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회든 구성원 간의 갈등은 존재하며 적절한 수준의 갈등은 사회의 발전과 성장의 밑거름이 됩니다. 적절한 수준의 갈등이란 그 사회가 무리 없이 감당해 낼 수 있는 정도의 갈등을 말합니다.
그릇은 작은데 담는 양이 많으면
그러나 갈등의 크기와 깊이가 그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정도 이상이면 문제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갈등은 내재된 상태로 있지 못하고 표면화됩니다. 그릇은 작은데 담는 양이 많으면 흘러넘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갈등이 심화되면 사회 분열현상이 일어나고 공동체의식이나 사회적 효율성과 생산성은 바닥까지 떨어집니다. 더 심해지면 체제붕괴로 이어지지요.
갈등을 해결하고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은 곧 그 집단의 사회적 역량입니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다투고 돌아서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큰 일을 당해도 서로 이해하고 감싸주는 부부도 있습니다. 전자에 비해 후자가 갈등 소화역량, 즉 갈등관리능력이 월등히 좋다는 얘기가 됩니다. 물론 후자의 경우에서 발전과 성공확률이 높은 건 당연합니다.
우리 사회는 어떨까요? 갈등 관리능력이 어느 수준일까요?
예산파행, MB 정권의 '그릇' 참 작다
갈등 관리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치역량입니다. 정치는 타협과 조정의 기술입니다. 다양한 요구와 주장을 조정하고 타협해내는 장치가 바로 정치제도입니다.
타협과 조정은 물리적 기술이 아니라 '인문적 기술'이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가치관과 철학이 매우 중요합니다.
불가피하게 갈등이 표면화될 경우, 이쪽 저쪽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힘이 들고 시간이 걸려도 한쪽을 짓밟는다거나 밀쳐내서는 안됩니다. 어느 한쪽도 소외당하지 않도록 합리적인 타협책을 마련하고 조정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게 바로 정치역량입니다.
우리 사회는 갈등관리 능력이 부족합니다. 정치권의 정치역량은 어린 아이 수준이고, 대통령이 발휘해야 하는 '최후 조정기증'은 이미 실종된 상태입니다.
이번 새해예산 여당 단독처리는 우리 정치가 얼마나 미성숙한지를 한눈에 보여 주었습니다. 국민의 '그릇' 보다 정치권의 '그릇'이 훨씬 작고 용렬하다는 걸 또 한번 확인시켜준 사건이 이번 국회 예산파행입니다.
예산파행 두고 대통령 "다행스러운 일", 옹색한 골목대장 모습
여야의 주장이 대립되고 갈등이 불거지자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여야 모두 최악의 수를 두고 말았습니다. 이런 최악의 수를 두고 여당 원대대표라는 작자는 "이것이 정의다"라고 떠들었습니다. '편향 증상'이 심각한 사람이라고 밖에 보여지지 않습니다.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여당과 대통령이 책임져야 할 사태입니다. 조정과 타협을 포기하고 수적 우위만 내세워 갈등의 한쪽을 완전히 소외시킨 작태는 지탄을 받아 마땅합니다. 대통령은 뒤에서 마지막 조정자 역할을 했어야 맞습니다. 국가수반이니까요. 하지만 본분을 내던지고 수 싸움이나 하는 여당 무리의 '대장' 역할이나 자처하더군요. 옹졸하고 초라한 골목대장의 모습이었습니다.
다수의 여야 의원들이 서로 주먹을 휘둘러 피를 흘리고 있는데, 국민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국회를 주시하고 있는데, 초등학교 아이들까지 난장판 싸움을 보며 어리둥절해 있는데, 우격다짐으로든 뭐로든 일단 예산이 통과 됐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대통령은 비행기를 타면서 이렇게 반색을 했습니다.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다행이다'... 예산파행 겪고 패싸움한 게 다행스러운 일인가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발언인지 의아할 정도입니다. 떼거지 패싸움한 게 다행스럽다니요? 형님이라고 예산 증액 멋대로 해버린 예산파행을 두고 다행스럽다니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불행한 일, 창피한 일이지요. 이 정도는 초등학생도 압니다.
대통령이 조정자 역할을 포기하고 '여당 무리의 대장'으로 자처하는 우를 범한 까닭에 우리 사회의 갈등이 증폭됐고, 집권 3년 동안 국민들은 하루도 편할 날 없이 살고 있습니다. 서민들은 먹고 살 길 조차 막막한데 설상가상 남북 간 극단적인 위기까지 조성되면서 큰 걱정 하나 더 끌어 앉고 시름에 겨워하고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형님 예산'을 본 국민들은 경악했습니다. 울산-포항 고속도로, 포항-삼척철도 건설, 과메기 산업단지 조성 등을 명분으로 형님 지역구가 무려 1623억원이나 증액해서 예산을 받게 됐더군요. 고속도로와 철도가 내년이 사업 첫해라는 걸 감안한다면 실질적으로는 수천억 이상 더 받아간 겁니다.
국민 88.4% 현정권 들어 사회갈등 더 심화됐거나 여전해
9일 <국민일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GH코리아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더군요. 사회 갈등에 관한 질문에 응답자의 88.4%가 현정권 들어서 갈등이 더 심화됐거나 여전한 상태라고 답했습니다. 갈등이 '완화됐다'고 답한 사람은 겨우 8.7%였습니다. 응답자의 40% 정도가 정치갈등이 가장 심각하다고 밝혔습니다.
사회갈등이 이 정도로 심화됐다니 걱정입니다. 우리 사회가 이 수준의 갈등을 소화시킬 수 있을지 그렇지 못해 그대로 분출하고 말 건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분명한 건 사회갈등이 휴화산이 아니라 점차 활화산이 돼 가고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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