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부의 비공개 클럽 화면 갈무리
이날 오후 8시경, 이러한 사실이 '고파스'를 통해 알려졌고 학생들은 실망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상당수 학생들이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직접 중앙선관위원회 회의를 참관하러 오기도 했다. 특히 제보 문건을 통해 개인정보가 공개된 피해자도 직접 회의실을 찾아 총학 집행부를 성토했다.
공청회를 진행하던 고대 중앙선관위원회(선관위)는 후마니타스 선본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합동공청회 직후인 오후 10시부터 긴급회의에 나섰다. 선관위 위원 중 전지원 총학생회장과 이송 부총학생회장은 의혹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각각 중앙선관위원장, 중앙선관위원을 사퇴했다.
선관위는 24일 자정 무렵 총학 집행부 비공개 클럽을 직접 열람했고, 이 과정에서 총학 집행부가 결정적인 물증들을 삭제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총학 집행부는 의혹 제기가 있기 전에 문제 게시글을 삭제했다고 주장했지만 거짓이었음이 밝혀졌다. 문제의 비방글을 작성한 공과대 학생회장이 '글을 삭제해 증거인멸을 시도했다'고 자백했기 때문.
이 과정에서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은 이번 사찰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지만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책임을 회피하기도 했다. 또 총학생회 교육사업국장과 정책차장이 "이 사건이 논란이 되기 전에 논란이 된 글을 해당 작성자가 지웠다면 문제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인터넷상에 공개되어있는 정보를 가져오는 구글링 행위는 방법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잠시 소란스러워지기도 했다.
회의에 참관한 김원 전 법대학생회장은 "차기 총학생회장 선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학칙에 의하면 전지원 전 중선관위원장은 아직 총학생회장으로서의 임기가 끝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43대 '소통시대' 총학에 대한 탄핵을 주장했다.
결국 고려대 선관위는 25일 오전 5시 50분까지 회의를 진행한 뒤 문제가 된 '클루'의 임시 폐쇄를 결정했다. 또 대다수 학생들의 뜻을 받아들여 '클루'의 향후 방향과 43대 소통시대 총학에 대한 탄핵안을 의결하기 위한 28일 임시 전학대회 개최를 결정했다.
태풍이 지난간 자리... 캠퍼스에 나붙은 '대자보'
▲25일 오전 총학 사찰을 비판하는 학생들의 대자보가 학교 곳곳에 붙었다.
김예찬
'사찰'이란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는 처참했다. 25일 오전, 고려대학교 캠퍼스 곳곳에는 총학을 성토하는 대자보가 나붙기 시작했으며 고파스에도 이에 대한 학생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일부에선 전학대회와 별도로 총학에 대한 탄핵연서를 받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일에 대해 이현석(법대 3)씨는 "운동권, 비권 총학생회 모두가 학생 자치 자체에 대한 철학이 부재하다"고 일침을 놨다. 강솔이(경영대 2)씨 또한 "학내에 비판 여론이 있더라도 그것을 듣고, 생각해보고, 비판받은 사항과 관련해 학우들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소통'임을 잊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법대 4학년에 재학중인 서번영씨는 "'소통'이 학생들의 집단적인 의견 개진과 기층 단위에서의 조직화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씁쓸해 했다. 박원익(경제학과 3)씨는 "민주주의는 위기 상태에서 시작된다"며 "이번과 같은 학내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이 오히려 새로운 단계의 학생 자치로 향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총학생회장의 사과에도 또 다른 논란 일듯
▲전지원 고대 총학회장이 고파스에 올린 사과문
이번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전지원 총학생회장은 25일 오후 2시 고파스에 사과문을 올렸다. 전 회장은 "오늘 거론된 일련의 사건과 관련해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며 "사죄의 시간이 늦어지게 된 점, 분노하고 계셨을 학우 여러분들에게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학우 여러분들의 신상정보를 열람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강의평가사이트를 기획하게 된 것은 분명 아니었다"며 "웹사이트를 잘 다룰 수 있는 집행부가 없었기에 중복가입 및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하여 개인정보 열람이 손쉽게 개발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이렇듯 전 회장이 사과글을 올렸음에도 일부 학생들은 여전히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몇몇 학생들이 과거부터 제기됐던 '총학생회장의 다중 아이디 사용 의혹'에 대한 증거들을 게시판에 올리면서, 이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비관과 기대가 공존하는 가운데 학교 측에서는 2011년 수시 모집 논술고사 준비로 인하여 학내에 붙은 대자보를 철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또 다른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사찰과는 성격 달라... 용서 받지 못할 것임은 틀림 없다" [인터뷰] 강훈구 고려대 44대 중앙선거관리위원장
|
다음은 총학생회의 '사찰' 의혹을 조사하고 임시 전학대회 개최를 의결한 강훈구 고려대학교 제44대 중앙선거관리위원장과 한 인터뷰 전문.
- '총학생회의 불법 사찰 의혹'이라는 보도가 났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개인적으로는 보복성 조치가 행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기성 정치의 사찰 문제와는 성격이 다른 것 같다. 아직까지 밝혀진 바로는 개인정보를 내부적으로 비웃기 위해 사용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더욱 더 조사가 진행 된 후 명확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피해자가 있고, 또 민감한 개인 정보를 편법으로 유출하여 내부적으로 공유한 행위 자체가 심각하게 잘못된 것이고, 용서 받지 못할 것임에는 틀림없다."
- 이번 사건 후 학생사회가 기성 정치를 닮아간다는 반응들이 있다. "이러한 사건은 학생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부정적인 부산물이라고 생각한다. 학생회는 학생들의 필요를 채워주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는 기능을 한다. 과거에는 후자의 성격이 강했다면, 지금은 그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기 위해 변해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나쁜 효과가 생긴 것 같다. 이렇게 물이 흐려진 이유는 학생 사회 자체의 파국이라기보다는 일부 자격 없는 사람들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하여 어려운 결심을 하고 학생회 활동에 노력을 기울이는 모든 이들을 비판하는 것은 모욕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 임시 전학대회를 앞두고 문제가 된 소통시대 소속 대의원들이 많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물타기나 의사 진행 방해가 있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소통시대 당선자들 역시 학우들의 의지를 대표하여 당선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발언권은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적 절차를 지키지 않고 그들을 배제한다면 전학대회에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학우들의 관심이 큰 만큼 대의원 모두가 올바른 판단을 하리라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일정을 알려 달라. "28일 전학대회를 열고 탄핵안이 의결된다면 총학선거가 진행되는 1~2일에 총투표 진행할 것을 권고할 예정이다. 원래 모바일 투표 역시 총학 선거와 함께 진행하려고 했는데, 여기에 문제가 생겼다. 학생 명부를 제공하는 학생처에서 탄핵 투표안을 총학 선거와 함께 진행한다면 명단을 내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대해 강하게 의사 피력을 했는데, 이번에는 모바일 투표를 처리하는 회사에서도 탄핵 투표를 한다면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없다고 통보해왔다. 업체가 모종의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아직 짐작하기 힘들다. 현재 수시 기간이라고 학생들의 개인 대자보를 떼어내는 것도 역시 문제다. 성균관대 같은 경우 얼마 전 수시 기간에도 대자보를 단속하지는 않았다."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공유하기
고려대 '쑥대밭'으로 만든 총학의 '학생 사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