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비빔밥 정신, 왜 문성근이 떠오르지

[고 백남준 추모5주기에 부쳐] 예술적 상상력이 최대의 권력을 낳는다

등록 2011.01.29 21:24수정 2011.02.0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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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7월 20일 백남준이 사간동 갤러리현대 뒷마당에서 벌린 요셉 보이스 추모굿 퍼포먼스사진을 찍은 최재영사진전이 갤러리아트링크에서 열린다.
1990년 7월 20일 백남준이 사간동 갤러리현대 뒷마당에서 벌린 요셉 보이스 추모굿 퍼포먼스사진을 찍은 최재영사진전이 갤러리아트링크에서 열린다. 최재영

한국이 낳은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 추모 5주기(1월 29일)를 맞아 행사가 많다. 서울 안국동 윤보선 고택 옆에 있는 갤러리아트링크에서는 1990년 7월 20일 백남준이 사간동 갤러리현대 뒷마당에서 호형호제하던 요셉 보이스를 추모하는 굿 퍼포먼스를 담은 '최재영 사진전'이 '굿'이라는 제목으로 오는 2월 13일까지 열린다.

그리고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29일 오후 2시 기념관 분향소에서 국내외 백남준 관계자들이 추모행사를 열었다. 클린턴 대통령 앞에서 펼친 퍼포먼스 동영상에 맞춰 경기고 동창으로 미국순회공연으로 만나게 된 명인 황병기 선생의 거문고 연주와 3시부터는 한국몽골학회 회장 박원길 선생의 강연이 함께 했다.


융합시대, 백남준의 비빔밥과 통섭하기

 백남준 I '하늘을 나는 물고기(Fish Flies on Sky)' 3채널이동식 설치작품 1983-1985. 2010년에 열린 뒤셀도르프 쿤스트 팔라스트 미술관에서 백남준회고전 ⓒ Nam June Paik Estate Museum Kunst Palast, Dusseldorf
백남준 I '하늘을 나는 물고기(Fish Flies on Sky)' 3채널이동식 설치작품 1983-1985. 2010년에 열린 뒤셀도르프 쿤스트 팔라스트 미술관에서 백남준회고전 ⓒ Nam June Paik Estate Museum Kunst Palast, DusseldorfNam June Paik Estate

백남준은 여러 장르의 예술을 혼합하는 멀티미디어 시대에 서로 다른 것을 잘 섞어야 제 맛이 나는 '비빔밥' 원리에서 예술적 영감을 받았다. 이런 미학은 시공을 초월해 동서양의 차이와 유목과 농경문화도 뒤섞는다. 또한 관객의 참여와 매체 간 소통을 통해 이를 구현한다. '하늘을 나는 물고기'를 보면 다매체를 잘 비벼 천진한 동심과도 소통하고 있다.

비빔밥은 서로 다른 걸 섞어 시너지 효과를 내는 음식이다. 21세기 융합의 시대에 통섭 개념도 비빔밥이란 것을 통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정신을 한국의 현실정치 예컨대 야권단일정당을 위한 정파등록제 등에 불을 붙인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에 적용시키면 어떨까 싶다.

소통과 회통과 신통은 다 하나다
 
 백남준 I 'TV정원(TV Garden)' 1974(2000 version) Photo: Ellen Labenski
백남준 I 'TV정원(TV Garden)' 1974(2000 version) Photo: Ellen LabenskiSRGF New York

몸도 혈액순환과 소통이 잘 돼야 건강하고 부부도 말이 잘 통해야 행복하듯 개인이나 국가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율곡 선생은 "국가의 흥망성쇠는 소통의 열림과 닫힘에 달렸다"고 말했다. 소통은 독선을 막고 공동체를 지켜준다. 그래서 진정한 소통은 일방적이 아니고 쌍방적이다. 'TV정원'을 보면 백남준은 사람과 기계만 아니라 자연과도 소통했다.

이것은 원효의 화쟁과 회통의 정신과도 통한다. 화쟁이 다툼과 대립을 푸는 해법이라면 회통은 서로(會) 통하게 한다(通)는 소통을 말한다. 원효도 당시 불교가 귀족화되어 대중과 멀어지자 그 벽을 허물고자 거리에서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며 세상과 만나려 했다.


