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심규상
- 병원 등 검진기관의 입장에서는 검진 비용을 대는 사업주의 편의를 많이 봐주어야 다음 해에도 검진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데. 박: "사업주의 편의를 들어주지 못하는 경우, 검진결과 발송 후 계약이 끊긴다. 노동자들은 병원을 선택할 자기 선택권도 없으며, 사업주 편의에 따라 형식적인 건강검진을 받을 뿐이다. 수백 명 규모의 모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전에는 산재가 없던 회사인데, 소음성 난청 사례가 접수되었다. 회사 산업안전부 관리자가 하는 말이 가관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리해고를 시켜야 했는데, 직업병 유소견자들을 그만 일하게 해야겠다'고 한다. 언제나 계약파기가 가능한 보건관리대행 의사의 면전에서 일어난 일이다."
노: "예방을 우선으로 하는 공중보건을 수익을 바라보고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규모 사업장과 맺은 건강검진 계약을 해지한 후 모 교수가 산업의학과 직원들에게 '의기소침할 수도 있지만, 현상(고용불안을 걱정할 정도로 줄어드는 계약 및 매출)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이 사업에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사명감에서 여러분들은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한 적이 있다. 어쩔 수 없으니 원칙을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에 분노하고 싸워야 한다는 의미다. 현실과 손을 잡고 사업주가 원하는 결과를 내주며 병원 실적을 쌓는 것은 직업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에 제도 개선 노력이 이루어져 2009년부터 특수건강진단 비용지원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이는 해당회사-검진기관이 아니라 제3자인 산업안전공단이 건강진단비용을 대는 3자 지불제도이다. 처음 계획단계에서는 100인 미만 중소기업 사업장에 한해 검진기관은 공단에 검진비용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산업안전공단에서 심의하여 검진비용을 승인함으로써 사업주의 편의에 따른 형식적인 검진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의 100인 미만이라는 기준은 50인 미만으로, 다시 10인 미만으로 최종 수정되어 검진비용을 청구하는 것으로 축소되었다. 대학병원검진기관이 10인 이하 기업을 찾아 검진하는 것은 운영면에서 힘든 측면이 있다.
현재는 이 사업에 소규모 의원급 검진기관들과 대한산업보건협회의 해당 지역 지사들만 참여하여 건강검진을 시행하고 있다. 과거 대한산업보건협회는 노동부 파트너이자 준정부기관이었지만 현재는 독립법인이다. 산재기금은 산재 규명과 예방을 위해서도 쓰여야 하지만, 연간 예산 약 5조원의 기금 중 산재예방기금으로 잡혀 있는 10%가 공단 운영자금, 특수건강진단 설비 지원 사업 등으로 쓰이고 있다. 그것이 산재를 줄이는 방법인가는 따져봐야 한다."
- 산재신청이 많이 기각된다. 판사의 판정을 통해서만 산재인정이 가능한 구조라면 문제가 있다. 모든 문제를 재판까지 가져가야 하는 상황인데 왜 그런가? 노: "법의 원리가 다르다. 판례는 약자우선이다. 업무 관련성은 문제가 드러났을 때 사회가 합의한 수준이지, 법도 의학도 과학도 아니다. 유사한 문제와 경험의 기록들이 있다면 산재는 인정되어야 한다. 산재는 사전에 예방하고 막아야 한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재판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맘고생, 몸고생을 생각해봐라. 못할 일이다.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은 자존심을 회복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재판 신청을 한다. 노동자들은 회사에 평생을 다해 일해줬으나 '왜 그러냐? 당신은 사기꾼이고, 회사를 음해하려는 사람이다'라는 소리만 되돌아온다. 이렇게 되면, 돈보다는 자존심 싸움으로 간다. 억울함을 풀고 싶다는 것이다. 산재신청이 억울함을 풀어주는 신문고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정상적으로 풀 수 없게 꼬아놓은 체제라서 문제다. 한 예로, 산재요양신청서 첫 장에는 산재를 당한 노동자가 서명하는 란이 있고 바로 옆에 사업주 서명란이 있다. 사업주가 날인을 거부할 경우에는 한 장짜리 사유서를 제출해야 한다. 산재를 예방하려는 것이 아니라 은폐하려는 노력들을 기울이는 상황이다.
가장 중요하게는 직업병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지배적이라서 문제다. 직업병은 직업으로부터 오는 결과다. 일하면 보수를 받는 것처럼, 작업장 환경이 내 몸에 이상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다. 직업병은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므로 개인적 측면에서 바라보아서도 안 된다. 몸 관리를 하면 개인질환은 나아질 수 있다. 그러나 직업병은 일을 하는 한 발생하고 재발한다. 전염병이 아니면서 전염병이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 노출되어 있고, 한군데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곳과 연결돼 있는 인근 부서에서도 동일한 노출에 의한 직업병이 발생할 수 있다. 단일질환이 아니면서 단일질환일 수 있고, 전염병이 아니면서 전염병일 수 있는 것이 직업병이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을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탁: "직업병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돈이 드는 문제라서 그렇다. 직업병은 직업에서 생긴 것이므로 그 원인인자를 막아야 하는데, 직업병 예방을 위한 투자가 병원 치료비보다 더 많이 드는 경우 사업주는 산재를 은폐하거나 개별 노동자가 해결하기를 바라고 모르는 체한다. 미국의 경우, 회사의 회전율이 짧아서 2~3년이다. 이 기간 동안 사업주는 직업병을 고려할 이유를 못 느낀다."
노: "작업장 내 소음의 경우를 보자. 교과서에서는 소음원을 차단하거나 밀폐하기 위해 방음벽을 세우라 하지만, 그러려면 많은 비용이 든다. 한 부서에서 휘발성 용제가 문제라서 환기 시설을 하는 예를 보자. 음압처리며 환경을 위한 정화처리를 하려면 초기비용이 많이 든다. 소규모 사업자나 가내수공업자들은 시설 보수에 드는 투자를 투자로 생각하지도 않으며, 고비용이 드는 사업이라며 모르는 체한다. 고비용이 드는 예방책을 쓰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문제를 인지하고 현실적인 대처 방안을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노동부 관리감독 부서에서는 법적 측면에서 회사에 시설을 뜯어고치라고 권고할 뿐이다. 각 회사가 직업병을 일으키는 원인제공자를 인지하고 대처하는 과정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해 줄 필요가 있다.
직업병은 탄광의 카나리아처럼 첨병으로서 신호를 보내준다. 망루에 올라가 있는 사람이 신호를 통해 경고를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일어날 엄청난 질환을 예고하는 것이다. 최근의 환경병이란 것도 역사적으로는 좁은 공간 내에서 특정 유해인자에 고농도로 단기간에 노출되어 생긴 직업병이 일반 사회로 퍼져나간 질환일 수 있는데, 이럴 경우에 직업병은 그러한 대중에게 발생 가능한 특정 질병의 첨병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