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1일 방송간담회 발언에는 정치권과 언론을 불신하는 평소의 생각이 물씬 배어 나왔다.
이 대통령은 협소한 인사 풀을 지적하는 정관용 한림대 교수의 질문에 "나는 일 중심으로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에 추진력이 있어야 하고 뜻이 같아야 한다"며 "정치는 각자 의견이 있지만, 정부는 하나의 팀워크로 일을 해야 하니 팀워크 맞는 사람을 발탁할 수 있다"고 자신의 인선 기준을 설명했다.
"인사가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지금 같은 청문회를 통과하려면 앞으로도 시간이 정말 많이 걸릴 것 같다. 우리 데이터에 들어간 사람들은 대부분 힘들다"고 답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후임 감사원장 인선과 관련해 "감사원장으로서 일할 수 있고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할 사람을 찾는 게 만만치 않다"며 "내가 부탁해도 '청문회 나가서 가족과 집안이 다 공개되는 것이 싫다'는 사람이 있다. 두 분도 필요하면 추천해 달라"고 주문했다.
인사 문제를 추궁하는 사람에게 "마땅한 인물을 추천해 달라"고 되묻는 것은 청와대 사람들의 대표적인 어법이다. 각료인선의 실무 총책임자인 임태희 대통령실장도 지난달 24일 국회를 찾은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여러분이 후보자를 비공식적으로라도 추천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국민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킬 사람을 찾기 어려운 사정을 몰라주는 것에 대한 서운함이 배어 있는 표현이다.
또한 이 대통령은 "지난 정부 중반에 한나라당 요청으로 법이 생겨 이번 정부부터 청문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며 청문회 제도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대통령이 된 다음 청문회를 보니까 상임위원장이 여당인 곳은 통과되고 야당이 상임위원장인 경우 한 번도 통과를 못 시켰다. 청문회는 필요하지만 방식을 조금 보완하면 좋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다. 여야 대치 상황에서 사실이 아닌 것도 지나치게 공격하면 본인들에게는 상처가 된다. 몇 번 청문회 거치면서 (이런 점을) 불안하게 생각하지만, 도덕적 기준을 높인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 대통령은 개인 신상은 국회 차원에서 조사하고 공개적인 청문회에서는 정책 검증을 하는 미국식 제도 개편을 언급하기도 했다.
"예산안 날치기 통과 이후 여야 관계를 녹일 해법이 없냐"는 물음에는 "여야 대표가 먼저 만나야 하는데, 걸핏하면 청와대와 대통령을 얘기한다. 조그마한 것만 나오면 대통령에게 사과하라고 하는데 여야가 우선 소통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최근 야당이 대통령의 해명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UAE 원전 수주' 논란에 대한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정관용 교수가 "국회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여권 핵심이 개헌 얘기를 하는 것은 뺨을 세게 때려놓고 얘기하자는 것 아니냐?"고 묻자 이 대통령은 "나는 예산안 처리한 것을 그렇게 얘기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G20의 어느 정상이 '대한민국에서 어떤 것은 표결하고, 어떤 것은 표결 없이 하는 게 있냐'며 아마 미디어법 때 국회에서 때려 부숴서 그 사람들이 착각한 것 같다"고 비꼬았다.
이 대통령은 "국회가 국회법을 바꿔서라도 법정기한 내 통과시키도록 합리적으로 하는 게 좋다"며 "그 짧은 시간에도 여야가 각자 개인의 예산은 안 빼고 다 넣는다"고 여야의 실세 정치인들을 싸잡아 공격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10년간 야당해서 여당이 어떻게 해야할지 착각"
이 대통령은 개헌 문제와 관련해 "17대 국회부터 연구해놓은 것이 많다. 여야가 머리 맞대고 얘기하면 그리 어려울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에 개헌을 얘기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어느 대통령이든 당선되자마자 개헌부터 하자는 사람이 없다. 내가 취임한 해 9월 리만브라더스 금융위기가 왔는데, 대통령이 개헌하자고 나설 수 있나? 지금은 G20 회의도 하고 국격도 높아져서 작년 8·15에 제안한 것인데, 굉장히 빨리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7개월 전에 했으니 늦은 감이 있다."
개헌에 회의적인 민주당과 한나라당 박근혜계를 동시에 겨냥한 발언도 나왔다. 이 대통령은 "누구든지 국가를 위해서 마음을 열면 그런(당리당략)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 국가가 어떻게 되든 나는 이래야겠다고 생각하면 해결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의 낙마로 대통령이 화냈다는 얘기도 있다"고 하자 "당·청 관계가 그것 때문에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언론보도가 너무 과거의 잣대로 보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사태의 책임을 여당에 떠넘겼다.
"사실 정동기의 경우는 사전에 하지 못하고 당이 먼저 발표해서 혼선이 온 것이다. 당도 그걸 인정해야 한다. 당·청이 책임을 공유해야 하는데 아마 지난 10년 동안 야당을 해서 여당이 어떻게 해야할지를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볼 때는 그걸로 인해 (관계가) 손상되고 상처 입은 것은 없다."
이 대통령은 "지방선거 이후 청와대에 국정을 맡겨두면 안 된다는 얘기도 있다"고 하자 "정치권에서는 무슨 얘기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은 과학벨트 대선공약 파기 논란에 대해서는 "그 당시에 여러 가지 정치적 사항이 있었다. 제가 충청권 선거 유세에서 표 얻으려고 관심이 많았다"고 정치적 득실에 따라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음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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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조그마한 것만 나오면 대통령에 사과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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