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여 행렬
최천호
죽음이란 숨이 멈춘 것을 말하며, 내쉰 숨을 다시 들이쉬지 못하면 죽는 것이다. 중환자실에 누워있어도 숨이 붙어 있으면 사람이지만 멈추면 시체가 된다. 사람이 죽으면 명칭이 시체라고 바뀌고, 이름 앞에 옛 고(故)자가 붙어서 이 시체는 옛날에는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표시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격리의 대상이다. 한 집에서 함께 살던 사람도 죽어 시체가 된 순간부터는 영안실 냉동고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무리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자식이라도 죽은 부모를 안방에 모시고 살 수 없고, 아무리 금슬이 좋은 부부라고 할지라도 아내가 죽으면 끌어안고 잘 사람이 없다.
죽은 사람은 입는 옷도 다르다. 살아 있을 때 입는 옷을 의복이라고 부르지만 죽은 사람이 입는 옷은 수의(壽衣)라고 한다. 산사람이 입는 의복과 송장에게 입히는 수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의복에는 주머니가 있지만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산사람은 소유할 수 있지만 죽은 사람은 소유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죽어 시체가 되는 순간부터 평생 땀 흘려 모은 재산이라도 자신의 소유물도 아니고, 저 세상으로 가지고 갈 수 없다는 뜻으로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살아 있는 사람은 사는 것에 관심이 많다. 사람들이 재물을 사랑하고 그것을 모으려고 애를 쓰는 것도 살려는 애착심 때문이다. 사람들의 옷에 주머니가 있기 때문에 주머니에 무엇인가를 채우려고 애를 쓴다. 나의 주머니에도 지갑이 있고, 그 속에는 현금과 여러 장의 신용카드가 들어있다. 나도 살아있기에 소유하려는 욕심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처가는 장인 장모님이 이미 다 돌아가셨다. 삼십 여 년 전 장인의 장례를 마치고 장모님께서 객지에 사는 자식들에게 시골에 내려와서 나와 함께 사는 자에게 모든 재산을 다 주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아무도 동의하지 않아 혼자 사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말았다. 몇 년이 지나서 읍내에 살면서 군청에 다니던 큰 처남이 다른 형제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장인 명의로 되어 있던 모든 재산을 자기 명의로 다 이전해 버려 형제 간에 싸움이 일어났고 결국 아무런 인연이 없는 사람들처럼 연락을 끊고 살아간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로부터 4천 5백만 원의 유산을 받은 두 아들이 있었다. 요즈음 경제 규모로 본다면 유산이랄 것도 없는 작은 금액으로 큰아들에게 3천만 원, 작은아들이 나머지 1천 5백만 원을 가지라고 유언을 했다. 그런데 큰아들은 동생의 지분을 나누어 주려하지 않아 동생이 형에게 자기 몫 1천 5백만 원을 요구하자, 형은 돈을 주겠다며 동생을 자기 차에 태우고 서울을 출발하여 경상남도 양산으로 가서 살해한 뒤 시체가 발견 되더라도 지문감식을 통한 신원조회가 불가능하도록 동생의 열 손가락을 모두 절단해 버렸다. 1천 5백만 원의 욕심 때문에 동생을 죽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