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0.10.02 19:26수정 2010.10.02 19:26
지난 30일(목), 여성문화유산연구회의 답사에 참가해 '북한산둘레길'에 있는 '흰구름길구간'을 집중해서 걸었다. 북한산 둘레길은 현재 총 44㎞, 13구간이 개발되어 있다고 한다.
지하철 4호선 길음역 2번 출구로 나와 왼쪽에 있는 건널목을 건너 1117번 버스를 타고 약 20분쯤 걸려 정릉동 솔샘터널 위에서 내렸다. 터널 앞도 아니고 지나서도 아니고 위다. 터널위로 버스가 올라가서 조금 놀랐다. 버스는 터널 위를 유턴해 다시 내려가는 모양이다.
뉴타운 아파트 옆은 곧바로 둘레길로 연결되어 있다. 길에는 뉴타운이 들어서기 전에 있던 '미향마을'의 옛 모습들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곳은 '북한산생태숲'이 시작되는 곳이라 길목에 심겨져 있는 야생초들이 눈길을 잡았다.
정말 못생긴 벌레까지도/ 없었으면 하는 벌레까지도/ 지상에 있는 암컷은/ 모두 어머니이시다
시와 사진이 있는 길을 조금 오른 후 생태공원 앞에서 동네의 유래에 대한 해설부터 들었다. '길음'은 '좋은 소리가 들린다'란 의미로, 소나무와 샘이(솔샘)어울려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가 좋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산을 압도할 것 같은 아파트 숲 앞에서 그 바람소리만큼은 여전히 동네를 감쌌으면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흰구름길 구간을 솔샘터널에서 시작하는 것은 높은 지대에서부터 낮은 지대로 걷는 형상이기 때문에 걷기에 덜 힘들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둘레길이라고 하면 평지를 생각해서 가끔 구두를 신고 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북한산둘레길에서는 위험한 일입니다."
"등산은 위만 쳐다보고 가기에 주위를 둘러 볼 여유가 부족하지만, 둘레길이니만큼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돌아보고 가을을 만끽하라"고 한다. 하지만 산속에서 가을을 느끼기에는 아직 모든 것이 푸르렀다. '북한산생태숲'으로 들어가지 않고 옆길로 이어져 있는 둘레길은 적당한 굴곡의 오솔길이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걸어도 숨차지 않을 길이다. 숲속 오솔길을 10여분 오르내리니 뿌연 안개 속에 수락산과 불암산이 손을 잡은 듯 이어져 있는 모습이 들어온다. 그 아래 아파트와 단층주택들이 높낮이를 달리하고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곳을 바라보며 북한산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서울을 감싸고 있는 산에는 외사산과 내사산이 있다. 내사산은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으로 조선 때 수도 한양을 보호하기 위해 성곽으로 이어져 있다. 외사산은 북쪽에 북한산, 남쪽은 관악산, 동쪽은 용마산, 서쪽은 덕양산으로 연결되어 있어 천혜의 입지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 북한산은 서울특별시 북부와 경기도 고양시 경계에 있으며 백두산, 지리산, 금강산, 묘향산과 함께 대한민국 오악에 포함되는 명산이라고 한다.
북한산의 주봉 백운대(836.5m)는 인수봉(810.5m)과 만경대(787.0m)와 함께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조선 영조 때(1745년) 발간된 북한지를 보면 고구려 때부터 이미 '북한산군'이란 지명으로 불렸다는 기록이 보이고, 백제 때에도 '북한산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또 숙종과 철종 때 세운 비석들에도 '북한산'이라고 적혀 있단다. 따라서 일부에서 '삼각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북한산의 대표적인 세 봉우리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크고 작은 30여 봉우리를 모두 아우를 때는 '북한산'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한다.
도심에 가깝게 있는 북한산은 연평균 탐방객이 500만에 이르고 있어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단다. 그러나 길을 잃을 만치 깊은 산이 아니라서 정규탐방로를 무시한 샛길이용이 잦아 환경이 훼손되고 동식물서식지도 많이 파괴되어 있어 보호가 필요한 실정이라고 한다. 둘레길은 높은 곳을 오르기 힘든 사람들에게 산속을 걸을 수 있는 즐거움도 주고, 샛길을 자제하게도 할 수 있어 좋단다.
굴곡이 있는 산 속길 10여분을 느슨함과 긴장감을 적당히 버무리며 걸었다. 그리고 빨래골에 당도했다. 이곳은 북한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의 양이 많은 곳이라 동네 이름도 '무너미'(수유동)였다. 대궐의 궁중무수리들이 빨래터와 휴식터로 이용하면서 '빨래골'이란 명칭이 붙게 되었고, 동네 주민들도 이곳을 빨래터로 사용했다고 한다. 북한산 중에서 가장 깊은 계곡에 해당 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깊어 보이지도 않고 물도 많아 보이지 않는다.
궁중무수리들이 여기까지 어떻게 빨래를 들고 왔을까, 걸어서 왔을까, 무엇을 타고 왔을까, 정말 이런 계곡에서 빨래를 했을까 등등 고개들이 갸웃거려진다.
