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 드라마 <근초고왕>. 사진은 고구려 고국원왕 역할을 맡은 탤런트 이종원.
KBS
대부분의 왕들은 본명보다는 다른 이름으로 후세에 알려졌다. 태어날 때에 부모가 붙여준 이름보다는 죽은 뒤에 신하들이 붙여준 이름으로 역사에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조선의 경우에는, 왕이 죽은 날로부터 며칠 안에 신하들이 죽은 왕의 업적이나 이미지 등을 고려해서 세종이니 성종이니 숙종이니 하는 묘호를 짓곤 했다.
이렇게, 왕에게 사후(死後)의 명칭을 부여하고 그 이름으로 왕을 기억하는 것은 어찌 보면 상당히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이로 인해 왕들은 자신이 사후에 어떤 이름으로 기억될 것인지를 의식하면서 살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고구려 고국원왕은 본명이 아니다?이 점과 관련하여, 우리는 드라마 <근초고왕>에서 흥미로운 사실에 접할 수 있다. <근초고왕>에 등장하는 고구려 고국원왕(故國原王)이 왜 그런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는지를 음미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고국원왕'이란 칭호 역시 본명이 아니다. 그의 본명은 '사유'다. 또 고국원왕이란 명칭은 업적이나 이미지를 기초로 제정된 것도 아니었다.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려면, '들판'을 뜻하는 원(原)이란 글자가 칭호 안에 들어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국원(故國原)은 고구려왕 사유가 묻힌 들판의 이름이었다. 고국(故國)이란 곳의 들판(原)에 묻혔다 하여 그렇게 불린 것이다.
고구려 왕들의 칭호와 무덤의 위치 간에 존재하는 상관관계를 제시하는 표에 따르면, <삼국사기>에 기록된 28명의 고구려 군주 중에서 42.9%에 해당하는 12명의 칭호가 무덤의 위치와 상관관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녹색 바탕으로 된 칸은 무덤의 위치와 왕의 칭호가 일치하는 경우를 가리키고 있다. 이 표를 보면, 고구려에서는 무덤의 위치를 근거로 왕의 칭호를 제정한 시기가 상당 기간 존속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시기의 후반부에 고국원왕이 등장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