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잊는 것은 반역이다"

<일제강점기> 2쇄에 붙이는 글

등록 2011.01.30 15:34수정 2011.01.3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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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나방은 제 무리가 불에 타죽는 것을 빤히 보고도 불에 뛰어들다가 같은 처지가 된다. 파리도 마찬가지다. 파리통에 새까맣게 빠져죽은 제 무리를 보고도 꾸역꾸역 그 통에 들어가 똑같은 처지가 되고 만다. 이처럼 하등동물은 지혜나 학습이 없기 때문에 거듭 시행착오로 제 목숨을 잃고 만다.

그러면 고등동물인 사람은 어떤가. 전임 대통령이 무리한 장기 집권 끝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것을 보고도 자기만은 예외라고 같은 길을 거듭하다가 똑같은 최후를 맞은 이가 있다. 또 고급 공무원이 비리로 교도소에 가는 것을 보고도 각성치 않다가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단면이었다. 이는 곧 역사의식이 부족하거나 없었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다.


이른바 선진국일수록 역사를 아끼고, 사랑하며, 올곧게 기록해 쌓아가고 있다. 한 역사학자는 "영국 사람은 역사를 아끼며, 프랑스 사람은 역사를 감상하고, 미국 사람은 역사를 쌓아간다"고 말했다.

그들은 사소한 것이라도 역사 자료를 아끼고 보존해 원형을 손상치 않고자 한다. 심지어 그들은 건물의 먼지를 닦는 것조차도 주저한다. 그들은 조상의 어둡고 부끄러운 역사도 있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후손들에게 바른 역사를 일깨워준다.

내가 역사현장 답사 길에서 만난 한 사학자(박창욱 연변대 교수)는 "과거를 잊는 것은 반역이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이는 역사를 모르면 하등동물처럼 거듭 시행착오를 범하거나 역사의 시계침을 되돌려 놓기 때문일 것이다.

강제징용자 신체검사장 1939년부터 일제는 조선인들을 강제로 징용하여 그들의 전쟁터로 내몰았다. <일제강점기 564쪽>
강제징용자 신체검사장1939년부터 일제는 조선인들을 강제로 징용하여 그들의 전쟁터로 내몰았다. <일제강점기 564쪽>눈빛출판사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교훈


우리는 일본을 '왜(倭)' '왜국(倭國)'  '왜구(倭寇)' '쪽바리' 등으로 업신여기면서, 지난날 우리 문화를 그들에게 전수해준 우월감에 도취하여 살았다. 우리가 일본을 얕보는 새 그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고,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 등 서구에서 입수한 무기제조 기술로 조총을 만들어 대륙 정벌의 야욕을 불태웠다.

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전쟁이 일어날 기미를 감지하고서도 전혀 대비치 않다가 일본이 쳐들어온 지 불과 20일 만에 수도 한양을 내주고 선조 임금은 도망치기에 바빴다. 곧 평양까지 점령당하자 선조 임금은 허겁지겁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로 몽진(蒙塵, 임금이 난리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떠남) 가려고 했다.


그때 충신 서애 유성룡이 임금의 앞길을 막았다.

"전하께서 우리 땅을 한 발자국이라도 떠나신다면 조선 땅은 우리 것이 안 될 것이며, 후일 백성들을 어찌 보려고 하십니까? 지금 동북의 여러 도가 남아 있고, 머지않아 호남지방에 충의의 선비들이 봉기할 것인데, 어찌 경솔히 명나라에 가십니까?"

유성룡의 충간에 압록강을 건너려던 선조의 몽진 행렬은 멈췄지만, 전란에 죽어가는 백성들의 안위보다 제 목숨 구걸에 급급한 못난 임금이었다.

1592년에 일어난 7년간의 임진왜란은 당시 조선 인구 500만 가운데 약 300만이 희생된 우리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전쟁이었다. 왜군의 총칼에, 돌림병에, 난리 중 먹을 게 없어 굶어 죽었기 때문이다.

이런 참혹한 전란을 겪고도 조정은 당쟁과 사화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다시 1636년 병자호란을 맞았다. 인조 임금도 허겁지겁 남한산성으로 몽진을 갔으나 곧 청군에 포위되고, 백성들은 청군의 칼날에 도륙을 당하거나 젊은 여자들은 청군의 군막에 붙잡혀가 성 노리개가 되었다.

하는 수 없이 인조 임금이 한강나루 삼전도에 나아가 청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부딪치게 하는 삼배구두의 예를 올리며 항복 문서를 바쳤다. 그때 수많은 여자들이 청나라로 붙잡혀 갔는데, 나중에 그들이 돌아오자 '화냥년[환향녀(還鄕女)]'이라고 돌팔매질한 그 잘난 이들이 '사대부', 곧 양반들이었다.  

일제 종군 위안부들 일본이 태평양전쟁 당시 남양군도까지 세력을 넓혀가다가 패전했을 때, 미군에 포로가 된 한국인 출신 종군위안부들<일제강점기 607쪽>
일제 종군 위안부들일본이 태평양전쟁 당시 남양군도까지 세력을 넓혀가다가 패전했을 때, 미군에 포로가 된 한국인 출신 종군위안부들<일제강점기 607쪽>눈빛출판사

우리 백성들은 대부분 근현대사에 무지하다

1999년 여름, 내가 항일유적답사로 중국 동북삼성 하얼빈을 찾아갔을 때다. 하얼빈 동포사학자 서명훈 선생의 안내로 나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지 하얼빈 역 일대를 살펴본 뒤, 안 의사가 임시 유치된 하얼빈 총영사관과 동북열사기념관에 갔다.