하기야 우리 어렸을 때는 학교에 가기위해 오리(약 2㎞)걸음은 보통이었다. 40여년 전만해도 볕 좋은 여름날이면 빨랫감을 들고 엄마와 함께 수락산 계곡에 올라 빨래를 한 적도 있다. 너른 바위에 빨래를 널고, 마르는 동안 계곡물에 몸 담그고 놀았다. 그리고 빨래가 꾸덕꾸덕 물기가 빠질 때면 산을 내려왔다. 그 때는 여름밤이면 중랑천에서 어른들이 목욕을 하기도 했다. 지금의 중랑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못 믿겠다고 한다. 그러니 하물며 100여년 이전의 일을 어찌 다 느낄 수 있겠는가.
'빨래골공원지킴터'건물에서 왼쪽으로 조금만 오르면 빨래골 표지석이 놓여있다. 둘레길을 가려면 다시 내려와 건물을 끼고 오른쪽으로 오른다. 화계사입구까지 0.9㎞남았다는 이정표도 보인다.
간간히 동네에 담긴 유래들을 들으며 걷는다. 둘레길은 오름길이 힘들다 싶을 즈음이면 곧이어 내림 길이 나왔다. 땀이 솟을 새가 없었다. 빨래골에서 10여분 걸으니 '구름전망대'가 나왔다. 난간에 칠 공사를 하고 있다. 단체를 소개하고 양해를 구하니 잠깐의 오르는 시간을 내준다. 나선형 나무계단을 오르니 그곳에서 바라다 보이는 모든 곳이 무릉도원 같다. 북한산의 만경대와 인수봉, 도봉산의 오봉들과 선인, 만장봉, 수락산, 불암산, 그리고 연이어 있는 산들이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한다. 그 안에 사람살이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흰구름길 구간에는 화계사가 있다. 조선 중종(1522)때 창건되었고, 덕흥대원군, 흥선대원군 등에 의해 중수될 만치 왕궁의 비호를 받으며 발전해온 사찰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왕가의 사람들이 와서 머물렀던 '보화루'라는 건물이 남아있고, 헌종 비 홍대비가 내린 '드므'도 대웅전 앞에 놓여있다. 드므란 소방용 물을 담아 두는 놋 항아리를 이른다. 창덕궁의 인정전, 선정전, 대조전 것과 같다고 한다. 종각 안에는 큰 종과 조그만 동종이 같이 걸려 있는데 작은 동종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흰구름길을 거꾸로 돌고 있는 중이라 나갈 때 화계사 정문을 통과했다. 이어지는 둘레길은 정문을 나와 일주문 밖으로 나가기 바로 전에 왼쪽으로 오름길이 나온다. 조금 숨찬 길이다. 그렇게 오르내리며 왼쪽으로 본원정사를 끼고 내려오니 주택가와 찻길이 나온다. 도로를 조금 걷다 길을 건너 다시 산으로 들어갔다. '일성이준열사묘역'으로 가려면 '북한산둘레길(우이동)'과 '둘레길탐방안내센터'라고 쓰여 있는 이정표의 길을 따라야 한다. 약간의 산길을 걸어 다시 도로와 아담한 단층 주택의 골목에 들어서니 북한산의 삼각봉이 코앞으로 다가선다.
'한천로197길'을 따라 골목을 나오면 찻길이 나오고 길을 건너면 '순례길구간'의 일부인 '단주유림선생묘역'입구다. 이준열사 묘역은 왼쪽 찻길을 따라 가면 더 빠르지만 유림선생묘소의 산길로 접어들면 섶다리와 계곡을 만난다. 왼쪽에 있는 섶다리를 건너고 태극기변천사 전시물을 지나 다리를 건너 돌면 이준열사 묘역의 홍살문이 나온다. 채 10분이 안 되는 거리다. 이준열사의 묘소로 오르는 길에는 열사의 얼이 깃든 명문들이 새겨져 있었다.
인간이 하고 하는 일은 하고 하고 또 하여야 한다. 하고 하고 또 하다가 후인이 다시 하고 하여야 한다
무엇을 '하고 또 하고, 후대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 목표물이 빠져 있어도 알만하다. 열사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애절함이 그곳에 다 들어 있는 듯,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글을 읽으며 묘역에 들러 참배를 했다.
묘역에서 오른 쪽 길로 나오면 흰구름길 구간의 시작점인 아치조각문을 만난다. 수유리인 이곳에서 시작해 정릉동 솔샘터널로 넘어가는 길을 우리는 거꾸로 잡아온 셈이다. 도로 맞은편에는 통일교육원이 있다.
미향마을의(길음동)전설로 시작해 애국지사의 묘역에서 참배를 하는 것으로 북한산둘레길의 흰구름길 구간 걷기를 마쳤다. 둘레길 안내표지판과 지도가 곳곳마다 세세하게 세워져 있어 산속 둘레길에서 헤맬 일은 없을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둘레길은 대체로 순했다. 한두 군데를 빼고는 완만했다. 거기에 산속에 들어있는 문화재도 돌아보는 재미를 곁들이니 2시간여 걸리는 산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2010.10.02 19:26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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