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현실, 농민들은 고된 농사와 판매 수익을 위해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더욱 참담한 것은 다 함께 풍년과 수확의 기쁨을 나눠야 할 농심이 이제는 어느 한쪽이 피해를 입어야만 다른 한쪽이 이득을 보는, 소박했던 농심은 비정한 시장 논리에 의해 여지없이 망가지고 있다.
길가에 배추심은 농가 "밤잠 자기 겁난다"농산물의 시장가격은 대개 농협의 공판장을 통한 출하로 결정된다. 최근 들어 1사1촌 운동 등의 직거래 등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농민은 생산량의 90% 이상을 공판장을 통한 판매에 의존하고 있다.
과수의 경우 전체 판매 금액의 약 9%(경매 수수료 7%, 농협 1%, 상하차비용 1% 등)을
제외하고 받는다. 아니면 유통업자들이 직접 나서는 차떼기와 밭떼기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중간에서 몇 단계 이득을 챙기는 중간 유통업자들 때문에 생산자인 농민과 최종 소비자만 피해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인근 화북면에서 올해 천 평 정도의 배추 농사를 짓고 있는 한 농부는 치솟는 배추 가격에 업자와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고 한다. 워낙 하루하루 다르게 가격이 널뛰다 보니 섣불리 가격 흥정을 못한다는 말이다. 배추를 길가에 심은 사람들은 "밤잠 자기가 겁난다"며 농담 아닌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배추대란을 천재로만 돌리기엔 아직은 밝혀야 될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재배 면적 축소와 정부의 미온적 대처는 명확하게 책임 소재를 물어야 할 것이다. 결국 배추대란이 한바탕 태풍이 될지, 아니면 어느 정도 수그러들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배추대란보다 무서운, 지속적인 이상기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