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안 보이는데 무슨 새해 희망입니까?"

쌍용차 창원공장 천막농성장 해고자들의 연말 ... 벌금·구상권 등에 시달려

등록 2010.12.30 21:06수정 2010.12.30 21:06
0
원고료로 응원

2010년을 이틀 남겨놓은 30일 아침, 쌍용자동차 창원공장 앞 공터에 있는 천막농성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날 오전 6시30분부터 출근하는 사람들을 향해 '출근 선전전'을 벌인 노동자들이 모여 든 것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 창원지회(지회장 유세종)는 지난 1일 이곳에 천막을 설치했다. 이날부터 해고 조합원들은 이곳에서 매일 두세명씩 돌아가며 철야농성을 하고 있다. 대형트럭들이 지나가니 옆 사람이 하는 말조차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소음이 심하다. 밤에는 차량 소음이 더 심해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을 지경이다.

 

천막농성장 주변에는 노동·사회단체들의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또 평택공장 해고자 고 황대원 조합원의 명복을 비는 펼침막도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해고는 살인이다, 해고자를 더 이상 죽음으로 내몰지 마라"는 문구가 가슴에 더 와 닿았다.

 

쌍용차 창원공장에 다니다가 2009년 6월 해고(정리․징계)된 뒤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조합원은 현재 24명이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낮에 '생계투쟁'에 나서고, 저녁이나 아침에는 철야농성과 선전전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생계투쟁'이란 돈벌이를 위해 일용직 등에 나서는 것을 말한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 창원지회는 지난 12월 1일부터 쌍용자동차 창원공장 앞에 천막을 치고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 창원지회는 지난 12월 1일부터 쌍용자동차 창원공장 앞에 천막을 치고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다.윤성효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 창원지회는 지난 12월 1일부터 쌍용자동차 창원공장 앞에 천막을 치고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다. ⓒ 윤성효

건강이 나빠 집에서 요양하는 해고자가 있는가 하면, 자동차수리업체에 나가 일을 도와주고 있는 조합원도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벌이가 적으니 가족한테 얼굴을 들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부분 30대와 40대 가장들이다. 가족 부양을 책임져야 할 나이에 있다. 자녀들은 중고등학교와 대학에 다닌다. 학원비를 포함해 자녀 양육비가 많이 들어갈텐데,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담배를 피워 물던 한 노동자가 말했다.

 

"다른 사업장의 해고자들을 보면 이혼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하더라. 그런데 아직 쌍용차 창원공장 복직 투쟁하는 동지들 가운데 그런 경우는 없어 다행이다. 그렇지만 다들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가정불화는 다 겪고 있다고 봐야 한다. 부부는 물론 자식, 형제간에도 크고 작은 불화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평택공장 해고자 고 황대원씨가 자살했다. 한 해고자는 "마음이 아프다, 얼마 전 40대 중반인 한 동지가 그런 말을 하더라,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못하겠고, 자식과 부모만 아니면 누가 나를 죽여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말을 할까 싶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래도 천막농성장이 있어 다행이라는 것. 한 노동자는 "해고자 가운데는 우울증을 겪고, 심리치료를 받은 이들도 있다, 혼자 있다보니 우울증에다 대인기피증도 생긴다"면서 "천막에 나와서 투쟁하고 대화도 나누니까 한결 나은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평택공장 '옥쇄파업' 당시 창원공장 노동자 120여 명이 참여했다. 그 후유증은 심각하다. 회사와 보험회사, 검찰 등에서 '손배가압류'와 '구상청구' '벌금' 등이 지금도 날라 오고 있는 것.

 

노조 지회 한 간부는 "어제도 누가 벌금 고지서를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 '퇴거불응' 등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는데, 당시 구속돼 있던 기간 3일을 빼고 나서 285만 원을 내라는 고지서였다"면서 "벌금 부과된 노동자는 창원공장에만 해도 수십 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노조 지부 지회 간부들은 회사측의 손해배상청구로 주택이 가압류된 상태에 있기도 하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보험회사에서 구상권을 청구하고 나섰다. 노조 지회 간부 11명당 각 8000만 원에 해당한다. 법원 판결이 내려지지 않았지만, 구상권까지 치면 이들의 부담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매각 절차 진행... 해고자 등 대책부터 세워야"

 

현재 쌍용차를 인도 기업(마힌드라)에 매각하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노조 지회는 유인물을 통해 "헐값, 밀실, 졸속, 특혜 매각의 상당한 의혹에 대해 계약서 전면을 공개해 해명해야 한다"면서 "마힌드라와의 매각이 여전히 의문투성이 상태로 놓여 있는 조건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의 고용은 좌불안석이요, 추풍낙엽일 가능성이 매우 짙다"고 지적했다.

 

노조 지회는 이어 "더욱이 쌍용차 해고자, 무급자, 징계자,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근본적 대책은 여전히 전무하다"며 "최근 자결한 고 황대원 조합원은 현재의 비극적 현실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운명을 달리했다, 앞으로 제2, 제3의 자결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영상 해고는 경영자 책임 아니냐"

 

해고자들에게 새해 희망을 물었다. 그런데 모두 머뭇거리더니 "희망이 어디 있어요"라는 말이 나왔다.

 

"앞이 안 보인다. 이틀 뒤면 새 해가 뜨겠지만, 해가 뜨면 길이 보여야 하지 않느냐. 그런데 우리한테는 새 해가 떠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밖에 나가면 시선이 이상하다. 직접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과 친인척까지 '회사에서 얼마나 잘못했으면 해고되었겠느냐'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남 앞에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는, 그야말로 삶의 추락 그 자체다."

 

손을 비비며 천막으로 들어선 40대 노동자가 힘주어 말했다.

 

"가해자는 경영자 아니냐. 경영을 잘못해서 구조조정이며 정리해고가 난 거 아니냐. 경영 잘못은 경영진들이 해놓고 자기들은 그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경영상 해고는 경영자 책임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물러나지 않고 떵떵거리며 현장에 남아 있는 노동자들을 협박하고 있다."

 

"몇 해 전 다른 사업장에서 해고자가 생겼을 때 속으로 '얼마나 잘못했으면 해고를 당했을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우리가 당하고 보니, 그 해고자들이 잘못이 없는데 해고를 당했다는 것을 알겠더라. 새해에는 해고자에 대한 사회 인식부터 바뀌었으면 한다."

2010.12.30 21:06ⓒ 2010 OhmyNews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옥쇄파업 #천막농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81분 윤·한 면담 '빈손'...여당 브리핑 때 결국 야유성 탄식 81분 윤·한 면담 '빈손'...여당 브리핑 때 결국 야유성 탄식
  2. 2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3. 3 민박집에서 이런 이불을 덮게 될 줄이야 민박집에서 이런 이불을 덮게 될 줄이야
  4. 4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5. 5 윤석열·오세훈·홍준표·이언주... '명태균 명단' 27명 나왔다 윤석열·오세훈·홍준표·이언주... '명태균 명단' 27명 나왔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