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낮잠
김솔미
김치고쿰마의 맛은? "베리 구~웃!"아무렇게나 널려있는 속옷이며 양말 따위가 유일한 장식물인 좁은 호텔방에서 잠을 깬다. 또 하루가 시작된 거다. 오늘은 무얼 할까, 보다는 아침은 무얼 먹을까, 부터 고민한다. 여권과 달러 등 귀중품을 주섬주섬 챙겨 복대 안으로 구겨 넣고 밖으로 나간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다. 루프탑이 있는 전망 좋은 식당에서 토스트 한 조각과 '짜이-홍차와 우유, 인도식 향신료를 함께 넣고 끓인 전통 차-'나 한잔 마셔볼까.
며칠 째 입에 맞는 음식을 못 찾았더니 함부로 새로운 음식에 덤벼들지 못 한다. 마침 가이드북에서 추천한 00레스토랑 발견! 아침을 먹으며, 오늘 하루의 일정을 계획해 볼까 하는데 갑자기 밀려오는 졸음. 나른한 햇살 탓에 졸고 보니 어느새 점심이다.
과일을 사기 위해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점심 먹을 식당을 물색한다. '커리'는 이제 질렸다. 두리번거리다 한국음식 식당을 발견하고는 한달음에 도착한다. 유리벽에 서툰 글씨로 써 붙인 '짬뽕라면, 김치고쿰마'가 보인다. 고쿰마? 인상 좋은 주인 아저씨는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고쿰마'가 뭔지 물으니 대충 볶음밥인 듯한 음식을 설명한다. 김치고쿰마, 김치볶음밥? 발음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네. 김치를 먹어본 지가 언젠지, 잔뜩 기대한다.
드디어 주문한 '김치고쿰마'가 나온다. 한국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매번 실망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대실패! 허~연 김치와 찰기라고는 없는 쌀밥의 조화는 둘째 치고, 기름에 볶은 건지 삶은 건지. 느끼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인상 좋은 주인은 맛있냐고 물어본다. 하필이면 꼭 이럴 때만 물어볼게 뭐람! 마음이 약해진다. 별 수 없지, "베리 구~웃(Very good)~!"
반도 비우지 못한 그릇이 민망해 재빨리 식당을 빠져나온다. 괜히 맛있다고 했나? 그 주인 혹시 자기네 요리가 엉망이었다는 생각은 안 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김치고쿰마'같은 음식이나 먹고 사는 줄 아는 건 아냐? 별 걱정을 다해본다. 그러고 보니, 맛있냐고 묻는 주인 얼굴이 초조해 보인 것 같기도 하다. 하긴, 무슨 상관이야? 나는 두 끼 째 제대로 된 음식을 못 먹었을 뿐이다. 저녁에는 고기라도 먹어볼까, 생각한다.
처음 맛본 탄두리 치킨! 그런데 웬걸며칠 전부터 점찍어둔 이슬람사원을 가기로 했다.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한단다. '내 신발보다 사원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새똥이 더 더러울 것 같은데···. ' 오늘따라 흰 양말을 신고 올게 뭐람. 문득 빨래할 일이 고달파진다. 그깟 양말 빨래, 뭐가 그리 힘들까 싶지만, 인도에서 양말만 수십 번 빨았다. 그저 그런 건축물일 뿐, 아무런 감흥도 없는 사원을 휙 둘러본 뒤 발걸음을 재촉한다.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를 좀 더 깨끗한 곳으로 옮길 생각이다.
여기저기를 둘러봤지만 마땅한 숙소가 없다. 괜찮다 싶은 곳은 가격이 비싸고, 가격이 적당하면 시설이 엉망이다. 며칠만 더 참기로 하고, 저녁이나 맛있게 먹기로 한다. '고기! 고기!' 평소 좋아하지도 않던 고기가 인도에서는 간절하다. 지역마다 고기를 전혀 안 팔기도 하고, 판다고 해도 탄두리 치킨 (화덕에 구워 낸 인도식 닭요리)정도다. 혼자 먹기에 한 마리는 너무 많을 테니 반 마리로 주문. 오랜만에 뱃속에 기름칠 할 생각으로 마냥 행복해 하는 내 모습이, 좀 우습다.
그런데 웬걸, 치킨 반 마리는 고작 아기 손바닥만 한 크기다. 게다가 살점은 없고 가죽만 남아 있다. 이걸 음식이라고 파는 거야? 하루 종일 먹었던 음식이 떠오르며 짜증이 솟구친다. 그러다 순간, 길에서 음식 쓰레기를 뒤적이고 있던 소나 닭들이 떠오른다. 하긴, 닭이 이렇게 작을 만도 하지. 사람 먹을 음식도 부족한 이곳에서, 닭들이 무얼 먹고 살이 토실토실 오르기를 바라는 걸까. 며칠 굶은 사람처럼 '고기! 고기!'를 외쳤던 내 안의 야만성과 음식쓰레기를 뒤지던 짐승들의 잔상이 머릿속에서 뒤섞여 식욕이 그만, 뚝 떨어진다.
"하얘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