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중은 학교 규칙을 정할 때 학생들을 참여시켰다. 학교 복도 게시판에 학생들이 제안한 '체벌 대체 프로그램'이 붙어 있다.
박상규
생활지도부 사무실 앞에서 다시 걸음을 멈췄다. 게시판에 붙어 있는 학생들의 글과 그림 때문이다. 먼저 한울중 학생회가 붙인 '체벌이 없으면 어떻게?'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눈에 들어왔다.
"사랑의 매가 없어지면, 수업을 방해하거나 친구들과 싸우고 학교 규정을 위반하는 학생들을 위해 어떤 대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선생님과 학생들이 행복한 학교가 가능할까요? 학생 여러분들의 좋은 의견을 제안해 주시기 바랍니다."게시물 바로 아래에, 2학년 학생 다섯 명은 실명으로 '체벌 대체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이들이 제안한 내용은 이렇다.
1. 벌점 부과2. Reading Books- 인권, 폭력에 대한 책을 읽도록 지도하며,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느낀 점, 반성문을 쓴다.3. 학생지도 Smile!- 성찰실을 열어 자녀와 부모가 함께하는 마음 나누기를 시도한다. - 전문적인 선생님을 초빙하여 대화를 통해 학생의 상태와 심각성 등을 진단한다. 이후 학생이 바뀔 수 있도록 지도한다. 학생·교사·학부모 참여해 규정 마련..."어떤 경우라도 학생 권리 보호하라"이 밖에도 여러 학생이 새로운 체벌 대체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벌금을 걷어 연말에 불우 이웃을 돕자"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그냥 글쓰기는 너무 쉬우니 영어 반성문을 쓰게 하자"는 견해도 있었다. 또 어떤 학생은 "수업 방해의 정도가 심하면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요약 정리하도록 하고 따로 보충 수업을 받게 하자"고 제안했다.
이처럼 한울중은 서울시교육청의 '체벌 금지' 정책에 맞춰 학교 규칙 개정 작업에 학생들을 참여시켰다. 먼저 지난 9월 중순부터 '학생생활지도 규정 제·개정 추진 계획'을 수립했다. 이 절차에 따라 교사·학생·학부모 설문조사를 벌였고(9월 29일), 학년별로 교사들도 토론을 벌였으며(10월 13일), 교사·학생·학부모 대표의 토론회(10월 18일)도 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학교 구성원들은 <학생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생활지도 규정>(이하 생활지도규정)을 마련해 지난 10월 31일 공포했다. 이 규정의 총칙에서는 "학생은 물리적 및 언어적 폭력 또는 집단 괴롭힘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진다"는 점과 "학교에서 체벌은 어떤 경우라도 학생의 권리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금지된다"고 못 박고 있다.
교사의 권리와 책임에 대해서도 "교사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수업 및 학생생활지도에 있어서 자율성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고 전제한 뒤 "교사는 학생의 수업권과 인권이 보장되도록 노력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생활지도규정에서 눈에 띄는 건, 체벌 대체 프로그램 지도에 관한 규정이다. 여기에 따르면, 수업을 방해하거나 교사 지시를 불이행한 학생에게는 1차 경고를 하고 그럼에도 같은 행위가 반복되면 이른바 '성찰교실' 지도를 명령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성찰교실은 문제를 일으킨 학생에게 몽둥이 '찜질'을 가하지 않고, 상담 전문교사와 상담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인지하고 개선하도록 하는 공간이다. 한울중에는 이미 임시 성찰교실이 마련돼 있다. 교실의 이름은 '마음에 말 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