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리-천왕봉(5.4km), 천왕봉-장터목-중산리(7km)로 끝나는 12.4km의 왕복코스.
김학용
[2010년 11월12일] 대망의 결전의 날. 드디어 08:00, 중산리 주차장에서 일단 순조롭게 출발했다. 오늘의 코스는 중산리-칼바위-법계사-천왕봉(5.4km), 천왕봉-장터목-중산리(7km)로 끝나는 12.4km의 코스. 출발하자마자 만감이 교차한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완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지막까지 빠져나갈 궁리를 해본다.
'가다가 배가 아프다고 뒹굴까? 아니다, 이 방법은 너무 티가 나겠지? 가다가 일부러 넘어질까? 아냐, 이 방법은 위험이 따르니까 안 될 것 같고….'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방법이 없다. 이때 등산로 입구에서 눈앞에 지나가는 미니버스 한 대가 있었으니, 바로 법계사 신도들을 위한 셔틀버스다. 2km 정도를 버스로 이동할 수 있다니…. 아! 버스가 이토록 친근해 보이기는 난생 처음이다. 어쩌면 날 살려줄 구세주가 될 수도 있으리라. 야속하게도 버스가 시야에서 멀어질 무렵 "자, 출발"이라는 구호가 무섭게 떨어진다.
출발 한 시간만에 탈진... 미모의 여인들도 '소 닭 쳐다보듯' 출발한 지 약 40분, 이제 겨우 0.6km쯤 왔나 보다. 순전히 '반 억지'로 따라 붙긴 했는데, 이건 등산이 아닌 처절한 몸부림이다. 몸과 마음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분위기다. 하기야 젊은 놈들(?) 뒤에 따라 붙었으니, 오죽했겠는가? 피 끓는 청춘들을 따라가자니 버겁고, 뒷사람들 눈치도 보이고, 어찌되었든 헉헉거리며 올라가는데…. 아,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다.
10여 분을 더 가니, 그동안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 척추를 둘러싼 근육들이 긴장하고 자극을 받기 시작한다. 온몸이 쑤시는 것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폐의 용적이 커지고 혈액을 뿜어내는 심장 박동수가 급격히 늘어난다. 혈관이 탄력을 받았는지 혈압도 이상하다. 폐활량이 늘어나는가 싶더니 급기야 눈앞이 캄캄해진다.
'아, 이렇게 또 실려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스치며, 얼굴은 창백해지고 그대로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뒤따라 오다 놀란 동료 직원은 날 일으켜 세우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평소에 저질체력으로 일관하며 살았으니, 후회할 시점은 바로 여기인가 보다. 신통치 않은 체력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직원에게 "먼저 가라"며 보냈지만, 이 '쪽팔림'은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여기서 이대로 포기할 것인가? 누워 있는 10여 분 동안 만감이 교차한다. 집에서 천왕봉 정상을 완주하고 개선장군처럼 돌아올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래, 지금 다시 내려가서 산 중턱의 법계사까지 태워 준다는 셔틀버스를 몰래 타고 가는 거야!'하지만 직원들의 비웃음을 생각하니 그 짓(?)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겠다. 회사 내에서도 유능한(?) 실력파 부장이 버스를 타고 왔다고 무시할 것을 생각하니 한숨부터 나온다. 다시 전의를 불태우며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10여 분을 쉬고 나니 몸이 완전히 퍼진 상태라 다리가 마구 후들거린다.
'망바위'라고 쓰인 나무 팻말에는 '천왕봉 3.0km'. 아, 울고 싶어라. 평소에 그리 좋아하는 아리따운 아줌마들이 눈앞에 지나가는데도, 삭신이 고통스러우니 이건 완전히 '소 닭 쳐다보듯'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