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뮤지엄(museum)
.. 갤러리나 뮤지엄에서 관람객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면 쉽사리 이런 사실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 <사진, 찍는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앤 셀린 제이거 박태희 옮김, 미진사,2008) 9쪽
'갤러리(gallery)'는 국어사전에까지 오른 낱말입니다만, 국어사전 말풀이를 살피면 '그림 방'이나 '화랑'으로 고쳐쓰도록 되어 있습니다. '전시관'이나 '미술전시관'으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관람객(觀覽客)들의 움직임을 관찰(關察)하면"은 "관람객들 움직임을 살펴보면"이나 "사람들 움직임을 바라보면"이나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나 살피면"으로 다듬습니다. "이런 사실(事實)에"는 "이런 이야기에"나 "이런 말에"로 손질하고, "공감(共感)하게 될 것이다"는 "고개를 끄덕이리라"나 "고개를 끄덕이리라 본다"나 "나와 같이 생각하리라 본다"로 손질해 봅니다.
┌ 뮤지엄 : x
├ museum : 박물관, 미술관
│
├ 갤러리나 뮤지엄에서
│→ 전시관이나 박물관에서
│→ 전시관이나 미술관에서
└ …
사람들이 하나둘 즐겨쓰다 보니 어느덧 '갤러리' 같은 영어 한 마디가 버젓이 국어사전 올림말로 거듭납니다. 서울 인사동 같은 길거리에 늘어선 '물건이나 작품 늘여놓고 보여주는 자리'를 일컬어 아예 '인사동 갤러리'라 이야기합니다. 머리를 손질하는 곳은 '머리방'이나 '미용실'이란 말조차 안 쓰며 '헤어갤러리'라 하기까지 합니다. 사진을 나누거나 내보이는 자리는 진작부터 '포토갤러리'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손톱을 어여삐 가꾼다고 하면 '네일갤러리'이고, '아트갤러리'뿐 아니라 '무빙 아트갤러리'라는 말까지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예술회관'이라는 이름조차 하나둘 사라집니다.
그림을 선보이는 자리를 우리 말 느낌대로 나타내자면 '그림마당'입니다. 사진을 펼쳐 보이는 자리를 우리 말 빛깔대로 얘기하자면 '사진마당'입니다. 조각이라면 '조각마당'이고, 판화라면 '판화마당'입니다. 건축은 '건축마당'이 될 테고, 수공예는 '수공예마당'이 될 테지요. 노엮개를 나눈다면 '노엮개마당'입니다.
┌ 그림마당이나 사진마당에서
├ 전시관이나 미술관에서
├ 갤러리나 뮤지엄에서
└ …
'-마당'이라는 이름을 알맞게 붙이며 그림이나 사진을 즐기는 분들이 아예 없지 않습니다. 많지는 않으나 나라안 곳곳에 어느 만큼 있습니다. 다만, '갤러리'라 말하는 사람이 훨씬 많고, '샵'에다가 '뮤지엄'이라고까지 쓰는 사람 숫자가 차츰 늘어납니다. 지난날에는 "전시관이면 전시관이지 무슨 다른 이름을 붙이나?" 하고 생각했다면, 오늘날에는 "뮤지엄이면 뮤지엄이지 무슨 다른 이름으로 고치나?" 하고 생각한다고 하겠습니다.
처음 이름을 붙일 때부터 우리 말맛과 말멋을 살피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새 이름을 붙이려 할 때에도 우리 말삶과 말결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우리한테는 우리 말이 있습니다만, 우리 말을 신나게 즐겨쓰는 길을 가지 못합니다. 우리한테는 우리 글이 있으나, 우리 글을 알차게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지 못합니다.
