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420)

― '여타의 인천 기념조각', '여타의 작품들' 다듬기

등록 2010.10.04 16:40수정 2010.10.0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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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여타의 인천 기념조각

 

.. 어찌하여 외국 장군의 동상은 이처럼 정성들여 멀쩡하게 잘 만들면서, 여타의 인천 기념조각들은 그처럼 조잡할 수 있을까? ..  <최원식-황해에 부는 바람>(다인아트,2000) 92쪽

 

"외국(外國) 장군의 동상"은 "외국 장군 동상"이나 "나라밖 장군 동상"으로 다듬어 줍니다. '조잡(粗雜)할'은 '엉성할'이나 '형편없을'이나 '못날'이나 '꾀죄죄할'로 손질합니다.

 

 ┌ 여타의 인천 기념조각들

 │

 │→ 다른 인천 기념조각들

 │→ 이밖에 다른 인천 기념조각들

 │→ 이곳 말고 다른 인천 기념조각들

 │→ 나머지 모든 인천 기념조각들

 │→ 다른 데에 있는 인천 기념조각들

 └ …

 

보기글에 쓰인 토씨 '-의'는 '곳에 있는'이나 '데에 있는'이나 '자리에 있는'을 밀어내고 끼어들었습니다. 글쓴이가 토씨 '-의'를 붙인 까닭은 당신 뜻이나 느낌을 좀더 짙게 나타내고 싶어서가 아닐는지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붙일 수도 있지만.

 

 ┌[보기글] 여타 + 의 + 무엇

 │

 ├[다듬기 1] 다른 + 곳에 있는 + 무엇

 ├[다듬기 2] 다른 + 무엇

 ├[다듬기 3] 다른 + 곳에서 보는 + 무엇

 └ …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이 보기글을 쓴 분은 "여타의 인천 기념 조각들"이라 적었지만, 어느 분은 토씨 '-의'를 안 쓰고 "여타 인천 기념조각들"처럼 적기도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다른'을 넣으며 아무 말썽거리를 불러들이지 않는 분이 있는 가운데, "다른 데에 있는"이나 "다른 데에서 보는"처럼 찬찬히 풀어내면서 느낌과 뜻을 한껏 살려 주는 분도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고 보면, 말과 글을 옳게 가다듬으며 바르게 쓸 줄 아는 분이 있는 한편, 말과 글을 어설피 흘려넘기면서 대충대충 쓰는 분이 있는 셈입니다. 생각을 옳고 바르게 가누는 분이 있는 가운데, 생각을 그릇되고 얄궂게 내팽개치는 분이 있습니다. 삶을 옳고 바르게 일구는 분이 있지만, 삶을 아무렇게나 굴리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ㄴ. 여타의 작품들

 

.. 이 영화는 여타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규칙이 있는 제한된 공간을 무대로 한다 ..  <마르타 쿠를랏/조영학 옮김-나쁜 감독, 김기덕 바이오그래피 1996-2009>(가쎄,2009) 75쪽

 

'특별(特別)한'은 '남다른'이나 '사뭇 다른'으로 다듬고, "제한(制限)된 공간(空間)"은 "몇몇 곳"이나 "몇 군데"로 다듬어 봅니다.

 

 ┌ 여타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

 │→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 여느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 …

 

아르헨티나사람이 쓴 글을 우리 말로 옮기면서 '여타의'를 넣었습니다. 그러면, 이 대목은 얼마든지 '다른'을 넣을 수 있겠지요. 거꾸로, 우리 말로 '여타의'이나 '다른'을 영어나 스페인말로 옮긴다면 어떻게 될는지 궁금합니다. 두 낱말 모두 똑같은 영어나 스페인말로 옮겨질는지, 다른 낱말로 옮겨질는지 궁금합니다.

 

나라밖 사람들한테 우리 말을 가르칠 때, 우리는 '여타의'와 '다른'을 어떻게 가르쳐 주어야 할까 모르겠습니다. 두 낱말을 모두 가르쳐 주어야 할까요. 하나만 골라서 가르쳐 주어야 할까요. 한국말을 배우려 하는 나라밖 사람이 "'여타의'와 '다른'을 넣을 때는 어떻게 다른가요? 왜 이렇게 달리 쓰는가요?" 하고 묻는다면 무어라 대꾸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이제까지 나온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 여태껏 찍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 그동안 선보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 …

 

딱히 다른 뜻이나 느낌을 담지 않은 한자말 '여타'요, 이 한자말 뒤에 달라붙는 토씨 '-의'입니다. 때와 곳에 따라 여러모로 살려쓰거나 북돋우는 우리 말과 글을 어지럽히거나 흔드는 한자말 '여타'이며, 이 말마디에 들러붙는 토씨 '-의'입니다.

 

한자말 '여타'는 토박이말 '다른'을 잡아먹는 가운데, 또다른 토박이말들을 하나둘 잡아먹습니다. 말 그대로 숱한 '다른' 토박이말을 잡아먹거나 밀어내거나 쫓아내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10.04 16:40ⓒ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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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의 #토씨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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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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