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만 안 시킬 수도 없어요"

국내 영어캠프, 과연 믿을만 한가

등록 2010.12.20 18:23수정 2010.12.2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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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오아무개(11)군은 곧 다가오는 겨울방학이 별로 달갑지 않다.

 

"그냥 방학하지 않고 계속 학교만 다니고 싶어요. 제 친구들도 다 겨울방학 싫다고 하던데….

 

한 달 내내 손꼽아 방학식 하는 날만을 기다리던 아이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학교 수업이 끝나고 이제 영어 학원에 가는 길이라는 오군은 "방학하면 지금보다 더 바빠요. 학교 갈 때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캠프 갔다가 3시에 끝나면 또 학원가고, 숙제도 더 많아요" 라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바쁜 방학을 보내야 하는 초등학생은 오군뿐만이 아니다. 대부분 초등학생들이 벌써부터 쉴 틈 없는 방학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 젊은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국내 영어캠프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영어캠프는 몇 백 만원이 넘는 비싼 비용의 해외 영어캠프보다 부담이 없고 해외로 나갈 필요 없이 단기간에 집중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워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방학 필수 코스다.

 

하지만 대부분 영어캠프들이 내세우는 단기간 집중 영어교육 프로그램의 명성은 이에 대한 학부모들의 기대와는 달리, 그저 단순한 놀이 캠프로 전락해버리는 경우가 많아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비용도 3주 과정의 경우 250만원이 넘어 적은 비용도 아니다.

 

영어 캠프, 무엇을 가르치려는 건가?

 

 "저희는 9시부터 4시까지 총 7시간을 6교시로 나눠서 체계적인 교육을 해요. 한가지만 반복적으로 학습하는게 아니라, 각 시간마다 배우는게 달라요. 오전에는 단어를 외우고 책을 읽는다면, 오후에는 영어 동요를 배우거나 뮤지컬을 해보면서 말하기 연습을 하는, 그런 식으로요."

 

A대학에서 주최하는 통학형 영어캠프 담당자 최아무개(34)씨의 말이다.

 

 A대학이 주최하는 이 캠프를 포함한 국내의 대부분 통학형 영어 캠프들은 이와 비슷한 스케줄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3주에서 4주를 기숙사에서 지내는 숙박형 캠프도 조금 더 다양한 운동이나 게임 등의 활동이 더 추가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같은 커리큘럼을 고집한다.

 

 물론 캠프에서 제시하는 시간표를 내보이며 설명하는 담당자의 말을 듣는 학무보들은 대부분 큰 걱정 없이 영어캠프를 선택한다. 

 

"학원은 아이가 지루해하고 힘들어해도, 캠프는 아이가 그런 어려움 없이 영어에 좀 더 재미를 붙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번 겨울 초등학교 2학년 딸을 B사에서 주최하는 영어 캠프에 보내는 학부모 이아무개(40)씨가 말했다.

 

 그러나 예전에 자녀들을 영어 캠프에 보낸 경험이 있는 학부모들은 이러한 프로그램의 다양성이 오히려 영어 캠프의 치명적이 문제라며 불만을 표현했다. 실제로 영어 캠프가 끝난 이후 작성하는 설문지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 학부모, 학생들은 기대만큼 영어 실력이 늘지 않았다는 점을 가장 불만족스럽게 생각한다.

 

 3주에서 4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큰 실력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도 비현실적일 수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커리큘럼의 지나친 다양성에 기초한다. 많은 영어 캠프들이 짧은 시간 내에 지나치게 여러 가지를 학습시키려 해서 결국 어느 하나도 완벽히 가르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영어 캠프에 참가했던 학생들의 말에 따르면 시간표에 따라 철저히 수업이 진행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뮤지컬 연습시간인데 동작하고 대사를 다 못 외워서 그 다음 시간인 책읽기 시간에도 계속 뮤지컬 연습만 했어요. 연습 다 한 애들은 그냥 자기 하고 싶은거 하고 놀고."

 

작년 여름 A대 영어캠프에 참가했던 김아무개(13)양이 말했다.

 

또한 뮤지컬이나 게임같이 너무 흥미 위주의 수업은 영어 교육 캠프보다는 일반적인 놀이 캠프의 면을 더 띄고 있어 때때로 학부모의 불만을 사고는 한다. 특히 이러한 쉽고 재미있는 방식의 영어 교육이 저학년 아이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단지 그 시간들이 선생님의 확실한 통제 없이 '노는 시간' 또는 '쉬는 시간'과 같은 무의미한 몇 시간이 인식 될 뿐이다.