ㄴ. 시티 투어(city tour)
.. 오늘은 쉬엄쉬엄 시티 투어를 해 보기로 했다. 그동안 몇 군데의 유적지 여행은 다녀왔지만, 막상 가장 자주, 그리고 오래 머문 꾸스꼬에서는 구경다운 구경을 못한 것 같다 .. <영혼을 빗질하는 소리>(저문강, 천권의책, 2009) 96쪽
"몇 군데의 유적지 여행은 다녀왔지만"은 "몇 군데 유적지는 다녀왔지만"으로 다듬고, "구경을 못한 것 같다"는 "구경을 못한 듯하다"로 다듬습니다.
┌ 시티 투어 : x
├ city tour : x
├ city
│ 1 (town보다 큰) 도시, 도회
│ 2 시(市)
│ 3 [the city;집합적;보통 단수 취급] 전시민(全市民)
├ tour
│ 1 관광 여행, 유람;(시찰·순유(巡遊) 등의) 짧은 여행, (공장·시설·집 등의) 시찰, 견학
│ 2 (극단의) 순회 공연;(스포츠팀의) 해외 원정, 투어;(정부 고관 등의) 역방(歷訪)
│ 3 (해외 등에서의) 근무 기간 《in》
│ 4 (공장의) 교대(기간)(shift)
│
├ 시티 투어를 해 보기로
│→ 도시 구경을 해 보기로
│→ 시내 나들이를 해 보기로
│→ 시내를 돌아보기로
│→ 시내를 둘러보기로
│→ 시내를 돌아다녀 보기로
└ …
보기글을 살피면, 처음에는 '시티 투어'라 말하고, 다음으로는 '유적지 여행'을 말한 다음, 마지막으로 '구경다운 구경'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영어로 말하고, 다음에는 한자말로 말하며, 끝에는 토박이말로 말합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손쉬운 일거리 하나 가리킬 때에도 '세 나라 말을 자유롭게 쓰는' 셈입니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여느 사람부터 지식인까지, 한국땅에서 태어나 자라는 웬만한 사람은 으레 '세 나라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알고 쓰고 나누는' 셈입니다.
시골로 나들이를 가든, 도시로 마실을 떠나든, 이제는 어느 여행사에서든 '시티 투어'를 말하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도시마다 '시티 투어 버스'를 두곤 합니다. 시나 군에서 일하는 공무원은 '시티 투어' 계획을 내놓고, 나라안 여행을 하든 나라밖 여행을 하든 사람들 스스로 '시티 투어' 계획을 짜거나 정보를 얻으려 합니다.
영어를 쓰는 나라밖 사람들이야 마땅히 '시티 투어'일 텐데, 영어가 아닌 한국말을 쓰는 이 나라 사람들까지 '시티 투어'여야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을 꾸밈없이 가리키는 '도시 여행'이든 '도시 나들이'라고 해야 올바르지 않나 싶습니다. 이 나라 사람들 스스로 도시에서 '시티 투어'라 한다면, 시골로 나들이를 떠날 때에는 '컨트리 투어'가 되는가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놓고 '도시 삶'이든 '도시살이'이든 '도시 생활'이라 하지 않고 '시티 라이프'라 말하고 있으니, 시골에서 살아가는 모습이라면 '컨트리 라이프'라 해야 할는지요.
┌ 시티 투어
├ 도시 구경 / 도시 여행
└ 시내 나들이 / 시내 돌아보기 / 골목 둘러보기 / 골목 마실
말은 우리 생각을 잡아먹거나 살찌웁니다. 어떠한 말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생각은 나날이 야윌 수 있고 나날이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삶은 우리 말을 뒤흔들거나 가꿉니다. 어떠한 삶을 꾸리느냐에 따라 우리 말은 날마다 어수선할 수 있고 날마다 싱그러울 수 있습니다.
말을 옳게 가누는 가운데 생각과 삶을 옳게 가눕니다. 말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는 가운데 생각과 삶 또한 아무렇게나 내팽개칩니다. 삶을 옳게 가누는 가운데 생각과 말을 옳게 가눕니다. 그리고, 삶을 함부로 내동댕이치면서 우리 생각과 삶 또한 함부로 내동댕이치는 매무새에 익숙해지고 맙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10.20 15:13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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