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금강산 면회소에서 열린 이산가족 작별상봉에서 버스에 먼저 오른 북측 가족들이 헤어짐에 아쉬워하며 남측 가족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현재 국군포로 547명이 북한에 생존해 있다. 국군포로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
대선 후보시절이던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은 대북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내세웠다.
이에 따라 통일부는 이명박 정부 집권 첫해인 2008년 3월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국군포로와 (전시·전후) 납북자 문제를 국가의 기본 책무라는 관점에서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보고했고, 2009년 업무보고에서도 재차 이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정부의 '특수이산가족' 접근 비판... 정상회담 조건으로 제시하기도이명박 대통령도 여전히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는 지난해 11월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를 서로 이야기하며 풀 수 있다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날 수 있다"고 말해, 이를 남북정상회담 성사 조건의 하나로 제시하기도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특수이산가족'이라는 개념으로 묶어,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생사를 확인하고 상봉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접근해 왔다. 북한이 1953년 정전협정에 포로교환으로 포로 문제는 종료됐으며 납북자는 없다는 입장이 완강해, 이를 우회하려 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소극적인 편법이라고 비판하면서 전면화시키고 나선 것이지만, 현재까지 그 결과는 신통치 않다.
통일부에 따르면,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포함시키기 시작한 2000년 이후 2007년까지, 즉 김대중-노무현 정부 기간 중 8년 동안은 국군포로 20가족(본인 상봉 11가족)과 납북자 18가족(본인 상봉 14가족) 등 총 38가족이 상봉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2008년부터 3일 현재까지 3년 동안은 국군포로 2가족(모두 본인 상봉), 납북자 2가족(본인 상봉 1가족) 등 전부 4가족이 만났을 뿐이다.
'실질적 해결 위해 협력'→국군포로·납북자 관련 표현 자체가 빠져국군포로·납북자 문제에 대한 남북간 합의 수준 자체도 이전 정부에 비해 퇴보한 상태다.
남북은 2006년 2월 적십자회담에서 "쌍방은 이산가족 문제에 전쟁시기 및 그 이후 시기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에 대한 생사확인 문제를 포함시켜 협의, 해결해 나가기로 한다"고 합의했고, 두 달 뒤인 4월 18차 장관급 회담에서는 "전쟁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고 합의했었다. '전쟁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이라는 간접적인 표현이기는 했지만,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합의문에 명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으로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했던 지난해 8월 적십자회담 합의문은 "남과 북은 이산가족 문제 등 적십자 인도주의 문제를 남북관계 발전의 견지에서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한다"고 돼 있다.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에 대한 언급 없이 이후 논의 가능성만 남겨놓은 것이다. 당시 남측은 북측에게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적극 협의키로 했다'는 문구가 포함되지 않으면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압박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이런 상황에 대해 "정부가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 말은 많았지만 실제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금강산 관광 문제를 포함한 종합적인 전략과 이를 실행할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까지는 실제 의지가 있는 것인지 자체를 의심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말만 할 때는 지났고 이제는 실제 능력을 보이라는 촉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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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노 정부 국군포로·납북자 38가족 상봉, MB정부는 4가족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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