 

더 나아가, 거의 모든 영어 캠프들은 캠프를 통해 하루 종일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말함으로써 영어 실력을 늘릴 수 있다는 말을 늘 강조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정말 캠프에 가 있는 7시간 이상의 시간동안 친구들 , 선생님들과 늘 영어로 대화하고 있는걸까?

 

 "교실에서 한국말 한 번 할 때마다 벌점 스티커 하나씩 받아요. 근데 외국인 선생님이나 한국인 선생님한테 안 걸리면 상관없어요. 그래서 애들하고는 몰래 한국말로 얘기해요. 처음에만 영어 하는 척 하고, 다 그래요."

 

올해 여름 C사 영어 캠프에 참가했던 배아무개(10)군은 캠프 기간 중 하루종일 영어로만 말했던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배군이 참가했던 C사 영어 캠프 이외에 다른 영어 캠프들도 이와 같은 문제를 모두 인식하고 있지만 벌점제도와 같은 가벼운 처벌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리 아이, 누구에게 맡겨지는 건가?

 

캠프의 전반적인 커리큘럼보다 학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사이자 걱정거리는 바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외국인 교사 문제다.

 

"요즘은 학부모님들이 워낙 깐깐하셔서 캠프 홈페이지에 외국인 교사 프로필을 미리 다 공개해요. 출신 대학이나 경력이 사진하고 같이 나와 있기 때문에 그래도 신뢰감을 줄 수 있죠."

 

B사 캠프 담당자의 말처럼 이제 홈페이지에 접속만 하면 모든 국내 영어 캠프 사이트에서 외국인 교사의 간단한 프로필을 확인 할 수 있다.  반면 캠프 회사에서 내놓은 프로필 자체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문점이 제기될 수 있다. 물론 모든 회사들은 원어민 강사를 채용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보통 1차 서류 심사와 2,3차 면접을 통한 최종 선발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작년 A대 캠프에서 원어민 강사로 일한 한 캐나다인 T(27)씨에 의하면 여러 강사들이 오로지 몇 분 동안의 전화 면접을 통해 강사로 선발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T씨 또한 간단한 서류 심사를 거친 후, 자신의 경력과 캠프에 지원한 계기등을 짧게 대답했던 것이 전부라고 할 정도로, 캠프 회사가 주장하는 검증된 선발 과정은 그 기준 자체가 매우 모호한 경우가 많다.

 

 또한 원어민 교사 자체의 신원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영어교육 열풍에 힘입어 국내에서 일하는 원어민 영어 교사 비율이 높아지면서 한 원어민 교사가 마약을 복용한 상태에서 수업을 진행했다거나 성희롱 사건에 휘말린 한 원어민 교사가 과거에도 해외에서 성폭행 혐의가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는 뉴스가 가끔 보도되고는 한다. 또한 손쉬운 서류 조작을 통해 학력을 위조하거나 경력사항을 부풀리는 행위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현실이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현재 원어민 교사를 채용하는 학원이나 학교 같은 단체들이 엄격한 신원조회를 시행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뉴스에서 그런 소식을 듣고 정말 놀랐어요. 학력 위조 뿐만 아니라 마약이나 성폭행 사실까지 미리 확인하지 않았을 줄은 몰랐죠. 그런 사람들한테 우리 아이가 맡겨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불안해요."

 

초등학생 자녀 둘을 캠프에 보낼 계획인 학부모 강아무개(41)씨는 걱정을 나타내면서도 그래도 캠프 회사를 믿는 방법밖에는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커리큘럼 방식, 교사 채용, 다 완벽하지 못하다는 사실 알면서도 보내죠. 그래도 해외로 아예 연수 보내는 거보다 훨씬 부담도 덜하고, 방학동안 필수 코스처럼 남들 다 하는데 내 아이만 안 시킬 수 없고."

 

11살 오군의 어머니 이아무개(42)씨 뿐만 아니라 대부분 학부모들의 이러한 고민이 겨울 방학이 가까워질수록 더 깊어지고 있다. 

2010.12.20 18:23ⓒ 2010 OhmyNews
#영어캠프 #국내 영어캠프 #겨울방학 #방학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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