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핸드폰 발화와 개인 이메일이 무슨 상관?

경찰 "수사상 필요하니 2008~2010년 제출하라"... 이진영씨 "도 넘는 요구"

등록 2010.12.22 14:40수정 2010.12.2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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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핸드폰 발화 사고의 피해자라고 주장해온 이진영씨가 종로경찰서 담당수사관으로부터 받은 메모지. 2008년 1월부터 현재까지 약 3년치 이메일을 제출하라는 내용이다.
삼성 핸드폰 발화 사고의 피해자라고 주장해온 이진영씨가 종로경찰서 담당수사관으로부터 받은 메모지. 2008년 1월부터 현재까지 약 3년치 이메일을 제출하라는 내용이다. 오마이뉴스

'삼성 핸드폰 발화사고'와 관련된 명예훼손 고소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이 '피해자'라고 주장해온 이진영씨에게 약 3년치의 이메일 제출을 요구해 물의를 빚고 있다.

서울 종로경찰서 사이버수사팀(팀장 문영구 경위)은 지난 17일 오후 이씨를 불러 조사하는 과정에서 "2008년 1월부터 현재까지 주고받은 이메일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이씨가 "이메일을 제출해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담당수사관은 "공범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다"고 답변했다.

이와 관련, 경찰 쪽은 "수사상 필요해 제출을 요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경찰은 지난 10월 1차 소환조사에서도 "2년치 통화내역을 제출하라"고 요구해 '과잉수사' 의혹을 샀다.

경찰 "여러 사람 피곤하니까 자진해서 3년치 이메일 제출"

'삼성 핸드폰 발화사고'의 피해자라고 주장해온 이씨는 지난 17일 오후 다섯 번째 경찰조사를 받았다. 담당수사관은 이씨에게 "주로 사용하는 이메일이 뭐냐?"고 물은 뒤 이렇게 말했다.

"이메일을 압수수색하려면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등 쉽지 않다. 특히 이메일을 압수수색하면 연결된 이메일까지 훑을 수 있어서 당신도 피곤하지 않겠냐? 이렇게 여러 사람이 피곤하니까 자진해서 이메일을 제출해라."

담당수사관은 이씨가 제출해야 할 이메일을 '2008년 1월부터 현재까지'로 한정한 뒤 자신의 이메일 주소가 적힌 메모지를 그에게 건넸다. 삼성 핸드폰 발화사고가 지난 5월 13일 일어났다는 점에서 경찰이 2008년과 2009년 이메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은 '과잉수사'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이씨가 "제가 이메일을 제출해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담당수사관은 "공범을 찾기 위해서 그렇다"고 답변했다. 특히 "내 이메일은 언론사 기자들과 주고받은 것이 대부분"이라고 말하자, 담당수사관이 "우리가 보고 싶은 이메일도 당신이 기자들과 주고받은 것"이라고 응수했다고 이씨는 주장했다. 

경찰이 3년치 이메일을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과 관련, 이씨는 "사고가 난 이후 국내 언론사는 물론이고 해외 유명 언론사와 블로그 등에도 제보했다"며 "그래서 경찰도 내가 제보한 언론사들과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을 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핸드폰 사고가 일어나면 소비자로서 언론사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3년치의) 이메일을 제출하다 보면 개인의 사생활까지 불가피하게 드러날 수 있다"며 "그런데도 경찰이 이메일을 제출하라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터드렸다.

이씨는 "삼성에서 저를 고소하기 전, 일부 해외언론에서 삼성에 취재를 요청한 것으로 안다"며 "해외언론이 이렇게 취재에 나서자 삼성은 지난 9월 저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지난 9월 삼성전자가 이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이후 총 5차례 소환조사를 벌였다. 특히 지난 5일에는 이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그의 다이어리와 메모노트, MP3, 개인서류, 오븐 장갑 등을 압수해 갔다.

