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0.11.18 10:38수정 2010.11.18 10:38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이고, 이 일을 어쩌지요? 무가 얼었어요!"
"저런!"
아침을 먹고 앞마당 텃밭에서 무를 뽑던 아내가 소리를 질렀다. 텃밭으로 나가보니 서리가 하얗게 내린 무 잎이 시들시들하고 땅 밖으로 튀어나온 부분이 살짝 얼어가고 있다. 절구통에는 얼음이 결빙되어 있다.
더 얼기 전에 무를 전부 뽑아 김장을 담기로 했다. 이곳 지리산 산골은 해가 빨리 져서 겨울이 빨리 오기 때문이다. 무를 뽑아보니 길지가 않고 둥글둥글하다. 동치미를 담기에 좋은 무라고 한다. 무를 모두 뽑아내니 31개다.
내친 김에 배추도 뽑았다. 배추는 무에 비해 뿌리가 아주 작은데 이렇게 큰 포기를 이루다니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배추는 43포기였다. 말하자면 금배추인 셈이다. 나는 텃밭의 배추와 무 수를 미리 헤아려 놓았다.
금년 장마 때 배추 값이 천장을 모르고 치솟을 때, 서울 친구들이 CCTV를 설치해라, 야간경비를 세워라, 진돗개를 풀어 놓아 금배추를 지키라는 등 농담을 하기도 했던 귀한 배추와 무다.
절반은 달팽이와 벌레가 먹어 버린 배추이지만 그래도 뽑아서 한데 모아놓고 보니 녀석들이 대견하다. 무는 잎이 싱싱하다. 자연이 주는 고마움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무 31개, 배추 43포기로 김치를 담그면 우리 두 식구가 겨울을 나기에 충분한 양의 김치다.
아내는 무를 다듬고 나는 마당에 설치된 수도꼭지를 틀어 무를 씻었다. 네 번 정도를 씻으니 맑은 물이 나온다. 무 잎사귀는 무청을 만들기 위해 별도로 골라서 말리기로 했다. 아내는 무에 소금을 뿌려 무김치를 담글 준비를 했다.
무공해 무를 씻어서 대야에 담가 놓으니 마음이 뿌듯하다. 무 잎은 내일 혜경이 엄마가 끈을 준다고 하니 그 끈으로 엮어서 처마에 메달아 놓을 작정이다.
배추는 일단 창고에 모두 옮겨 놓았다. 하루쯤 숨을 죽여서 내일 김장을 해야 한다는 것. 무공해 무와 배추를 수확을 하고나니 부자가 된 기분이다. 올 겨울 기본반찬이 되어줄 배추와 무가 있으니 쌀만 있으면 최소한 겨울은 날 것이 아닌가?
"다섯 평 텃밭에서 나온 배추와 무가 올 김장을 끝내주는 군. 허허."
"힘들었지만 텃밭을 만들기 잘했어요?"
"정말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
자연이 주는 고마움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금년 6월, 40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이곳 지리산 산동네 빈농가로 이사를 와서 마당에 일구었던 텃밭이다.
무더운 여름 장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리어카로 흙을 실어 날라 시멘트 바닥에 붓고, 돌을 주어와 힘겹게 만들었던 다섯 평 정도의 텃밭이 주는 기쁨은 대단하다. 그 다섯 평 텃밭이 올 배추, 무 김장을 끝내주고 있으니 말이다.
(2010. 11. 17 지리산에서 찰라)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사는이야기, 여행, 작은 나눔, 영혼이 따뜻한 이야기 등 살맛나는 기사를 발굴해서 쓰고 싶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