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봉하까지 얼마나 되는가 생각하다가..."

강희근 <새벽 통영>, 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드리는 헌시

등록 2010.10.31 13:58수정 2010.10.3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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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가는 길 휴게소에 들러/오징어 한 마리 사 들고 잔디밭 귀퉁이에 가/앉았다/오징어를 뜯어 고추장에 찍다가/여기서 봉하까지 얼마나 되는가 생각하다가/중간에 꺾어 들어가는 길이 없다는 생각에/참 어찌해 볼 수 없는 막막한 당신이라는 마음,/그 마음에 또 아팠다//지글 지글 굽히다가 온 오징어도 이리 아팠을까/입으로 가져가던 꼬랑댕이 한 점/차마 입에 넣지 못했다"  - 강희근 시 '진영휴게소'

 

경상대 명예교수로 진주에 사는 강희근 시인이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부산 가는 길에 진영휴게소에 들린 모양이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은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시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보면서 '참 어찌해 볼 수 없는 막막한 마음'을 오징어를 끌고 와 표현해 놓았다.

 

 강희근 시인.
강희근 시인.박우담
강희근 시인. ⓒ 박우담

 

강 시인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내가 지금 그분을 위해'라는 시를 썼다. 진주·사천·산청·하동지역 시인들은 지난해 6월 추모시 묶음집 <내가 지금 그 분을 위해>를 펴냈으며, 시인들은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아 영전에 바치기도 했다.

 

"내가 지금 그분을 위해/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아프다//그분을 위해 한 줄 기도를/바치는 일 밖에는…//그분은 처음으로 고향에 돌아온 사람이다/돌아와서 고향의 바람 소리/호미질 소리/써레질 소리/노인들의 기침 소리 바튼 소리 귀에 넣었다//그 소리들 위에 곶감분처럼 내리던/아침 햇살에게/내가 지금 들려 줄 말이 없다는 것이 아프다//햇살이여/눈 닦고 오는 햇살이여/아침이 미안하고, 시리고 아파서/발끝이 손끝이 시리고 아파서"

- 강희근 시 '내가 지금 그분을 위해' 전문

 

강희근 시인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하며 쓴 시들은 신작 시집 <새벽 통영>(도서출판 경남)에 실려 있다. <새벽 통영>은 강 시인이 지난해부터 올해 9월 사이 경상대 통영캠퍼스 평생교육원 '시창작 교실'을 운영하는 동안 쓴 시를 중심으로 엮었다.

 

3부에 걸쳐 68편의 시가 실려 있다. 통영 출신인 유치환·김춘수 시인을 생각하며 쓴 '청마와 춘수'를 비롯해, 시인은 '통영 타워에서', '새벽 통영', '통영에 오면', '통영 대교', '이중섭, 또는', '미수동 오전', '연필 등대' 등 아름다운 통영을 시로 생산했다.

 

 강희근 시인의 새 시집 <새벽 통영> 표지.
강희근 시인의 새 시집 <새벽 통영> 표지.도서출판경남
강희근 시인의 새 시집 <새벽 통영> 표지. ⓒ 도서출판경남

 

이 밖에 시집에는 '노고단 잡기'(2부)나 '유채꽃 축제'(3부)도 실려 있는데, 시인은 단순하게 기행적 풍광을 담은 게 아니라 자연 풍경과 시인의 내면이 결합된 '지적 풍경'의 한 세계를 열어 놓았다. 시집은 흔히 들어가는 '해설'을 별도로 해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강 시인은 시집 겉표지에 '간접 자작시 해설'을 붙여 놓았다.

 

"그 자리에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가져다 놓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가장 짧은 시 '붉다'나 '통영 타워에서'를 갖다 놓고 화자와 독자가 더불어 시가 갖는 상상의 오솔길로 들어가 보는 것이 차라리 좋을 것이라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시는 시 자체로 간섭 없이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해설' 대신에 언어, 서정, 표현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사이 '새벽 통영'이 어느 자리에 놓이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새벽 통영>은 강희근 시인의 열 다섯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그동안 <산에 가서>, <연기 및 일기>, <풍경보>, <사랑제> 등을 냈다.

 

강희근 시인은 현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한국문인협회 이사, 경남시인협회 회장, 이형기 시인 기념사업회 회장 등을 맡고 있다.

2010.10.31 13:58ⓒ 2010 OhmyNews
#강희근 시인 #시집 <새벽 통영> #경상대 명예교수 #고 노무현 대통령 #진영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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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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