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의 주장이 진실이라 해도, '삼국시대'는 98년간에 지나지 않는다.
김종성
부여·고구려·백제·신라·가야가 공존했던 기간 452년그래프 1>은 '신라는 기원전 57년, 고구려는 기원전 37년,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되었다는 김부식의 주장을 근거로 작성했다. 이 표는 고조선 이후의 고대왕국들 중에서 상당 규모의 영토를 보유했던 주요 국가들의 존속기간을 보여주고 있다. 김부식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다 하더라도, '삼국'이란 용어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부여·고구려·백제·신라·가야를 가리키는 5개의 막대에서 공통적인 부분은 A-B 구간이다. 이 기간은 가야가 건국된 때(서기 42년)로부터 부여가 멸망된 때(494년)까지다. 무려 452년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그래프에서 나타나듯이, 이 시기는 '오국시대'라고 해야 마땅하다. 따라서 이 시기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삼국'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한데도, 많은 교과서나 연구서·논문 등에서는 여전히 '삼국'을 사용하고 있다.
부여가 멸망한 때부터 가야가 멸망한 때(562년)까지의 63년간은 고구려·백제·신라·가야가 존속한 기간이다. 그래프의 B-C 구간이다. 이 시기를 굳이 명명하자면, '사국시대'라고 해야 한다. 따라서 이때까지도 '삼국'이라 할 만한 현상은 전혀 출현하지 않았다.
'삼국'이란 표현을 써도 무방한 기간은 C-D 구간뿐이다. 가야가 멸망한 때부터 백제가 멸망한 때(660년)까지다. 이 시기에는 고구려·백제·신라만 존재했다. 명실상부한 삼국시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간은 98년에 불과하다.
452년간인 A-B 구간(오국시대)과 비교할 때에, 98년간인 C-D 구간(삼국시대)은 턱없이 짧다. 그런데도 많은 서적에서는 신라 건국 때부터 고구려 멸망 때까지를 '삼국시대'라고 부르고 있으니, 완전히 엉터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삼국시대'란 용어만 부적절한 게 아니라 '삼국통일'이란 표현 역시 마찬가지다. 오국시대나 사국시대를 종결시킨 정치적 사건을 어떻게 '삼국통일'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신라가 멸망시킨 대상이 백제·고구려이므로, 삼국통일이라 부른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신라가 멸망시킨 대상은 가야·백제·고구려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기준으로 말한다면 '삼국통일'이 아니라 '사국통일'이라 해야 한다.
다음으로, '신라는 기원전 57년, 고구려는 기원전 37년,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되었다는 김부식의 주장이 허위라는 전제 하에 주요 국가들의 존속기간을 재검토해보자. <그래프 2>는 이러한 전제 하에 작성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