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집권플랜> 출판 기념으로 27일 저녁 서울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조국·오연호 BOOK 콘서트'에서 조국 서울대 교수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남소연
진보정권 10년의 복지정책으로 이제 남한에서 밥 못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좋은 일자리가 없고 미래가 불안한 것이 문제이지 일인당 소득이 2만불인 국가에서 88만원 세대가 배고픈 세대는 아니다. 양극화는 상대적 빈곤의 문제이지 절대적 빈곤의 문제가 아니다.
보수가 "민주가 밥 먹여주냐?"고 물으면 "밥 먹여 줬다"고 자신 있게 말해야 한다. 민주정부 동안 복지예산이 얼마나 증가되었는지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얼마나 삭감되었는지 분명히 말해야 한다. 좋은 일자리가 없는 건 민주정부 10년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구조의 문제이므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 그래서 노 대통령이 토목산업을 줄이고 과학기술에 집중적인 투자를 했던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진보연대의 고리가 되었고 핵심지지층에게 열정을 불어넣은 것은 분명하다. 중산층도 이해관계보다는 도덕적인 이유에서 무상급식에 찬성했다. 하지만 조 교수가 생각한 것만큼 무상급식이 선거의 주요의제는 아니었다. 조 교수는 유권자가 뭘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유권자의 관심은 진보지식인들의 관념과 많이 다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MB심판, 노대통령 서거가 없었다면 진보진영의 승리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상의 문제를 정치화한 촛불집회 참여자들은 자유주의 진보세력이다. 기륭전자의 비정규직 문제가 이들의 관심을 끌 수 없었던 이유도 이들은 현재의 시장에서 성공한 신주류이기에 경쟁에 뒤떨어진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이 부족할 수 있다. 진보진영이 물질주의 쟁점에만 몰두하게 되면 자유주의세력과 분리될지 모른다.
진보진영이 다수당이 되기 위해서는 탈물질주의 자유주의세력과 물질주의 좌파세력이 연대할 수 있는 쟁점을 발굴해야 한다.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주의 가치연대가 그것이라고 본다. 인권, 민주주의, 삶의 질, 환경, 생태 등이 탈물질주의 가치라면 비정규직문제, 일자리 등은 물질주의 쟁점이다. 물질주의 쟁점은 인간의 존엄성, 인권, 정의와 같은 탈물질주의가치로 전환될 수 있다.
진보진영의 구성은 다수의 자유주의자와 소수의 좌파로 구성되어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문화적으로 좌파집단보다 훨씬 진보적이지만 경제적으로는 한나라당과 진보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러나 진보진영에서는 물질주의 쟁점이 과대 의제화되고 있다. 좌파는 잘 조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좌파 지식인이 진보언론시장을 독점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본다. 이렇게 자유주의자들이 진보의 담론시장에서 소외되면 결국 진보진영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진보만 할 수 있는 가치지향적 프레임 만들어보자조 교수는 정확히 두 집단의 하이브리드로서 양 집단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식인으로서 진보 생태계의 영향을 많이 받은 때문인지 물질주의 담론에 포획된 것 같아 안타깝다.
선거는 오랜 정당의 역사와 유권자의 중층적 기억 속에서 치러진다. 진보진영이 그동안 잘해왔던 유산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지난 대선, 한나라당은 성장주의 이념으로 집권했다. 노대통령의 복지주의가 성장주의를 부활시켰음은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이명박 후보는 박정희 독재 19년의 유산 덕을 본 것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747공약이 뻥이 되면서 유산을 많이 까먹었다.
진보진영은 지난 10년간 민주주의와 인권, 기초 복지에서 업적을 쌓았다. MB정부 이후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만족이 83.2%로 역전되었다. 진보진영도 지난 10년의 유산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스스로의 업적을 자학하면서 바닥에서 새로 시작하겠다고 하면 한나라당과 경쟁이 되겠는가. 진보진영이 재집권을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민주정부 10년의 업적을 국민에게 전파하는 일이다.
진보진영은 집권 이후를 대비해 복지정책 준비는 철저히 하되 담론경쟁은 탈물질주의 프레임으로 가야한다. "진보는 기본 복지를 통해 이미 밥 먹여줬다. 보수보다 안보에서도, 행정에서도, 경제에서도 훨씬 유능했다"고 말해야 한다. "더 좋은 일자리,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복지, 정의, 인권, 참여,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말해야 한다. 보수는 할 수 없지만 진보만이 할 수 있는 가치지향적 프레임을 만들어보자.
프레임이 이렇게 변한다 해도 조 교수의 정책적 대안은 여전히 유효하다. 조 교수의 각론에 찬성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시장의 활력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도 국가가 개인의 삶에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 그것이 조 교수의 기본 생각이기 때문이다. 지금 만일 노대통령이 살아 계신다면 조국 교수와 오연호 대표의 책을 ('밥'프레임만 뺀다면) 많이 칭찬하셨을 것 같다.
노 대통령이 더 많은 복지를 하지 못한 이유는 국민의 지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조 교수 같은 지식인이 발전주의에 대항하는 대안적 삶이 있고 국민이 힘을 합치면 그 길을 택할 수도 있음을 학습시키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노 대통령은 나라의 발전은 국민이 생각하는 만큼 간다고 말했다. 국민이 깨어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보지식인이 해야 할 일 아니겠는가. <진보집권플랜>, 두 분 저자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 조기숙 기자는 전 청와대 홍보수석입니다. 이글은 blog.daum.net/leadershipstory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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