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이는 몰락한 중인의 딸로 소격서에서 춤추는 계집이었다. 생김새가 고와 대비전에 데려온 것은 장차 쓰임새가 많을 것이라고 한 사포(司圃) 일을 하는 시종별감의 추천이 한몫 거들었다.
"대비마마, 저 아이는 청계천의 위항에서 데려왔으나 몸을 움직이는 게 미인계를 쓰기엔 다시없는 골격을 지녔습니다. 중원에서 쓰는 색계(色計)는 '부보(鳧步)'를 걷는 데에 자연스러워야 함을 유념하옵소서."
부보는 오리걸음이다. 조선과는 달리 중원은 잦은 전쟁으로 전족(纏足)을 한 여인들이 피해를 입었다. 여인이 귀했던 당시의 사정으로 본다면 발을 칭칭 동여 매 함부로 도망칠 수 없게 한 탓에 피해를 입었지만, 이것은 칭칭 감은 발이 괄약근을 긴축시켜 방사(房事)에 효험을 갖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그것이 조선 땅에 퍼져나간 초승달 춤이란 '신월무(新月舞)'다.
그래서 유곽에선 무희(舞姬)를 뽑을 때 발아 작고 가는 여인을 골랐다. 발이 작으면 평범하게 걸을 수 없다. 조선 여인들도 버선을 신었기에 중심을 잡으려면 요리 조리 몸을 흔들어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러다보니 상체와 허리 하체가 따로 따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게 오리걸음이란 부보다. 오리걸음을 걸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그건 괄약근의 응집력이 강해진다. 한마디로 오므리는 힘이 뛰어나 방사를 치르면 사내에게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을 주는 반조현상을 일으킨다.
중원에선 이 방법을 미인계로 사용해 사내를 침몰시키는 강력한 계책으로 인정받았다. 그래서 대비전의 시종별감은 사포 직에 있음을 기화로 사월이를 강력히 추천했었다.
"대비마마,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소인은 궁에 몸담으면서 좋은 일에 나서는 가례색별감(嘉禮色別監)이었나이다. 왕실의 혼사가 있을 때 소인이 나선 것을 어찌 손으로 꼽겠나이까. 마마, 겉으로 아무렇지 않게 보이는 나뭇가지여도 어떤 건 쉬이 부러지고 어떤 건 삼 줄보다 더 질긴 생명력이 있나이다. 소인은 그걸 가려내는 좋은 눈이 있사옵니다."
내명부에서 큰소릴 내려면 남들보다 빼어난 계집을 가려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했다. 용모가 한자릴 차지하지만 그보다 '잠자리 기술(薦枕)'이 으뜸이어야 했다.
"대비마마, 사내들은 천하를 정벌하려는 욕심이 있습니다만, 미인에겐 그런 사내를 녹여낼 수 있는 비책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색곕니다. 이러한 책략에 사용하는 여인을 구할 때엔 무엇보다 '오리걸음'을 걷는 여인이 제격입니다."
"사월이 저 아이가 미인계로서 적임이라?"
"그러하옵니다. 좌승지 민경호가 사은사 행렬을 따라 청나라에 가는 건 이유가 있을 것이오니 그 자의 집에 사월이를 보내 민경호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알아오게 하심이 옳은 줄 아옵니다."
그렇게 하여 민경호가 임시로 머문 마른내길로 사월이를 보내 그의 마음을 훔쳐오게 했다. 물론 잠자리 시중을 들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그는 뜻밖에도 계집의 속살 더듬는 일엔 관심이 없었다. 용인에 사는 그의 딸이 한양에 다니러 와 밤늦도록 얘기를 나누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월이는 귀가 솔긋한 얘길 엿들었다. 숭인동의 운조루(雲鳥樓)에 관한 일로 벼슬길에 나간 지 얼마 안 된 때였으니 민경호가 기억하기엔 이십 년도 더 된 일이었다.
꿈이었다. 물안개가 감실거리는 이름 모를 어느 포구에서 허연 턱수염을 새벽바람에 나풀거리며 바람을 타고 촌로가 다가오더니 사내를 깨웠다.
"나으리, 잠시 일어나십시오."
"노인장은 날 아시는가?"
"아다 뿐입니까. 참으로 죄송합니다만 워낙 화급한 처지라 이렇듯 화촉동방까지 찾아뵈었습니다."
그제야 사내는 실감했다. 비몽사몽간에 자신의 꿈을 더듬어 가고 있었지만, 분명 지난밤 어여쁜 박씨 처녀를 신부로 맞아 신혼 첫날밤을 지냈었다.
'지금은 꿈인가?'
아무려면 어떠랴 싶었다. 생시면 어떻고, 꿈이면 어떠랴 싶었다. 한데 무슨 일로 자신의 꿈길을 노인이 찾아왔을까? 궁금해진 사내의 눈길이 촌로를 더듬었다.
