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남소연
"MB정권이라는 저수지에 쥐구멍이 뚫렸다. 권력이 무너지는 물꼬가 터진 것이다. 이 구멍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윤증현 장관을 용서한다고 해도, 국민이 용서하겠나. 한나라당 지도부와 정부 책임자가 물러나고 대통령이 사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흥길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새해 예산안 강행처리 과정에서 템플스테이 예산 등이 빠진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하지만 야당의 참여 아래 예결위 계수조정소위가 진행 중임에도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고, 상임위에 상정되지도 않은 과학기술기본법과 상임위에 회부는 됐으나 한 번도 논의하지 않은 아랍에미레이트(UAE) 파병안을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해 버렸다. 이 유례없는 사태가 '꼬리자르기'가 역력한 고흥길 의장의 사퇴로 마무리될 수 있을까.
171석이라는 국회 과반을 훨씬 넘는 의석을 가진 한나라당이지만, 상황이 녹록치만은 않다. 현재를 김영삼 정권 몰락의 시발점이 된 "1996년 겨울 노동법 기습처리 때가 생각난다"고 한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발언은 내부 권력투쟁의 성격도 있지만, 이 같은 분위기의 일면을 보여준다.
13일 오후 국회에서 만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고흥길 의장의 사퇴에 대해 'MB정권 몰락의 시작'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놨다. 그는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노동법을 밀어붙여도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한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도 예산안과 쟁점법안을 이렇게 밀어붙여도 걱정없다는 오만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며 "당장은 몰라도, 예산이 집행되는 내년에는 피부로 느끼게 되면서 국민적 저항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종편 선정되면 MB에 우호적인 언론환경 바뀐다"한겨울 장외투쟁이 성과를 내기 어렵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서 그는 "거리에서 직접 유인물 30장을 뿌리면, 거부하는 사람은 한 명뿐일 정도로 분위기가 좋다"고 강조했다. 또 "종편(종합편성채널)이 선정되면 이명박 정부에 대단히 우호적인 언론환경이 바뀌기 시작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선정된 언론은 정권의 혜택을 부정하는 한편 새로운 미래권력을 의식할 것"이고, "탈락한 언론은 그 반발로 이명박 정권과 각을 세우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서울광장 농성에 이은 지역순회 집회를 끝낸 이후 민주당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이에 대해 박 원내대표는 "손 대표에게 제안한 것"이라며 "민주당은 추운 노인정, 아이들 예방접종 현장, 대학 등록금 납부처, 결식아동들, 4대강 공사로 물이 썩고 물고기가 죽어가는, 이번 예산안 문제가 피부로 느껴지는 전국 곳곳의 현장을 찾아다닐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년부터 사실상 총선, 대선이 시작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예산안 투쟁'을 민주당 조직 정비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와 신재민·이재훈 장관 후보자를 낙마 시키는 등 원내대표 취임이후 승승장구해온 그는 예산안 저지 실패로 인해 스스로 사퇴 의사를 밝히는 등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예산안 처리에 대해 협의했던 내용을 설명한 뒤 "정치는 진짜 살아있는 생물"이라며 "만약 한나라당이 4대강 예산 삭감에 소극적으로 반대해서 합의 처리됐다면 아마 내가 오늘날 한나라당이 당하는 국민적 수모를 당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그는 김무성 원내대표에 대해 "지금도 왜 그렇게 했는지, 왜 청와대 지시에 '노'라고 안했는지 아쉽다"고 말했고, 이번 상황에 대해 의견을 밝히지 않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목표라면 지도자답게 불리한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문답 전문.
"정치는 생물, 예산 합의 처리했으면 내가 수모 당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