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스트 갓 파더>의 한 장면.
㈜영구아트
이렇게 추신수 선수의 이름을 등장시킨 것에 비해 원더걸스의 등장은 좀 더 비중이 크다. '영구'가 클럽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그룹 원더걸스가 등장한다. 이 역시 추신수라는 이름의 등장과 마찬가지로 아마도 해외 시장에 한국 가요를 알리고자 하는 책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장면에서 원더걸스는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그저 배경으로만 존재했을 뿐이다. 차라리 '노바디' 특유의 안무를 활용해 원더걸스가 '영구'를 지목하는 장면과 '영구'가 특유의 반응을 보이는 장면들을 연달아 배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처럼 애국심과 글로벌시장을 노린 심형래 감독의 두 가지 욕망, 혹은 전략들은 영화에서 소소한 부분이라 치부해도 좋다. 왜냐하면 이 영화를 평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은 바로 이 글의 첫 머리에서 말한 '투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투사'의 문제야말로 <라스트 갓파더>의 존재 양식 그 자체이며, 이 영화가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결점이다.
영구의, 영구에 의한, 영구를 위한 영화얼굴이 좀 홧홧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링컨의 연설에 비유해 <라스트 갓파더>를 말하자면… 이 영화는 '영구의, 영구에 의한, 영구를 위한 영화'라 평가할 수 있겠다. 물론, 1980년대 코미디 프로그램의 인기를 기억할 때 슬랩스틱(몸개그)이라는 장르를 선택해 '영구'라는 캐릭터를 부활시킨 심 감독의 선택은 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명한 선택에도 불구하고 심형래 감독은 슬랩스틱이라는 장르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영웅담으로 이 영화를 이끌고 감으로써 결점을 자초한다.
영화에서 '영구'가 인정을 받게 되는 계기는 우연에 기인한다. 그의 바보 같은 행위가 만들어낸 미니스커트, 헤어스타일, 햄버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자, '영구'는 지역주민들은 물론 아버지가 대부를 맡고 있는 마피아 조직 내부에서도 인정을 받게 된다. 바로 이처럼 어느 순간 '영구'는 영웅으로 등극하는 셈이다. 물론 이러한 서사는 영화의 배경인 뉴욕의 역사적 사실과도 맞지 않을뿐더러 슬랩스틱 장르와도 자연스럽게 조화되지 못한다.
이처럼 '영구'가 영웅이 되는 이상한 서사는 '영구'가 뉴욕 마피아의 대부 '돈 카리니'의 아들이라는 설정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제작자와 감독 그리고 배우라는 3역을 맡은 심형래씨의 과욕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내가 이 글에서 '투사'가 <라스트 갓파더>의 존재 양식 그 자체라고 규정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투사'는 "내적인 욕망이 주체의 밖에, 즉 다른 주체에게도 전치되고 위치되는 방어기제"를 일컫는 정신분석학 용어이다. 바로 이러한 방어기제가 3역의 심형래씨에게 작동했던 것은 아닐까. 한국영화로 할리우드에 진출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로 제작한 <디워>가 비판에 직면하면서 슬랩스틱 장르로 옮겨가면서도 '부라퀴'에 버금갈 만한 존재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1980년대 코미디에서 유행했던 '영구' 캐릭터는 매우 유용한 존재로 부각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영구'라는 캐릭터를 <라스트 갓파더>로 가져오면서 발생한다. 스크린 안팎에서 '제작자'와 '감독' 그리고 '배우'라는 심형래의 3역이 충돌하는 것이다. 즉, 단순히 '영구'라는 캐릭터를 활용하는 데 그친 게 아니라 '영구=심형래=성공'이라는 등식이 성립함으로써 바보 '영구'가 영웅이 되는 해괴한 시나리오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영화의 안팎은 냉철하게 구분되어 있다. 영화 속에서 '영구'가 영웅으로 그려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감독의 성공이나 흥행의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심형래 감독은 비평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