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과이 한국 한글 학교 전경파라과이 한국 한글 학교
최이삭
모든 한인동포사회에는 저마다의 동포 2세 교육이 있다. 영주권자와 2세들이 대부분인 파라과이의 한인 2세 교육은 오전과 오후 두 군데의 학교를 다니는 것에서 시작한다. 오전에는 현지인 학교에 가고, 오후에는 파라과이 한국·한글학교에 가서 한국 교과서로 수업을 듣는 것이다. 방과 후엔 학원 한두 곳에 다니기도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되도록 좋은 사립학교에 진학한다. 학교에서의 추억을
안고 졸업한 뒤에는 현지대학, 미국, 브라질, 한국 등으로 진학한다. 한국의 교육이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조금씩 다른 '유명세'를 가진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일방으로 나아가는 것과 비교했을 때 파라과이의 동포 학생들은 좀 더 넓은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다섯번째로 큰 파라과이 재외국민 규모파라과이에는 전체 재외국민의 4.89%에 해당하는 5229명이 살고 있다.(2009년 7월 외교통상부 집계 기준) 이것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과테말라에 이어 다섯 번째 규모이다.
파라과이에 한인이 정착한 것은 공식적으로 1965년부터다. 정부에 농장 부지 구입대금 150불을 지불하고 온 순수 영농목적의 이민이었다. 정부는 1962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외이민정책을 추진했는데, 미국과 캐나다에 이어 중남미가 대상이 되었다.
45여 년이 지난 지금 파라과이의 한인들은 대개 제조업과 상업에 종사한다. 농업이민 당시 배정받은 땅이 대부분 황무지였고, 이민자들이 경작에 서툴러 농업을 그만두고 돌파구를 찾은 결과이다. 이에 대해 한 1세대 한인이민자는 "우리가 끝까지 농장을 고집했으면 모두들 박살나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업의 실패 이후 한인들은 도시로 나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물건을 판매하는 '벤데(vender: 팔다)'업을 시작했다. 이들이 처음 판매한 것은 이민 올 때 가져온 물건들이었다. 벤데업이 활황을 맞자 한인들은 시장에서 물건을 떼어다 팔기 시작했고, 그러다 직접 물건을 만들었다. 그 사이에
이민 수요가 1만 5000명으로 까지 늘기도 했다. 파라과이에서 돈을 번 사람들은 미국이나 브라질로 재이민을 떠나기도 했다.
이민 2, 3세대에 이르러서는 한국, 중국 등지와 직접 무역을 하는 한인들이 많아졌다. 남미경제가 수직상승하고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두 문화권에서 자란 한인 사업가들이 활약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진 것이다.
파라과이의 한인 2세 교육은 이러한 한인들의 정착 과정과 궤를 함께 한다. 이주 초기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경제 기반도 마련되어 있지 않던 한인 1세대들은 의욕만큼 자녀교육에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러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2, 3세대 시기에 이르러 한인 부모들은 자녀들을 파라과이의 좋은 사립학교에서 보냈고, 졸업한 자녀들이 미국, 한국, 브라질 등으로 진학하는 것을 지원했다.
그리고 부모들이 힘들게 일하는 걸 보고 자란 학생들은, 저개발 국가인 파라과이에서 자연스레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고 싶은 욕망을 품으며 성장했다.
"어제 무슨 한국 드라마 봤어?"... 한국 배우며 자라나는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