나는 거기서 동북항일연군의 한 장군(허형식)을 만나고는 기쁨과 함께 큰 충격을 받았다. 뜻밖에도 그분이 내 고향 출신이라는데 작가로서 말할 수 없이 기뻤다. 허 장군의 당숙은 구한말 13도 의병 군사장으로, 서대문 감옥에서 제1호로 순국한 왕산 허위 선생이고, 그 어른을 기념하고자 동대문에서 청량리 길을 '왕산로'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도 그제야 알고는 쥐구멍을 찾고 싶도록 부끄러웠다.

그때 나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이대부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어느 하루 대학 수시 입시에 전형한 학생이 다음날 등교하였는데 표정이 밝지 않았다. 그 까닭을 묻자 입시 면접관이 '윤봉길 의사'에 대해 물었는데, 답을 제대로 못했기에 때문이라고 했다. "얘, 너 그것도 몰랐니?"라고 꾸짖으려다가 순간 그 잘못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고는 입을 닫았다.

우리 기성세대들은 아이들에게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는 그들이 역사를 모른다고 꾸짖는다. 그들이 쉽게 읽을 책도 마련해 주지 않고서는 역사에 대한 배움이 적다고 그들을 탓한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최근 100년 전후의 현대사는 제대로 배울 수도 없었고, 배우지도 못했다. 솔직히 나는 내 고향 출신 구미시 임은동 왕산(旺山, 허위 선생) 일문의 찬연한 항일역사는 전혀 모른 채 50여 년을 살았다.

이 부끄러움이 내가 정년을 5년 남기고 스스로 교단을 떠나게 한 계기였다. 그로부터 10여 년 간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 곳곳의 현대사 유적지를 기웃거렸다. 그리고 학자들이 애써 남긴 많은 역사책의 책장을 넘겼다. 그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러던 중 찾은 내가 할 일은 현대사 현장을 찾아간 이야기와 그 역사 현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이를 기록한 역사를 좀 더 쉽고 현장감이 있게 써서 사진과 함께 젊은 세대들에게 전해 주는 것이었다. 마치 어미닭이 모이를 찾아 이를 잘게 쪼아 병아리에게 먹여주듯 그런 역할을 나는 하고 싶었다.

<일제강점기> 표지 식민통치기의 우리 민족 수난과 저항의 역사를 767쪽 800여 컷의 사진으로 엮었다.
<일제강점기> 표지식민통치기의 우리 민족 수난과 저항의 역사를 767쪽 800여 컷의 사진으로 엮었다.눈빛출판사
이렇게 하여 10여 년간 펴낸 책이 <항일유적답사기> <누가 이 나라를 지켰을까> <영웅 안중근>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한국전쟁Ⅱ> <일제강점기> 등이다.

특히 일본의 대한제국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이하여 2010년 8월 29일에 펴낸 <일제강점기>는 1910년 8월 29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35년에 이르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연대기 형식의 종합보고서다.

곧 일제강점기를 연대별로 '정치·행정' '사회·경제' '문화·생활'로 분류하여 800여 점의 시각적 사료를 실어 일제강점기의 진실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자 노력했다.

그뿐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였던 사람뿐만 아니라, 강제징용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최근 사진과 함께 실어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현재 진행형임도 밝혔다. 

지난 아픈 역사를 똑바로 안다면

내가 이 책을 집필하면서 내내 가슴 뭉클한 점은, 자료를 뒤적일 때마다 나라를 빼앗긴 우리 선열들이 일제강점기 내도록 단 하루도 항쟁치 않은 날은 없었다는 점이었다. 선열들은 나라 안팎에서 갖은 시련 속에서도 줄기차게 일제에 항거하다가 목숨을 잃어버렸다.

그 기록들을 읽어가면서, 또 역사 현장에서 그 자취를 살펴본 기억들을 되살리며, 그 어른이나 후손들을 직접 만난 추억들을 반추하며, 이 책을 엮었다. 사실 이 책은 내가 직접 지은 게 아니라, 이런저런 문헌을 뒤적이며, 거기서 자료를 뽑아 젊은 세대가 알기 쉽게 가다듬어 엮은 데 불과하다.

이 책 집필을 집필하는 도중 일제강점기의 창씨개명, 일어상용, 신사참배, 강제 징용 징병, 정신대 등의 자료를 보고는 일본의 야만과 부도덕에 분노치 않을 수 없었다.

오늘도 인천공항이나 부산 국제여객터미널부두에는 여행객들이 하루에도 수만 명씩 일본으로 드나들고 있다. 이런 국제화시대에 우리는 구원에 불구대천의 원수로만 일본인을 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난날의 한일 간 역사를 똑바로 안다면 다시는 일본에게 치욕을 당하는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현명한 백성들은 후손을 위해 역사를 올곧게 기록하고, 후손은 조상이 남긴 역사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배우고 다음 세대를 위해 이를 보존한다.

마침 <일제강점기>를 펴낸 준 눈빛출판사에서 그새 1쇄가 모두 매진되어 2쇄를 발간하였다는 반가운 소식을 며칠 전에 통보받았다. <일제강점기> 2쇄에 붙여 독자 여러분에게 고마운 마음과 함께 치욕의 일제 35년의 뼈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한 훈장의 애끊는 마음을 우리 백성 모두에게 알리는 바다.

일제 강점기 보물찾기 1~3 세트 - 전3권

곰돌이 co. 글, 강경효 그림,
아이세움, 2017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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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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