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 오웰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앞표지
한겨레출판
"1936년부터 내가 쓴 심각한 작품은 어느 한 줄이든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다.(중략)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터다."(297쪽)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는 지배자, 감시자, 통제자, 정부 관리자, 자유의 억압자 또는 통제된 사회체계나 통제 수단 등을 의미하며, 오늘날에도 정치적, 사회적 주제 가운데 자주 등장하는 메타포로 사용되고 있다. <1984>보다 이전에 발표했던 <동물농장>이나 <위건 부두로 가는 길> 등 오웰의 작품들은 소설이나 에세이로써의 가치뿐만이 아니라 글쓰기를 통한 불의에 대한 저항, 의지의 관철과 분투 등 오웰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신념이 동시에 내재되어 있다.
소설 속에서 드러나는 그의 정치적 입장은 결코 깊이 감추어져 있거나 난해하지 않다. 언제나 직설적-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나폴레옹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나폴레옹과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스노볼은 또 누구를 빗댄 것인지 돼지들로 의인화되어 있지만 그 의인화의 대상들은 너무나도 분명하다-이며 간결하고 명확하다.
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를 통해서 왜 그의 소설들이 그토록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는지 그 이유가 명백해진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작가적 소신이며 자신의 작품들 가운데 맥없는 작품, 의미 없는 구절이나 문장으로 채워진 글들은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고백한다. 정치와 거리를 둘 수 있거나 실제로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
물론 그의 이러한 주장들이 반드시 옳다고만은 이야기할 수 없다. 또한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조지 오웰이 살았던 바로 그 시기 그리고 작가로서 활동했던 당시의 오웰 자신이 처해 있던 상황과 시대적 상황-영국의 식민지 국가에서의 경찰 생활, 제국주의, 2차 세계대전, 파시즘, 독재, 빈민들, 가난-들을 고려해 볼 때, 오웰의 이러한 신념과 의지는 작가로서의 양심이라든가 책임감을 넘어선 지극히 자연스럽고 절박한 것인지도 모른다.
"죄수가 웅덩이를 피하느라 몸을 비키는 것을 보는 순간, 한창 물이 오른 생명의 숨줄을 뚝 끊어버리는 일의 불가사의함을,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알아본 것이었다.(중략)그와 우리는 같은 세상을 함께 걷고, 보고, 듣고, 느끼고, 이해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2분 뒤면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 중 하나가 죽어 없어질 터였다. 그리하여 사람 하나가 사라질 것이고, 세상은 그만큼 누추해질 것이었다."(26쪽)조지 오웰의 수백 편에 이르는 에세이 가운데 29편을 한데 묶은 <나는 왜 쓰는가>는 크게 두 가지 주제가 공존하고 있다. 하나는 그의 정치적 성향과 입장에 대한 것, 또 하나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애(humanity)에 관한 통찰과 자기반성이다. 영국의 식민지 중 하나인 버마(오늘날의 미얀마)에서의 경찰 생활과 빈민가에서의 하층 생활은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인간이 인간을 대함에 있어서, 내가 타자를 대함에 있어서 과연 인간은 얼마나 인간을 인간으로써 대하고 받아들이고 있는가. 식민지 주둔 경찰로 분명하기 짝이 없는 또 하나의 인간-버마인이자 힌두교인-을 교수형에 처하고, 환자들을 그저 학습이나 연구에 필요한 교재로, 표본으로 대하는 의사들을 지켜보면서 그는 불가사의하고 낯선 감정들을 감지하게 된다.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감정, 낯설고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들을 통해 잊고 있었던 혹은 오웰 자신의 정신세계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애에 대해 이야기한다. 원론적이거나 학술적 혹은 고답적인 접근이 아닌 자신의 경험을 통해 생생하게 느꼈던 감정들을 풀어내면서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상실되어 가는지, 인간애가 어떻게 외면당하는지 성찰하고 있다.
조지 오웰은 인간 자유에 대한 통제와 지배,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를 반대했으며 이에 맞서는 방법으로 글쓰기와 문학을 선택했다. 총보다는 펜이었다고 해야 할까. 오웰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 보고자 고군분투했고, 그의 작품들을 접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오웰의 이러한 분투는 분명 이루어졌다. 47년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조지 오웰의 생애를 돌아보고, 그의 사상과 신념들을 반추함에 있어서 조지 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는 적절한 동반자가 되어주고 있다.
"책의 제목을 '나는 왜 쓰는가'로 한 것은, 같은 제목의 에세이가 그의 문학론과 정치적 입장을 단적으로 가장 잘 대변해주며, 작가로서의 자신에 대한 짤막한 자서전으로 봐도 좋을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이 에세이에서 정치와 문학은 별개가 아니며, 어떤 글쓰기도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한다.(중략) 작가로서의 그에겐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 가장 큰 관심사였던 것이다." (476쪽, 역자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