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벼를 거두다

열세 살의 유기농 논농사일지

등록 2010.10.19 10:03수정 2010.10.1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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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골에서 어머니랑 같이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다. 엄마는 몇 사람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작은 학교를 꾸리고 계시고, 나는 홈스쿨링을 하며 농사를 돕는다. 오전에는 일을 하고, 오후에는 공부를 한다. 물론, 추수나, 정말 당장 해야 하는 농사가 있으면, 온종일 한다.


우리는 논 1000평, 호두 1200평, 콩밭 1000평, 포도밭 800평, 밭 200평, 그리고 표고장 한 동과 닭장, 텃밭, 감……. 이렇게 4000평 가까운 농사를 짓는다. 예전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같이 살았을 땐 그 밭들을 모두 일굴 수 있었지만, 최근엔 논농사와 텃밭, 표고, 닭장 정도의 농사만 하고 있다.

농사는 비료, 농약을 하나도 안 치는 일종의 유기농 방치농업을 하고 있다.

사실 올해는 논농사를 지을 형편이 못 되었다. 봄에 로터리를 치는데, 늘 여기저기 도우는 일손이나 함께 사는 이들이 한다. 그런데 이번 해는 목수 샘이 멀리 집을 지으러가게 됐고, 동네에는 모두 갑자기 논일을 하게 돼서(날씨가 올해는 그랬다) 우리 논을 봐줄 사람이 없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우리는 외가 농장에서 주신 트랙터와, 경운기, 관리기 등이 있다.

그러나 교수인 아빠는 서울에 계셔 바쁘고, 어머니는 그런 걸 운전 못 하시고, 나는 미성년자이고, 소사 아저씨는 사실 약간 균형 감각에 문제가 있으셔서 일상생활은 가능하신데, 박자를 못 맞추시거나 기계를 운전하실 수 없으시다. 그리고 일을 도와주러 오는 젊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사람들도 농기계들은 다루질 못한다. 그러면, 남은 사람은 목수 샘뿐인데, 그 목수 샘이 우리 애를 태웠다.

로터리는 당장 안 치면 모를 못 심는 상황인데, 다행히 일이 되었다. 내가 일을 도와주면서, 일을 배우는, 말하자면 머슴을 사는 광평농장이라는 데에 아드님이 트랙터를 끌고 와서 온종일 논을 갈아준 것이다. 덕분에 이번 해에 논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걸 늘 기적이라고 한다. 날씨가 좋을 때도 그러고, 비가 내려도 그러고, 우리에게 필요한 어떤 일이 될 때마다 그러신다.


그다음 모내기는 이앙기로 하였다. 사람들이 많을 때는 손으로 직접 줄을 놓고 하기도 해서, 동네에서 우리 논만 사람이 모를 심는다고 온 동네 사람들이 다 구경을 하기도 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이장님이 자동으로 모내기 하는 기기를 사셨고, 다른 한 집도 그런 집이 있어 그걸로 동네 모내기를 다 한다.

논을 갈고 나서 논에 물을 넣었는데, 이 물이 또 말썽을 피웠다. 수로가 끊어지질 않나, 물이 나가는 배수로가 논 옆의 길 밑에 있어서 돌로 막혀가지고, 내가 그 돌과 모래를 끄집어내느라 죽는 줄 알았다. 그 일을 다 하고, 둑을 쌓았는데, 진흙으로 둑을 만들다 보니, 어릴 적 모래사장에 물 넣고, 댐 쌓아서 장난감 뱃놀이 하던 게 생각이 났다.


우리는 농사를 지을 때 농약, 비료들을 일체 넣지 않는다는 것은 아까 말했을 것이다. 유기농 말이다.(우리가 직접 만든 거름은 뿌린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논에 피나 풀이 잔뜩 올라오기 때문에 그걸 일일이 뽑아줘야 한다. 그래서 유기농 농사를 하는 사람들은 오리를 길러서 풀을 먹게 하거나, 우렁이를 쓴다. 우리도 논농사 7년 중 첫해에는 오리농법을 썼으나 비용도 그렇고, 신통치 않아서 그 후로는 계속 우렁이 농법을 하고 있다.

우렁이 농법이란? 우렁이란 골뱅이 비슷하게 생긴 것이다. 그놈은 물 위에 나온 풀은 먹지 못하고, 물 밑에 난 풀만 먹는다. 모내기를 하면, 벼는 물 위에 있으므로, 우렁이는 딱 풀만 먹게 되는 것이다. 우렁이는 여름에 알을 낳는데, 그 색깔이 분홍색이다. 나는 그 색깔을 보고 너무너무 감동했다. 진짜 자연에서 그런 분홍색이 나올 수 있는지, 신기했다.

우린 약간 자연의 힘 등을 믿고 있다. 물론 특정 종교가 있는 건 아니다. 하여간 그래서, 나는 매일 논둑을 돌면서 벼들을 격려해주고 있다. 벼들이 사람 발자국을 들으면(벼는 주인 발자국소리를 듣고 큰다는 말도 있다), 나는 버림받지 않았다고, 잘 크지 않을까? 하하하…….