이건 불교만이 아니라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초대교회 사도문서에 보면 어느 날 다른 언어를 쓰는 신도들 간에 갑자기 말이 통하는 기적과 같은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를 두고 교회에서는 성령강림절(혹은 성신강림절)이라 한다. 언어를 초월하여 소통이 일어나는데 이럴 때 쓰는 우리말이 있다. 바로 '신통(神通)'이다.

비빔밥은 대통합으로 가는 촉진제
 
 국민의명령 대표 문성근씨가 김대중평화센터에서 전자방명록에 서명하고 있다
국민의명령 대표 문성근씨가 김대중평화센터에서 전자방명록에 서명하고 있다김형순

'백만송이 국민의명령'의 대표 문성근씨는 지리멸렬하게 흩어진 야당을 하나의 바다에 빠트려 힘을 합치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의 제안이 성사되기 쉽지 않아 보이나 백남준의 비빔밥 정신을 살린다면 성공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비빔밥은 서로 다른 재료가 다양하게 많이 들어가야 맛이 더 나기 때문이다. 소수정당의 다양한 의견도 비중 있게 받아들여 대통합의 정신을 살린다면 나중에 후유증이 없이 진정 하나가 될 수 있다.

비빔밥 상상력으로 시민권력 되찾기
 
 백남준아트센터 전시물 중 68혁명과 관련된 자료
백남준아트센터 전시물 중 68혁명과 관련된 자료김형순

그러면 백남준의 비빔밥 정신을 어떻게 현실정치에 적용할 것인가? 그리고 여기에 가장 필요한 것이 뭔가?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바로 바로 예술적 상상력에서 온다. 그 전례로 우리는 68혁명의 표어인 '상상력에게 모든 권력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엉킨 실타래처럼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야권단합문제도 지성집단으로 비빔밥 상상력을 만들어낸다면 예측하기 힘들 정도의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타협이 안 되고 협상이 되지 않는다는 건 결국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반증이다.

다다익선, 생각이 다를수록 더 멋진 세상 되다

 과천국립현대미술관의 백남준의 '다다익선'과 강익중의 '삼라만상'이 비빔밥처럼 어우러지다
과천국립현대미술관의 백남준의 '다다익선'과 강익중의 '삼라만상'이 비빔밥처럼 어우러지다김형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1930-2004)는 현대의 특징을 본질이 아니라 다름(difference)에 있다고 봤다. 백남준도 이런 중요성을 "미술에서는 다름이 중요하지 누가 더 나은가의 문제가 아니다. 미로와 피카소는 서로 다른 것이지 누가 더 잘하는 게 아니다. 다른 것을 맛보는 것이 예술이지 일등을 매기는 것이 예술은 아니다"라는 말로 피력했다.

백남준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다다익선', 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뜻인데 의역하면 다른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뜻도 된다. 야권연합도 당파 간 입장이 아무리 달라도 그걸 인정하고 과거 김대중 대통령의 제안처럼 민주당이 70%정도를 양보한다면 가능하다. 거기에 누룩처럼 번지는 미적 상상력이 발동하면 금상첨화다.

문성근 대표의 상상력은 부친의 예언자전승

 1990년 김대중대통령과 문익환목사와의 만남. 김대중평화센터 자료사진
1990년 김대중대통령과 문익환목사와의 만남. 김대중평화센터 자료사진 김형순

배우 문성근의 예인적 상상력은 이명박 정권의 반환점에 맞춰 '국민의 명령'을 제안한 셈인데 그 타이밍이 기막히다. 또한 그의 상상력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사랑과 진실이 눈 맞추고, 공정과 평화가 입 맞추는 사회'를 염원했던 히브리 예언자전승과 닮았다.

이는 아마도 부친 문익환 목사의 영향이리라. 문 목사는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구약을 전공한 성서학자다. 그는 시인으로 '천주교개신교' 공동번역도 펴냈다. 장준하의 죽음을 계기로 질곡의 분단사에 몸을 던져 반유신과 통일운동을 주도하다 6차례나 투옥될 정도로 치열하게 싸운 시대의 선각자다.

조기숙 교수의 상상력은 생활정치에서 온 것

 국민의명령 '제1차 아고라'에서 발표하는 조기숙교수
국민의명령 '제1차 아고라'에서 발표하는 조기숙교수김형순

그런데 지난번 국민의명령 '제1차 아고라'에서 주목을 많이 끈 사람은 국민의명령 정책위원장인 조기숙 교수다. 그는 학자답게 객관적 통계로 현실적 대안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결론에서는 예술적 상상력과 끈질긴 협상만이 최선의 답이라고 단언한다.