경찰은 그동안 벌인 조사에서 고소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내용까지 캐물으며 이씨를 압박해 왔다. "정당이나 사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나?" "부모님의 국적은 어디냐?" "최근에 만나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 등의 질문은 물론이고 "2년치 통화내역을 떼오라"는 등 도를 넘는 요구를 해왔다는 것.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한 간부는 지난 8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정당이나 사회단체 가입 여부는 수사상 필요한 사항이라 물어봤을 뿐 이메일 내역을 떼오라고 요구한 적은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씨는 "제가 경찰에서 본 수사기록만 1000쪽에 육박하고 있다"며 "특히 제가 재판받을 수 있도록 사건을 검찰로 송치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도 경찰은 사회생활이 힘들 정도로 계속 수사하고 있다"고 '과잉-압박수사'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하지만 종로경찰서의 한 간부는 "수사기관이 수사상 필요해서 이메일 내역 제출을 요구한 것"이라며 "이씨가 2008년부터 휴대폰과 노트북, 팩시밀리 등의 삼성 제품에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찰쪽은 지난 20일 이씨에게 보낸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약속한 메일이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며 이메일 내역 제출을 독촉하기도 했다.

"원하는 건 제 명예를 훼손한 삼성의 진심어린 사과뿐"

 이진영씨는 자신이 삼성 핸드폰 발화사고의 피해자라며 1인시위를 벌여왔다.
이진영씨는 자신이 삼성 핸드폰 발화사고의 피해자라며 1인시위를 벌여왔다.이진영씨 제공
한편 이씨는 최근 <딴지일보>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한글판과 영문판 호소문을 작성했다.

이씨는 이 호소문에서 "초기에 삼성측의 담당자들은 제가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해 매우 불성실한 태도로 보상조치에 임했고, 분노한 제가 일부 인터넷언론에 이 사건을 알려 보도가 되자 그때서야 행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 이후로도 그들은 사건 발생의 원인을 조사하거나, 책임의 소재를 확인하는 절차도 진행하지 않고, 그저 제가 이 사건에 대해 언론에 얘기를 하지 않기만을 원했다"며 "그 조건으로 제가 요구하지도 않은 돈(500만원, 4000여불 상당)을 주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그러나 사건은 그걸로 마무리되지 않았고, 각종 언론에는 삼성 측이 제공한 자료에 의존한 기사들이 넘쳐났다"며 "그 기사들에 의하면 저는 전형적인 블랙컨슈머(악성 민원 소비자)로 묘사되었는데, 그들은 자신들과 자신들의 제품의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하여 제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이에 저는 저에게 주어진 유일한 수단을 택하여, 다양한 장소에서 삼성의 잘못된 행동을 알리는 일인시위를 시작했고, 약 40여일간 지속해왔다"며 "그러자 삼성측에서는 오히려 피해자인 저를 상대로 '명예훼손'의 항목으로 형사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또한 이씨는 "삼성전자라는 대기업은 한국 사회에서는 공권력에 대한 영향력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로 거대한 기업"이라며 "삼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경찰은, 일방적으로 삼성측의 입장에만 의존하여 조사를 진행해왔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제가 삼성측을 상대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제기한 명예훼손 관련 소송은 신속하게 '이유 없다'고 기각되었다"며 "그러나 삼성측에서 제기한 건을 조사하는 경찰은 급기야 2010년 12월 5일 저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구속수사를 언급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씨는 "한국사회에서 명예훼손 관련 사안에서 압수수색이 벌어지고 구속수사가 언급되는 상황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결국 삼성전자는 자신들의 반소비자적인 행태를 숨기고, 문제를 제기하는 개인 소비자의 권익을 짓밟기 위해 사법권력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저를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이씨는 "제가 원하는 것은 저의 명예를 훼손한 삼성전자측 담당자들의 진심어린 사과뿐"이라며 "만약 저의 이런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삼성전자의 반소비자적인 행태는 지속될 것이고, 그로 인한 피해는 우리 모두에게 닥쳐오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결국 이 문제는 저 자신, 한 개인 소비자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대기업과 다수의 소비자 간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는 정의와 관련된 문제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5일 이진영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뒤 수첩과 노트, MP3, 전자레인지용 장갑 등을 가져갔다.
경찰은 지난 5일 이진영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뒤 수첩과 노트, MP3, 전자레인지용 장갑 등을 가져갔다.오마이뉴스

이진영씨가 정리한 '삼성 핸드폰 발화사고' 일지
2010년 5월 13일 : 새벽 휴대폰 폭발(일부에서는 '발화'라고 표현함-편집자주)

5월 14일 : 한국소비자연맹측을 통해 삼성전자측에 사고 내용 전달. 삼성전자측 "일단 관할 주소지 서비스센터의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유함. 하지만 어떤 직원도 방문하지 않고, 다음날 SKT대리점을 연결시켜 줄 테니 휴대폰을 구입하라고 제안함.

