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간직하고 무엇을 버릴까?
지난 10월 23일, 하동이 좋아서 하동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의 모임인 '하동네트워크'라는 모임의 하동기행에 초대받았습니다.
1박 2일간 하동의 땅과 하늘을 직접 눈과 가슴에 담고 하동을 어떻게 사랑하면 좋을지, 그리고 그 사랑하는 대상이 무엇을 변화 없이 간직하고,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에 대한 정책적 제언을 위한 기행이었습니다.
토요일, 모티프원의 빠듯한 일정에도 하동기행의 유혹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박경리문학공원과 토지문화관 등 박경리선생님의 흔적을 쫒는 원주를 기행하고 나서 토지에 묘사된 평사리를 직접 보고 싶은 바람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40여 명의 일행들이 서울의 사당역에서 관광버스로 출발한다는 통보에 따라 새벽 5시에 헤이리를 출발했습니다.
사당역. 간혹 강남의 볼일 때문에 지하철을 이용하면 주로 지하에서 스쳤던 곳입니다. 2호선과 4호선이 교차하는 그곳의 지하 풍경은 늘 인산인해였습니다. 환승을 위한 수많은 사람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향해 바삐 걷거나 기다리는 열차가 오기를 각기 다른 표정으로 기다리는 곳이었지요.
그날, 토요일의 이른 아침, 사당역 지상의 풍경도 혼잡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택시에서 버스로 갈아타거나, 버스에서 택시로 갈아타기 위한 분주한 발걸음들이 차량의 소음과 갓길의 정리를 돕는 교통정리보조원의 호루라기 소리와 고함소리, 지난밤 음주의 취기가 풀리지 않은 주정뱅이의 악다구니들이 서로 엉켜서 어떻게 가닥을 풀어야할지가 막막했습니다.
저는 지난밤의 토사물을 씻어내는 청소원의 거친 호스의 물줄기를 가까스로 피해 관광버스가 오기로한 1번 출구지역으로 횡단보도를 건넜습니다.
관광버스 편승위해 전화번호 돌리는 아주머니들
주말의 사당역 1번 출구지역은 또 다른 낯선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관광버스들이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을 태우고 출발하고 있었습니다.
결혼식장으로 출발하는 차량, 산행을 위한 산악회 차량, 학교동창회의 야유회 차량, 노인회의 단풍놀이 차량 등 서울을 벗어나기 위한 수십대의 관광버스가 약속된 그룹들을 태우고 있었습니다.
6명의 등산복 차람의 아주머니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연신 말을 건넸습니다.
"혹시 버스 정원이 차지 않으면 우리에게 전화 좀 주세요. 같이 갈 수 있게……." 이분들은 행선지와 그 행선지의 목적과 관계없이 관광버스의 빈자리만 있으면 무조건 타기를 원했습니다.
관광버스의 예정인원은 어떤 이유에서건 결원이 생기기 마련이고 이점을 잘 아는 이 아주머니들은 주말마다 떠날 채비만 하고 나와서 결원이 생긴 그 버스에 무임 편승하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지하나 지상이나 사당역은 마치 아수라들의 세상 같았습니다.
욕망과 순수가 만나는 기수지역, 사당역
서울과 서울남부 외곽의 경계, 사당역. 그 사당역은 바로 기수지역이었습니다. 민물과 짠물이 만나는…….
때로는 강물의 무미건조함이 지루하고, 때로는 바닷물의 염분 농도가 고통스러운 날들이 있는 지역입니다.
기수지역에는 그 지역의 생태계를 대표하는 특징적인 동식물인 깃대종이 서식하기 마련입니다.
환승을 위해 이곳에 내렸다가 한잔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음주를 시작했다가 몸도 마음도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새벽을 맞이한 취객. 떠나고 싶은 욕구의 충족을 위해 막연히 집을 나와 관광버스의 빈자리를 기웃거리는 아주머니들. 이들은 이 이수지역에 서식할 수 있는 대표적이 깃대종인 셈입니다.
도시의 경제적 풍요를 욕망했지만 그 도시의 바다로 편입되지 못한 사람들, 도시에 빠듯하게 스며들어서 노동을 팔아 욕망했던 것들을 성취한 듯 싶었지만 이제는 강물의 순수가 그리운 사람들이 만나는 기수지역, 사당역.
나는 하동으로 내달리는 관광버스에서도 계속 버스 뒤에 두고 온 새벽의 사당역 풍경을 되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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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과 짠물 만나는 기수지역 '사당역'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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