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1.01.16 15:16수정 2011.01.1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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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나들이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주말 외사촌 아우가 며느리를 본다고 청첩하여 서울나들이를 했다. 날씨는 기상전문 아나운서의 표현대로 금세 귀가 아플 정도로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혹한이었다.
바깥 날씨와는 달리 혼인예식장은 오랜만에 낯익은 외가친지들을 볼 수 있는 잔칫집 분위기로 훈훈했다. 그런데 늘 금실 좋게 동행했던 외사촌누님 부부 가운데 누님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자형에게 누님의 안부를 물었더니 그새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는 뜻밖의 비보를 전했다.
"경황이 없어 부고를 못해 미안하네."
봄이 오면 새 잎이 나고, 가을이 되면 그 잎이 지듯이 세대교체를 새삼 느꼈다. 내가 외가 문턱을 드나든 지 60년을 넘겼다. 그새 외할아버지 내외에 이어, 외삼촌 내외가 세상을 떠났고, 이제는 그 아래 대로 이어지게 마련인가 보다.
외가는 '어머니의 친정'으로 제2의 고향이다. 외가는 내 고향보다 더 벽촌으로 '동산리'라는 이름처럼 야트막한 산등성이에 삼십 호 남짓한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나는 외할아버지 내외가 마흔을 넘긴 나이에 둔 늦둥이 '끝순이'의 아들인지라, 유독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랐다.
어린 시절 외가에 가면 고구마, 감, 밤 등 먹을거리가 흔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닐 때 주말이나 방학이면 두 번씩이나 기차를 갈아타고 뻔질나게 외가를 드나들었다. 그러는 새 낯익은 얼굴들이 세상을 떠나고 새 사람이 태어났다.
"참 댁도 어지간 하요"
한 번은 아내와 함께 외가를 가는데 한 할머니가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외가에 갑니다."
"참 댁도 어지간 하요. 그 나이에도 외가에 간다니…."
내가 줄곧 외가를 다닌 것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외삼촌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외삼촌은 매우 부지런한 농사꾼이요, 독실한 민족주의자였다. 해방 전후 김천 구미 지방의 민족지도자로, 지금도 이름만 대면 고개를 끄덕이는 유명 인사들과 동지관계였다.
내가 외가에 가면 사랑에다 호롱불을 켜고 밤늦도록 한문이나 한시를 가르쳐 주셨는데, 내 평생 글줄이나 쓰고 사는 것도 근원은 나의 조부와 외삼촌 덕분이다. 특히 외삼촌은 중학교 3년간 내 학비를 전담해 주시면서 내가 글을 읽고 쓰는 선비가 되기를 바랐다.
외삼촌 생전에 책 한 권 펴내지 못한 게 늘 아쉬워 이후 책을 출간하면 나는 외삼촌 산소 상석 앞에 따끈한 신간을 놓고 절을 드렸다.
세상 사람들은 별로 알아주지 않지만 외삼촌은 내 등을 두드려 주실 것이다.
"네가 어찌 독립군과 의병 이야기를 썼느냐?"
외삼촌이 사셨다면 아마도 밤새 호롱불을 밝히며 책장을 넘겼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새 결혼식이 끝났다. 처음 보는 외가의 새 식구 외사촌 며느리가 판에 박은 듯 외가 얼굴이었다. 그들 부부가 금실 좋게 해로하기를 빌면서 혼인예식장을 벗어났다. 날씨가 너무 추워 다른 볼일은 생략한 채 곧장 중앙선을 타고 내가 사는 원주로 돌아왔다.
2011.01.16 15:16 | ⓒ 2011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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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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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찌 독립군과 의병 이야기를 썼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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