"나으리의 장인 되시는 승정원의 지신사(知申事) 어른은 머잖아 큰 사건에 연루돼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러니 처가 출입을 삼가십시오. 그렇지 아니하면 나으리의 처지도 어렵게 됩니다."
"그대는 나의 수호신인가?"
"아닙니다. 일개 시골 노인에 불과합니다."
"하면, 그 같은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나를 찾아 왔는가?"
"그렇긴 합니다만,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뭔가?"
"부디 나의 자식들을 살려 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인가?"
"나으리만이 노부의 두 자식을 살릴 수 있습니다."
솜털 안개가 피어오르며 노인은 자취를 감추었다. 깨어 보니 꿈이었다. 꿈길에서 너무 놀라 비명을 질렀는지 어느덧 신부도 자리에서 깨어 있었다.
"어찌 그러십니까?"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오. 한 노인이 내 꿈길을 찾아와 자기 자식들을 살려 달라지 않습니까. 그것도 두 형제를."
신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멈칫대더니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사실은 서방님 드리려고 자라를 사 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언뜻 듣기엔 세 마리라던데요."
신랑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부엌으로 달려갔다. 과연 신부 말처럼 부엌 항아리엔 신랑의 기력을 돋우기 위해 구해 놓은 세 마리의 자라가 있었다. 자리가 워낙 비좁아 두 마리는 기력이 다한 듯 둥둥 떠오른 상태였다.
뒤미처 부엌으로 들어온 부인에게, 꿈길에서 있었던 자초지종을 신랑은 털어놓았다. 신부가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살려줘야지요, 서방님. 하찮은 미물이라지만 오즉 했으면 서방님 꿈길을 찾아왔겠어요."
신랑은 부인과 함께 새벽 일찍 강으로 나가 자라를 놓아주었다. 가물대는 두 마리는 금방 물속으로 사라지고 한 마리는 주위를 한동안 맴돌다 사라졌다.
신랑의 이름은 민경호였다. 슬하에 두 아들과 딸을 두었는데 아들들은 오래 전에 집을 떠나 청나라에 있었고, 집안엔 병약한 딸아이 미원(美黿)이가 지키고 있었다. 사은사로 청나라 길을 떠나는 부친은 딸에게 신신당부를 하는 것이었다.
"얘야, 내가 네 오라비들의 말에 따라 운조루에 있지 않고 마른내길에 있었던 건 그 터에 복이 일어나려면 왕실의 높은 분이 집터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날이 오면 어떻게든 네 어미의 유골을 몸채의 마룻장 밑에 묻어라. 묻는 자리엔 동경(銅鏡)이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아낼 것이다. 그리하면 병약한 네 몸을 고칠 수 있고 좋은 신랑감을 만나 흥성한 가문을 이룰 것이다."
민경호가 청나라 길을 떠나자 부모의 유골을 운조루로 가져왔다는 사월이의 얘기에 대비는 더욱 격노했다.
"네 요년! 어디서 요망한 말을 멋대로 주절대느냐. 네 년을 미치광이 유학자에게 보낸 건 허망한 말을 퍼뜨리는 미치광이 들의 돼먹지 않은 음모를 자세히 듣고자 했거늘 네 년이 오히려 그 자의 꾐에 떨어졌지 않으냐! 네 년을 어여삐 여겼더니 오히려 나를 기만했더냐?"
"아니옵니다, 마마. 쇤네가 마룻장 밑에 들어간 건 아비의 유골을 묻으려는 게 아니었나이다."
"허면?"
"쇤네는 마룻장 밑에서 동경(銅鏡)을 찾고 있었나이다."
"무어라, 동경을 찾아?"
"예에, 조선의 선비들이 깜짝 놀랄 비밀이 동경에 숨어 있다 하였나이다."
"치워라, 이년! 어디서 돼먹지 않은 수작이냐! 나의 손끝에 인정이 묻어나니 요망한 말을 멋대로 주절대느냐! 여봐라, 내수사(內需司)의 추내관은 어디 있느냐! 요년을 끌어내 당장 물고를 낼 지어다!"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대비는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금방이라도 찬바람이 쏟아질 듯 냉기어린 눈빛이었다.
"주상에게 돌아가 말하라. '구름과 새가 머무는 곳'이 운조루(雲鳥樓)라? 내 아무리 힘이 없어 뒷전으로 물러났지만 한가하게 구름이나 새와 지낼 수 없다 하게! 이곳도 청나라로 떠나는 미치광이 유학자에게나 되돌려 주라 하시게!"
정순왕후는 아랫것들이 준비한 가마를 타고 이내 대비전으로 돌아와 버렸다.
[주]
∎내수사(內需司) ; 왕실의 사유재산을 관리하던 곳
∎가례색별감(嘉禮色別監) ; 시종별감. 왕실에 혼사가 있을 때 주관해 왔었다.
∎운조루(雲鳥樓) ; 명당으로 알려진 집터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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