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집에서 큰 길로 나가는 올레에도 눈이 내렸다. 검은 돌담에 소복이 눈이 덮이니 누군가 찾아 올 것만 같은 설렘이 일었다.
장태욱
흰 눈은 포구도 덮었다. 검은 바위로 만든 방파제도 포구 주변의 소나무도 모두 눈을 뒤집어썼다. 포구는 동화에 등장할 만한 설국(雪國)의 성(城)이 되어 버렸다. 그 성을 넘보는 바다의 푸른빛과 대비를 이뤄 한껏 아름다움을 뽐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노랗게 피어 포구에서 가을을 붙들고 있던 국화는 눈과 함께 찾아온 추위에 바짝 얼어붙었다. 이제 세월에 자신을 양보할 수밖에.
기상청에서는 서귀포시 기상 관측으로는 10여년 만에 찾아온 12월 추위라고 했다. 방송에서는 "집 주변과 농작물 관리에 주의하라"고 하는데 주민들은 별로 싫지 않는 표정이다.
올레 입구에 사시는 삼촌(제주에서는 이웃 어르신을 그냥 삼촌이라고 부른다) 내외는 옷을 잔뜩 챙겨 입으시고는 동네 한 바퀴 눈 구경을 하고 오겠다며 대문을 나선다. 오랜만에 찾아온 폭설에 어른들까지 신이난 모양이다. 옆집 젊은 가장은 승용차 바퀴에 스노우체인을 장착하면서 "몇 해만에 꺼내보는 체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