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겉그림〈백년명가〉
중앙북스
목회를 하다 보니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신안 지도에서 장흥으로, 광주로, 전주로, 인천으로, 충북 충주로, 경기 하남으로, 그리고 서울로. 그때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도 있지만 음식도 빼놓을 수 없다. 신안의 홍어회, 장흥의 장어구이, 광주의 떡갈비, 전주의 왱이콩나물과 비빔밥, 인천의 화평동냉면과 아구찜, 충주의 보리밥정식과 올갱이, 하남의 명가순대국 등.
사실 홍어회는 잔칫날이나 명절 때면 즐겨 먹곤 했다. 고향이 남도인 까닭이라 자주 접했다. 코를 쏘는 듯한 냄새가 독하지만 그 맛은 일품이다. 더욱이 소화도 잘되고 몸에도 좋다고 하지 않던가. 최근에는 홍어삼합도 인기 있는 음식이라, 서울 신설동과 권농동의 여러 음식점들이 곧잘 쏟아내고 있다. 그래도 홍어음식은 신안과 나주권이 최고이지 않나 싶다.
7년간 전주에서 살 때는 왱이콩나물국밥을 즐겨 먹었다. 당시 2,500원 정도였고, 아침 해장국이나 저녁식사 대용으로 딱이었다. 콩나물에 계란을 풀어 넣고, 비빔밥 섞듯 한 입 한 입 넣으면 맛이 일품이었다. 무엇보다도 콩나물 뿌리까지 들어서 영양가도 만점이었다. 그에 비해 비빔밥 정식은 값도 만만치 않았고, 반찬도 여러 가지라, 내게는 적절하지 않았다.
비빔밥은 흔히들 전주 비빔밥을 제일로 쳐준다. 하지만 진주의 육회비빔밥도 뒤처지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두 지역이 비빔밥의 원조일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일간스포츠 백년명가 취재팀에서 펴낸<백년명가>(중앙books)를 보면 그 원조는 울산으로 나온다. 1924년에 시작하여 올해로 85년째 하고 있는 울산의 '함양집'이 바로 그곳이다.
"비빔밥에는 잡곡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지론에 따라 초대 함양 집 주인인 강분님 씨 때부터 하얀 쌀밥을 고집하고 있다. 백미가 귀한 한국전쟁 당시에도 현미를 절구에 찧어 백미를 만들 정도로 정성을 들여 흰쌀밥을 내 놓았다. 밥 맛을 결정하는 쌀은 10년째 경북 의성군 안계면에서 가져다 쓴다. 비빔장은 찹쌀고추장에 된장과 소금을 넣어 만든다. 된장을 섞으면 매운 맛이 덜하고, 약간 구수한 맛이 여운처럼 입안을 맴돈다."(67쪽)사실 이 책은 일본의 '시니세'(老鋪)에 견줄만한 우리의 명가음식을 발굴하려는 취지에서 펴낸 것이다. 일본에는 초심을 잃지 않고 100년 넘게 대를 이어 가게를 꾸려가는 점포가 있듯이, 우리도 그런 음식점을 지켜나가자는 뜻에서 이 책을 펴낸 것이다. 요즘에는 하루에도 수십에서 수백 개의 음식점이 문을 열고 닫는 추세인데, 백년을 이어나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장인정신이 깃들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런 음식점을 지켜낸다는 것은 그만큼의 내공이 깃들어 있다는 뜻도 될 것이다.
충주의 문화동에서 먹었던 보리밥은 진짜로 일품이었다. 보리밥이야 쌀밥보다 건강상에 더 매력만점이다. 그런데 보리밥을 먹고 나면 으레 방귀를 뀌는 것으로 생각한다. 더욱이 보리밥 때문에 냄새도 더 지독하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보리밥을 먹으면 장내 활발한 운동 때문에 방귀가 나올 수 있지만, 지독한 냄새는 보리밥이 주범이 아니라 장내 노폐물과 부패한 세균이라고 한다. 순천 광암리에 있는 '조계산원조보리밥집'은 1시간 등산 끝에 먹을 수 있는 꿀맛집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그 맛을 보려고 기꺼이 등산한다고 한다.
서울 마천동 남한산성 골목길은 여러 음식점들이 혼합돼 있다. 보쌈집, 불고깃집, 부대찌개집, 족발집, 그리고 순댓국집 등. 가끔씩 등산객을 상대로 전도 하다보면, 산 아래의 음식점을 들고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대체로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 있다. 그곳 음식점 맛이 좋다는 뜻이다. 그 중에서도 버스종점 맞은편의 '촌돼지집' 맛을 모두 일품으로 꼽고 있다. 돼지의 육질도 좋고, 남쪽에서 올라오는 해산물과 밭나물을 쓰는 까닭이다.
이 책이 좋은 것은 뒤쪽의 '스페셜페이지'가 있다는 것이다. '맛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특별코너에는 전국의 음식점들과 함께, 보석 같은 명소 84곳도 소개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전라남도의 이름난 12개 음식점들과 함께, 그 지역의 유명 공원과 문화재을 소개하고 있고, 그것들의 연락처와 홈페이지까지 담고 있는 것. 더욱이 그곳의 음식점들을 곧바로 찾아 볼 수 있도록 앞쪽의 페이지를 적어 넣는 섬세한 배려도 아끼지 않는다.
아무쪼록 이 책에 등장하는 명가 음식점 165곳이 앞으로도 100년을 넘게 이어 나갔으면 좋겠다. 오래 오래 고아낸 곰국 같은 '진국 음식점'들이 대를 이어 나간다면, 일본의 시니세보다 더 멋진 '백년명가'들이 우리나라 곳곳을 멋지게 수놓을 것이다. 오래되어 좋은 게 친구이듯 여기에 등장하는 맛집들도 그런 친구들로 남았으면 더욱 좋겠다.
백년명가 - 자연과 사람과 인연이 만든 우리네 맛집 156곳
일간스포츠 백년명가 취재팀 엮음,
중앙books(중앙북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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