여름에는 논둑이 부서지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내가 모내기하기 전에 소사 아저씨한테 논둑이 너무 얇은 것 같다고 했더니 괜찮다고 하셨는데, 결국 이런 일이 일어났다. 맨 밑의 논은 2미터 정도의 둑이 완전히 폭삭 내려앉아서 막대기를 두 개 박고, 그 사이에 판자를 받치고, 그 안에 흙을 넣는 방법으로 위기를 벗어났고, 위의 다랑이는 물이 들어오는 쪽이 통째로 무너져서, 흙을 더 덮으면 완전히 무너질까 봐 그냥 내비 두었다.

올해도 우렁이를 넣었는데, 이상하게 다른 해와 달리 풀이 많이 났다. 아무래도 로터리를 칠 때 땅을 평평하게 갈지 않아서 우렁이가 들어가지 못해서 풀이 자란 것이다. 덕분에 나는 다른 식구들이랑 며칠 동안 풀을 뽑았다. 우리 논의 제일 윗다랑이는 중간에 풀이 잔뜩 자라서, 풀을 다 뽑고 나니 시원하기는 했는데, 논 한가운데에 구멍이 뻥 뚫려서 좀 보기가 흉했다. 이 일에서 얻은 교훈은 뭐든지 일찍, 미리하지 않으면 고생한다는 것이다.

드디어 엊그제, 추수를 했다. 일단 우리는 콤바인(벼 베서 타작까지 해주는 기계)이 들어갈 수 있게, 논 겉의 벼와, 입구의 벼를 베어내었다. 나는 옛날에 낫에 다친 적이 있어서 낫을 잡을 때마다 겁을 내지만 할 만하다. 연속 동작이다 보니, 흥겨워도 지고,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콤바인으로 본격적인 타작을 했다. 우리는 볏짚을 90%는 갈아서 논에 그냥 거름으로 뿌리고, 나머지 10%는 자르지 말고 우리 학교의 김칫독 지붕과, 초가집 지붕, 그리고 짚신이나, 새끼줄, 짚으로 하는 여러 가지를 하게 남겨두었다. 그걸 또 묶는데, 끈을 사용하지 않고, 짚으로 묶으니 너무 어려웠다. 그러나 알고 보니 잘하는 방법이 있었다. 볏짚 두 가닥을 새끼줄 꼬듯이 꼬아서 하면, 짚이 꺾이지 않고, 유연해서 묶기가 훨씬 편했다. 역시 농사라는 것은 실습으로 배우는 것이 최고인 것 같다.

나는 콤바인을 따라다니면서 넘어진 벼들을 일으켜 세우고, 우리가 낫으로 벤 것들을 콤바인에 붓고, 또 구우면 맛있다는 메뚜기들이 살 터전을 잃어 놀란 틈을 타서 모두 잡았다. (한 20~30마리는 잡았다.)

그래도 확실히 시대가 전진할수록 차츰 기계화가 되고, 일을 하기 편해지는 것 같다. 이전에는 콤바인이 굴러가는 구조가, 한 사람은 운전하고, 한 사람은 옆에 발판에 서서 포대에 쌀을 담아서 나중에 그걸 실어다가 말리는 데에 붓던 걸, 이번 해부터는 콤바인 안에 쌀을 저장해서 한꺼번에 말리는 곳에 붓게 되었다. 이전에는 쌀을 옮기던 게 큰일이고, 인력이 많이 필요했는데, 이제는 그냥 가져다가 부우니 참 수월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단점이 있는 법. 쌀이 몇 포대인지 몰라서 계산을 할 수 없는 게 조금 아쉬웠다.

제일 힘들었던 일은 우리 논에 질퍽한 구간, 즉 콤바인이 못 들어가는 구간에서 베어낸 벼를 나르던 것이었다. 느리게 움직이자니 발이 빠지고, 뛰자니 흙이 튀고…….

이제 남은 일은 한 가지다. 바로 말린 벼를 포대에 담아 저장하는 것. 지금이 오후 1시이므로, 밥을 먹고 바로 나가서 담으면 될 것 같다.

정말 힘들지만 보람 있는 농사였다. 힘들어도 우리가 한 해 먹을 식량을 우리 손으로 지어 먹는 데에 자부심이 가고, 또 나로서는 재밌는 농사 실습을 해 보아서 너무나 좋다.

그래도 논농사가 다른 농사보다 쉬운 것 같다. 바로, 논농사는 로터리, 모내기, 풀 뽑기, 추수, 쌀 말리기 이렇게 다섯 과정만 하면 되므로, 완전히 방치농업이고, 손이 거의 안 가기 때문인 것 같다. 역시 인력이 부족할 때는 논농사가 최고다.

식량이 무기가 되는 시대가 올 때 나는 내 손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풀 먹는 연습도 열심히 하고 계시니 그것도 도움이 크겠지만 말이다.
첨부파일
[사는 이야기]벼를 거두다-류옥하다.hwp
덧붙이는 글 류옥하다 기자는 열세 살 학생입니다.
#유기농 #농사 #추수 #영농일지 #식량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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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산골에서 일하는 일차의료, 응급의료 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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