"양자 혹은 다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창의적 협상안을 테이블 위에 내놓아야 한다. […]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상상력만이 파이의 크기를 무한대로 키울 수 있다. 상상력만 있다면 못할 협상이 없다. 불가능성을 가능케 하는 건 역시 상상력의 예술뿐이다. 중요한 건 협상을 하려는 인간의 의지다"
- 조기숙 교수 발제문 중에서

권력의 상상력을 능가하는 예술적 상상력

 독일 뒤셀도르프 시내전차에 그려진 백남준의 얼굴. 그는 독일에서 거의 신적인 존재다. 백남준의 유명한 말 "너무 완벽하면 신이 화를 낸다"는 문구가 전차에 적혀있죠. 결국 이 말은 백남준은 신와 맞먹는 자라는 뜻이겠죠. ⓒ Nam June Paik Estate Museum Kunst Palast, Dusseldorf
독일 뒤셀도르프 시내전차에 그려진 백남준의 얼굴. 그는 독일에서 거의 신적인 존재다. 백남준의 유명한 말 "너무 완벽하면 신이 화를 낸다"는 문구가 전차에 적혀있죠. 결국 이 말은 백남준은 신와 맞먹는 자라는 뜻이겠죠. ⓒ Nam June Paik Estate Museum Kunst Palast, Dusseldorf김형순

정보혁명시대 대표적 디지털 이론가인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는 "오늘날 정보는 과거에 일방적으로 얻어먹는 것과는 다르게 스스로 찾아먹는 시대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제는 명실 공히 누구나 개인의 역량에 따라 1인 미디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백남준은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발표하여 21세기 문화의 칭기즈칸이 되었다. 그는 창조자로서 작가나 예술가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줬다. 백남준은 이제 독일에서는 거의 신적 존재다. 독일에서 한국 대학생 입학허가를 잘 해주는 것도 백남준 덕분이다.

그럼에도 우린 아직 4대 강국에 끼여 분단된 채 살고 있다. 게다가 미네르바 사건에서 보듯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위협받고 있다. 요즘 소셜 미디어가 그 대안으로 대두하나 아직 불충분하다. 이런 때 가장 시급한 건 역시 집단지성과 함께 예술적 상상력이다.

비빔밥 정신으로 유례없는 민주주의 창안

 2008년 6월 10일 찍은 시청 앞 광장 촛불대행진장면
2008년 6월 10일 찍은 시청 앞 광장 촛불대행진장면김형순

우리는 2002년 월드컵응원에서도 그랬지만, 2008년 촛불상상력을 통해 선과 악을 구분하는 서구적 이원론이 아니라 나의 선에도 악이 있고 남의 악에서 선이 있다는 포용적 일원론에 근거해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이고 평화로운 시위방식을 창출했다. 이런 정신은 국내 정치뿐만 아니라 남북관계, 세계평화 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제 이야기를 맺자. 백남준은 그 시절에 3000년대를 종종 언급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지금 한반도는 시대와 소통단절이다. 정치민주화에서 경제민주화로 가야 하는데 역행하고 있다. 문화의 민주화는 꿈도 못 꾼다. 하지만 백남준이 선보인 비빔밥 정신과 예술적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세계사에 전후 무후한 새로운 민주주의를 창안할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 [최재영 사진전 '백남준 굿' 소개] 갤러리 아트링크(www.artlink.co.kr)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17-6 전화(738-0738)에서 2011.01.20부터 2011.02.13일까지. 1990년 7월 20일 백남준이 갤러리현대뒷마당에서 예술적 동지인 요셉 보이스를 추모하는 굿판사진을 선보인다


덧붙이는 글 [최재영 사진전 '백남준 굿' 소개] 갤러리 아트링크(www.artlink.co.kr)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17-6 전화(738-0738)에서 2011.01.20부터 2011.02.13일까지. 1990년 7월 20일 백남준이 갤러리현대뒷마당에서 예술적 동지인 요셉 보이스를 추모하는 굿판사진을 선보인다
#백남준 #문성근 #조기숙 #국민의 명령 #비빔밥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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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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