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방인데 만화책을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각자 쓸 수 있는 2인용 소파가 너무 짧아 잠을 잘 때 두 다리가 소파 밖으로 나온다.
김화영
과연 버터링 쿠키를 1000원에, 계란을 풀어 넣어 먹음직스럽게 끓인 라면을 2천원에 팔고 있었다. 나는 예전에 좋아하던 '21세기 소년'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개인별로 2인용 소파와 책이나 간식거리를 올려놓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이 제공됐다. 가게 안에는 이런 자리가 30여 개 있었고 테이블 없이 반쯤 누워서 만화책을 볼 수 있는 의자도 10여개 있었다. 청소년용부터 성인만화까지, 유리창이 있는 벽면을 제외한 삼면이 모두 만화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밤 11시 무렵에 3분의 1쯤 차있던 좌석이 새벽 1시가 가까워져오니 절반가량 채워졌다. 20여 명의 손님 중엔 이어폰을 귀에 꽂고 만화에 빠진 젊은이도 몇 명 있었지만 대부분은 40대 이상의 중년층이었다. 그들 중 '독서'에 열중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만화책은 베개로 쓰이고 있었다. 담배연기가 자욱한 그 곳에서 배낭이나 만화책을 베고 잠을 청하는 모습이 꽤 불편해 보였다.
나도 잠을 자보기로 했다. 2인용 소파지만 두 다리를 뻗으면 통로로 발이 쑥 나갔다. 지나가던 사람이 발을 건드리는 바람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한참을 누워 있으니 목덜미가 아프고 다리도 저려왔다. 매캐한 담배연기, 환한 형광등 조명 때문에 좀처럼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대다수 중년 고객들은 잠에 빠진 듯했다.
새벽에 선잠을 깬 뒤 주위를 둘러보다가 2층 다락방을 발견했다.
"사장님, 저기는 뭐하는 공간인가요?" "아, 만화 보다가 피곤하면 잠시 쉬는 곳입니다"주인의 눈길을 피해 살짝 올라가 보았다. 10평 정도 되는 공간인데, 벽면에 낡은 만화책이 가득한 책장이 있고, 남자 2명이 소파에 잠들어 있었다. 2인용이 아닌 긴 가죽 소파여서 조금은 덜 불편해 보였다. 벽을 가로질러 연결한 빨래 줄에는 수건과 티셔츠 따위가 널려있었다. 담요와 베개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걸 보니 자주 오는 단골들이 쓰는 공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