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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년 6월 둘째 토요일에 가족모임을 합니다. 부모님 슬하의 자손들 모임이지요.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11남매를 낳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누님 한 분에 형님 셋, 남동생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누님도 내가 태어나기 전에 시집을 가버려 자주 보지 못했습니다. 큰 생질(누이의 아들)이 나보다 나이가 한 살 위였습니다. 내가 석달 빠르다고 하면 생질은 한 살 더 많다고 우기기도 하였습니다. 생질은 동짓달에 태어났고, 나는 다음 해 영등달에 태어났으니까요.
1940년대와 50년대에는 영양이 충분하지 못했고 전염병이 돌면 위아래동네에서 어린 아기들 줄초상이 났습니다. 내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게 있습니다. 위뜸의 뉘 집에서 아기가 죽었다고 곡소리가 나면 나중에는 아래뜸에서도 엄마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났던 것을. 같은 날 한 동네에서 아기 몇이 죽은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었던 1950대가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우리 육남매는 그런 어려움과 사선을 뚫고 목숨을 부지했던 것입니다.
부모님께서는 오래 전에 다 돌아가셨고, 누님 내외분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뒤에 맏형님까지도 이승을 하직하였지요. 이제는 달랑 사형제만 남았습니다. 그런데다 세상이 바뀌어 자식들이 전국으로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우리 4형제를 살아있는 순서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고향에서 10km쯤 떨어진 곳에 살고 있고, 둘째는 서울에서 큰 아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셋째인 나는 부산에 살다가 밀양 산촌으로 왔고, 넷째는 전주에 살고 있습니다. 4형제가 다 만나는 날은 한 번도 없습니다. 설과 추석 명절, 제삿날은 모이는데, 10여 년 전부터 방을 통째로 짊어지고 사는 둘째 형님께서는 못 오거든요. 명절 때는 조카들을 만나볼 수가 있지만 제사 때는 우리 삼형제 말고는 한명도 참석하지 않습니다. 이런 세상이 된 것입니다. 어떤 조카는 몇 년째 한 번도 못 보는 수도 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숙질간이면 3촌간인데, 몇 년째 한 번도 못 본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런데 현실입니다. 그래서 어느 해 명절에 모였을 때 형님에게 말했습니다.
"형님! 우리 가족모임을 한번 해 봅시다."
"알아서 히-여."
형님의 결재가 떨어질 때 옆에 있던 동생의 얼굴을 바라보니 좋다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일단 우리 형제들의 자손들은 매년 6월 둘째 토요일 오후 6시에, 미리 정한 장소로 모이게 하자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장조카에게 결정사항을 말해 주고, 사촌들끼리 의논해서 가족모임을 운영하게 하였습니다. 장조카가 계장(契長)인 셈이지요. 집안의 위계질서를 잡아 주자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첫 모임은 지리산에 있는 콘도에서 모였습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아가는 가족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습니다. 우리 부모님 아래로 5형제의 자식들이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세상을 떠난 맏형님 네는 부산, 울산, 사천, 인천, 부안에 살고 있고, 둘째 형님네는 창원, 전주, 광주, 목포에, 셋째 형님네는 서울과 수원, 부천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밀양과 부산에, 동생네는 전주와 광주로 나눠졌습니다. 고향에 살고 있는 형님네까지 합하면 무려 14개 도시에 걸쳐서 각자 가정을 꾸려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년 만나는 장소를 전국으로 옮겨 다니면서 하고 있습니다. 첫날은 만남의 날이고 둘째 날은 관광의 날입니다. 남원 지리산을 시작으로 경주, 거제도, 월출산, 부안, 설악산, 밀양까지 다녀갔습니다. 내년에는 단양으로 정해 놓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54명인데 매년 다 모인 경우는 한 번도 없습니다. 20가구가 무려 14개 도시에 살고 있다 보니 다 모이지는 못합니다. 누구네 집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오지 못하고, 집안 사정이 다 다르므로 다 모일 때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 가족모임을 통하여 많은 가족들이 기쁘고 즐거운 여행을 하게 된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입니다. 모일 때는 회비를 받는데, 형제는 10만원, 자매는 5만원씩 받으며 식구 수는 따지지 않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회비를 내지 않고 조카들만 받습니다.
참 좋은 것은 회비를 내면서도 누군가가 음식을 준비해서 가지고 옵니다. 떡, 고기, 술, 과일을 가지고 와서 내 놓습니다. 토요일 저녁은 다 함께 식사를 하고,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하고 노래방에 가거나 고스톱을 치기도 합니다. 다음 날은 일찍 이러나서 미리 알아 본 그 지역의 관광을 하고, 점심을 함께 먹은 뒤에 각자 떠나갑니다.
최근에는 고모네 보다 이모네와 더 잘 모인다고 합니다. 친가 보다는 외가 쪽으로 더 자주 만나고 어울린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가족모임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어떤 형제들은 자식들은 데리고 오지 않고, 어른들만 만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자식이 공부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데리고 오지 않습니다.
시골 면사무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병사 업무를 보는 공무원 앞에 장정 2명이 서 있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객지에 살고 있는 청년이, 병역신고(?)차 면사무소 담당 직원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20세 때인가 그런 것을 하였답니다. 당시에 호적을 대조하던 병사담당이 깜짝 놀랐습니다. 두 청년은 사촌간인데 서로 모르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아마 어렸을 때는 서로 만났을 텐데, 그 후에 가족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서로 얼굴을 모를 수밖에요. 병사담당 직원이 말했습니다.
"어이, 인사들 나눠! 사촌끼리."
이런 비극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매년 가족모임을 하는 우리 가족은 5촌이나 6촌끼리도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자주 만나고, 밥 먹고, 함께 자고, 이야기를 나누면 좋은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홈페이지 www.happy.or.kr에도 게재합니다.
2010.11.08 10:32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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