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섬진강 따라 피아골로
바람이 차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붉은 단풍에 대한 그리움도 깊어만 간다. 가을이 가기 전에 단풍을 봐야 하는데, 어디로 갈까? 우리나라 단풍 명소가 여럿 있지만 피아골만큼 사연 많은 단풍도 없다. 피아골 단풍은 잘 들었을까? 올해는 비도 많아 단풍이 유난히 좋다는 말들이 있는데….
시리도록 푸른빛이 도는 섬진강을 끼고서 19번 국도를 따라간다. 벚나무 사이로 스쳐가는 섬진강 푸른 물은 어머니 강처럼 여유롭게 흐르고 있다. 강변 모래사구 대나무 숲과 어울린 경치가 너무나 좋다. 연곡사와 피아골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보고 섬진강과 이별을 한다.
길은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연곡천을 따라 올라간다. 맞은편으로는 마치 외국의 오래된 목조주택을 떠오르게 하는 펜션들이 산비탈을 차지하고 있다. 피아골로 들어가는 구불구불한 길은 조금 있으면 개통될 지리산 둘레길의 일부가 될 거라고 한다. 근데 이렇게 차가 다니면 걸어가기 쉽지는 않겠다.
차들이 서서히 가더니 멈춰서고, 더 이상 차로는 갈 수 없다. 가을철 단풍을 보려는 관광객들이 한꺼번에 몰리니 좁은 도로 형편상 차량진입을 통제한단다. 직전마을까지 차로 갈 수 있는데….
직전마을은 피아골의 다른 이름
▲연곡사 입구에선 피아골(직전)마을 안내판이 단풍냄새가 물씬 난다. 직전마을까지 2km를 알려준다.전용호
▲ 연곡사 입구에선 피아골(직전)마을 안내판이 단풍냄새가 물씬 난다. 직전마을까지 2km를 알려준다.
ⓒ 전용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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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곡사 입구에서 매표(어른 2000원)를 하고 직전마을로 걸어간다. 도로는 포장되었고, 커다란 나무들로 터널을 이루었다. 그 속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형형색색 걸어간다. 단풍은 아직 이르다. 터널을 이룬 나무들은 푸른빛이 남았다. 바람이 지나가면 마른 나뭇잎이 허공을 가르며 떨어진다. 직전마을까지 걸어가는 길은 2㎞.
직전마을이라? 피아골 계곡이 시작되는 마을이다. 보통 사찰이 사람이 사는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게 되는데, 직전마을은 연곡사에서도 2㎞를 더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다. 집들은 10여 채 정도. 농사지을 밭이 없어 산에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했겠다.
직전(稷田)은 오곡 중의 하나인 피(稷)를 가꾸는 밭이다. 피밭이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피밭골로 불리다가 피아골로 되었다는 말이 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지난 역사 속에서 죽은 이들의 피가 골짜기를 붉게 물들였기 때문에 피아골이라고 불렸다고도 한다.
깊은 산중에 자리한 마을은 지리산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려 더 이상 깊은 산골이 아니다. 구불거리는 옛길 주변으로 은어, 쏘가리, 참게를 요리하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가게주변으로 도토리묵에 막걸리를 마시는 관광객들로 활기가 넘친다.
아픔이 배어있는 피아골의 붉은 단풍
구불거리는 마을길을 빠져나오면 피아골로 들어가는 산길이다. 잔자갈 돌들이 깔린 길을 걸어 들어간다. 길 아래로 계곡이 깊다. 삼삼오오 산길을 걸어가는 산행객들 얼굴이 밝다. 마냥 즐거운 산길이다. 살짝 얼굴을 붉힌 단풍이 수채화처럼 맑다.
피아골. 참 사연 많은 골짜기다. 1905년 을사조약에 반발하여 의병을 일으켜 호남지역에서 활약하던 고광순 호남의병대장이 1907년 일본군경에 맞서 싸우다 최후를 맞은 곳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에는 빨치산의 주 무대로 군경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곳이기도 하다.
지리산을 17번이나 오른 남명 조식은 이곳 피아골에 와서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다고 삼홍소(三紅沼)라고 극찬했단다. 이렇게 아름다운 계곡은 한국 근현대사에 아픈 이름으로 강렬하게 각인 시킨 골짜기가 되었다. 그래서 단풍도 핏빛으로 붉다고 했는데…. 피아골 단풍은 아직 핏빛 울음을 토해내지 못하고 있다.
옥빛이라 했던가. 명경지수(明鏡止水). 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물가에 앉아서 옥빛으로 빛나는 물빛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맑아진다. 가을 햇살이 좋다. 햇살에 반짝이는 가을 단풍이 좋다. 삼홍소의 단풍은 사람단풍으로 만족해야겠다. 며칠 있으면 활짝 필 핏빛단풍을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린다.
덧붙이는 글 | 10월 31일 풍경입니다. 피아골 단풍 이번 주말이면 더욱 붉어질 것 같습니다.
2010.11.05 08:54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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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도 붉었다는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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