5월 15일 : 삼성전자 측의 무책임에 분개해 <뉴시스> 등에 제보함.

5월 17일 : 김모 삼성전자 차장 등 3인이 방문함. "만에 하나 기계 결함이 아닌 사고일 수도 있으니까 현장 검증을 하자"고 제안함. 하지만 삼성전자측은 "우리는 소비자 과실에서도 배우고, 소비자 과실이 아니어도 우리는 배운다"며 협상을 제안함. 서로 민형사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언론에도 알리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아 500만원 보상을 제시해 고민하다가 합의성에 서명(당시 합의서는 삼성 직원들이 수거해 감).

5월 19일 : 광화문에서 삼성전자측 관계자들과 만나 '우리은행 쌍림동 지점' 발행 자기앞 수표 50장 (10만원권)을 보상합의금으로 전달받음.

6월 28일 : 삼성전자측 김모차장이 사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정부 산하 연구소(한국산업기술시험원)에서 감식한 결과라며 보고서 표지를 보여주고 "외부발화에 의한 것으로 나왔다"라고 말함. 이어 보고서 내용에 동의한다는 내용에 서명해 달라고 요청해 "먼저 보고서 내용을 검토한 후에 서명할지 결정하겠다"고 말함. 다만 이날 "보고서가 존재한다는 확인서"(2차 합의서)에 서명함.

7월 2일 : 삼성전자-소비자단체 대표-이진영 3자 회동 불발.

7월 5일 이후 : 삼성전자측이 보고서 공개 요청을 거부해 향후 원만한 합의는 어렵다고 판단. 언론사에 제보를 해서 <프레시안>과 <경향신문> 등에서 기사가 나옴. 하지만 이날 이후 약 2주간 <서울신문>, <아시아경제>, <한국일보>, <이데일리>, <한국경제>,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등에서 나를 '블랙컨슈머' '환불남'으로 매도하는 기사가 쏟아짐.

▲7월 23일 이후 :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의 사과를 요구하며 약 40여일간 삼성본관, 이건희 회장 자택 앞, 승지원, 리움 미술관, 에버랜드, 신라호텔, 수원 삼성전자 중앙문 등지에서 1인 시위.

8월 30일 : 원만한 해결을 위해 나서 달라는 등기우편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게 발송.

9월 9일 : 수원 남부경찰서에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장 접수되었으니 조사 받으라고 통보해 주거지인 종로경찰서로 사건 이송 신청.

9월 13일 : 삼성일반노조, 언소주, 양심수후원회, 경실련 간부와 간사 등 시민·사회 사회단체들이 모여서 삼성전자 고소건과 관련해 대책회의를 개최.

9월 28일 : 서울 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삼성전자를 상대로 '명예훼손 맞 고소장'을 제출.

10월 15일 : (1차 경찰조사) 부모 국적, 직업, 현재 사는 집의 전월세 여부, 보증금이 얼마인지, 종교, 소속 정당 및 사회단체 물어봄. 2년치 통화내역을 제출할 것을 요구함.

11월 4일 : (2차 경찰조사)

11월 9일 : 국가 인권위원회 진정 제기. 사생활 침해, 진술거부권 침해, 언론의 자유침해의 내용. 의견서 제출.

11월 17일 : (3차 경찰조사)

11월 24일 : 인권위원회 진정 각하처분. 헌법 재판소에 헌법소원 제기(진술거부권 침해, 2010헌마719).

11월 25일 : 인권위원회 재차 진정.

12월 5일 : 경찰, 자택 압수수색. "조만간 여자친구와 거래처도 조사 하겠다, 당신이 자백을 안해서 여러 사람 피곤해진다"는 등의 발언을 함. 김용철 변호사의 책을 보며 '중요한 자료니 빨리 사진 찍으라'고 하고, 전자렌지용 장갑을 증거물로 압수.

12월 7일 : (4차 경찰조사)

12월 17일 : (5차 경찰조사)

#이진영 #삼성 핸드폰 발화사고 #종로경찰서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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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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