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과 용산 망루

[서평] 황선미의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등록 2010.12.30 18:11수정 2010.12.30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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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미 장편소설 / 사계절 <마당을 나온 암탉> 황선미 작가의 청 청소년소설
황선미 장편소설 / 사계절<마당을 나온 암탉> 황선미 작가의 청 청소년소설사계절
이번 겨울이 유난히 매섭다.
건물 외벽난방이 문제인지 이중창을 했음에도 밤이면 벽면에 얇은 이불이라도 하나 둘러줘야 따스하다. 유년의 시절처럼 머리맡에 놓았던 걸레가 밤새 꽁꽁 얼어 터지는 일도 없고 유리에 성에가 끼는 일도 없지만, 온실 속에서 자란 탓인지 약간의 추위에도 엄살을 부린다.

황선미의 장편소설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을 아주 오래된 건물, 그래서 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주말을 지내고 출근하면 걸레가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사무실에서 읽었다. 그래서 더 춥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꺽다리 집', 그것이 무엇인가 했고, '바람이 산다는 것' 또한 뭣인가 했다. 판자로 지은 집, 습기를 막으려면 여느 집보다는 키가 커야겠지.


건축을 할 때면, 건축을 하는 노동자들이 먹고 자는 임시방편으로 된 가건물을 판자로 짓곤 했다. 일 층에는 건축공구나 자재를 놓아두고. 이 층에서는 숙식을 하고 쉬기도 하는 그런 집, 아마도 이 소설에 나오는 꺽다리 집은 그 정도의 안락함도 갖추지 못한 판잣집일 터이다. 몇 달이긴 하지만, 나도 그런 집에서 산 적이 있다. 물론, 한겨울이 아니라 여름이었기 때문에 모기에 뜯기긴 했어도 '바람' 때문에 고생하진 않았다.

꺽다리 집에 사는 소설의 주인공 격인 가족은 '흔들리지 않게 땅에 깊숙이 내린 집의 뿌리'를 상상하며 공중에 뜬 꺽다리 집을 위태위태 바라본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집, 가족보다 먼저 바람이 들어와 차지한 집, 그 집에서 가족은 체온으로 긴 겨울밤을 난다. 싸매도 싸매도 바람은 집안으로 기어들어오고, 아버지는 풍에 걸린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 가족은 그 집을 떠나게 되고, 꺽다리 집은 온전히 '바람'의 몫이 된다.

저자 황선미는 유년시절을 평택 팽성읍 객사리에서 살았다고 한다. '객사리(客舍里)'의 유래를 찾아보니 조선시대 임금의 명을 받아 지방에 내려온 벼슬아치를 접대하는 곳을 객사라 하였고, 고을마다 객사가 있었는데 이런 고을을 '객사리'라고 했단다. 팽성읍 객사리 역시도 평택현의 관아가 있던 곳으로 벼슬아치나 양반이 묵던 숙소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그 '객사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에는 미군부대와 관련된 이야기도 있고, 새마을 운동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저자의 유년시절인 70년대의 민중의 삶의 편린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엄마의 옷자락에 스민 새벽바람이 서늘하게 옮아오는 걸 느끼며 눈을 비비는' 주인공 연재, 연재의 오빠 연후는 객사리에서 객사2리로 이사한다. 객사리도 고향은 아니지만, 객사2리는 객사리보다 훨씬 상황이 좋지 않다. 그곳에서 적응하는 이야기들이 소설 속에 들어 있다. 때론, 나의 유년시절을 훔쳐보기도 하고, 정말 저렇게 힘겹게 살았을까 싶기도 하다.

해피 엔딩을 꿈꿀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긴 하지만, 연재의 아버지가 풍이 들어 자리에 눕자 연재와 연후, 연재의 숙적이던 재순이까지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찾아다닌다. 그 나무는 달여서 먹을 것이 아니라, 풍으로 비뚤어진 얼굴모양새로 바로잡는 데 쓰는 민간요법의 일종이다. 그냥, 그렇게 삭막한 대결양상으로 치닫지 않고 끈끈하고 은은한 고향의 정감이 잔잔하게 흐르며 소설은 마감된다.


가족, 식구, 가장… 이런 단어들의 본래의 그리움을 끌어낸 소설이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이 아닐까 싶다. 황선미는 어린이들이 많이 읽는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유명한 작가다. <마당으로 나온 암탉>을 읽을 때에도, 그 긴장감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하였고, 마당으로 나온 암탉은 여느 소설과 달리 생태학적인 관점에서도 단순히 적과 아군을 형성하지 않는 묘사력에 감탄하며 읽었었다.

그런데 역시,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에서도 주인공이나 주인공 가족을 힘들게 하는 등장인물들이 그저 적이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그 누구이며,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관점들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는 새마을 운동을 이끌어가는 군수까지도 그냥 그렇게 우리 시대의 한 모습을 그려주는 정도로 묘사되어 등장하는 인물 누구에게도 적개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냥, 그렇게 마음 찡하게 울려주는 소설이다. 이런 소설은 따스하다. 결론이 해피 엔딩인지 아닌지 불분명하지만, 그 나머지 몫은 주인공의 삶으로 남겨두는 것은 저자가 독자에게 주는 과제가 아닐까 싶다.


살아가다 보면 그 누구의 삶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심지어는 비난받고 손가락질당하는 이들의 삶에 들어가 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때가 있다. 나와 전혀 다른 네가 아니라, 내 안에 들어 있는 너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이런 생각 또한 강요할 수는 없을 터이다. 더군다나 가진 자들이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최근 우리 사회는 그런 일들이 너무 편만 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을 읽으면서 줄곧 '용산참사'를 떠올렸다. 용산의 망루가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이 아니었는지, 온 가족이 체온을 나누며 찬바람을 이겨내려고 몸부림치다가 가장이 불길에 휩싸여 죽어가고, 아들은 그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가 된 그런 꺽다리 집, 그것이 용산의 망루가 아니었는가 싶다.

잔잔한 이야기, 그 속에 흐르는 따스한 인간애가 과도하게 꾸며지지 않은 추억으로 다가오는 글이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하지만, 60년대 초반 혹은 70년대 초반 유년의 시절을 가지신 분들이 있다면, 이 추운 겨울, 찬바람이 이 거리를 떠나기 전에 읽어볼 만한 책으로 권하고 싶다.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황선미 지음,
사계절, 2010


#황선미 #꺽다리 집 #용산참사 #망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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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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