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춘 씨지금 기춘씨는 공장 시멘트 믹서기에서 일을 하고 있다. 눈이 감길 정도로환한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은 요즘 그의 상태라 하겠다.
송상호
재기를 노렸다. 자동차 매매업을 지인과 함께 시작했다. 그가 사장이었고, 지인은 실질적인 업무 담당자였다. 뒤에 알고 보니 그는 일명 바지사장이었던 것. 기춘씨의 이름으로 사기를 치고 한몫 챙긴 동업자는 날라 버렸다. 엎친데 덮쳤다. 잘해 보려다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었다.
이젠 삶의 희망이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잠시 중단했던 술이 친구가 되었다. 그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가족마저 그에게 등을 돌렸다. 서울 천호동 근처에서 자그마치 1년 반을 노숙자 생활을 했다. 겨울에 바깥에서 자다가 밤새 내린 눈더미에 깔린 적도 있었다. 빈속에 깡 소주가 그의 속을 헤집어 피를 토하게 했다. 병원에서도 그는 이제 죽는다고 선고했다. 모진 목숨, 죽지 못해 살던 것도 이제 끝이려니 했다.
그러다가 조계사에서 실시하는 '다시 서기 센터' 프로그램을 만나 재기를 꿈꾸었다. 이대로 무너질 순 없었다. 센터에서 소개한 노숙자 쉼터가 안성 일죽에 있었다. 거기로 와서 당분간은 술과 멀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동료의 순간 꾐에 넘어가 다시 술을 입에 댔다. 이제 그에게 희망의 불씨는 완전히 소진되어 버렸다. 조그만 술병 앞에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자신을 추스를 건더기는 남지 않았다.
운명적인 만남이 그를 바꿔 놓다
그날도 술에 만취돼 안성의료원에 실려 갔다. 이런 일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새삼스럽지 않은 불우한 인생에 파문을 던진 것은 안성 '동부무한돌봄네트워크팀(팀장 이혜주)'이었다. 복지사 장은영씨와 현바울씨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처음 보는 자신에게, 그것도 살 가치가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초라한 자신에게 지극정성으로 다가왔다. 물을 건네고, 힘을 내자고 하고, 다시는 술을 먹지 말기로 손가락 걸고 약속도 하고.
고마운 마음에 바꾸려 했지만, 오랜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았다. 이때 신기한 일이 생겼다. 일하러 나간 이기춘씨의 귀에 자꾸만 '초상집 상여 메고 가며 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느냐고 했지만, 그것은 오로지 그만의 경험이었다. '순간 이제 정말 내가 죽으려나 보다. 죽음이 나를 부르는 구나'싶어 두려웠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이제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의지가 스멀스멀 기어올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