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몽고 지역(붉은색 표시. 한반도 보다 5배 이상 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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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몽고는 인구도 적은데다 면적은 한반도의 5배 이상. 아직 일본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일본은 농사짓기가 좋은 한반도에 자국의 농민들을 대거 이주시키려는 정책을 펴고 있는 중이었다. 농토를 빼앗긴 한국 농민들은 결국 만주나 시베리아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소련의 동진과 남하를 저지해야 할 일본으로서는 내몽고에서 한인들이 그 방패막이가 돼준다면 이거야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이 의견은 박용만이 하얼빈의 일본 영사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도 이미 제시한 바 있었다. 즉 보고서 중 연경야화(2)의 적화방지 방책으로 "나의 우견으로서는 일본은 차라리 조선인민을 지휘해 출동하여 러시아를 정벌할 임무를 져서 시베리아의 동부를 숙청하는 것이 제일의 양책으로 고찰된다"고 의견을 적은 것이다.
이것은 먼저 일본측에 그 다음은 중국측에 제시할 수 있는 그럴듯한 구실이었다.
박용만의 속내는 그렇게 해서라도 한인들의 둔전병을 양성할 가능성을 추구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였다. 중국의 군벌들 역시 많은 병력의 사병을 유지한다는 것이 버거운지라 별도의 지출을 통해 새로 양병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해서 자기 밑천이 안 드는 군사력을 변방에 만들어두는 것도 나쁠 것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일본측이나 중국측이나 저울질이 많이 필요한 제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펑위샹 장군, 조선을 좀 도와주십시오." "어떻게 도와드리면 된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조선 출신 서왈보 소령이 너무 훌륭한 군인이라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던 중이지요." 역시 풍옥상은 크리스천이어서인지 '돕는다'나 '감사한다'는 낱말들이 입술에 붙어 있었다.
"펑 장군,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다음 그 핍박은 말할 수 없소. 무엇 보다 일본에서 건너오는 농민들이 조선의 농토를 야금야금 빼앗고 있소. 쫓겨난 조선 농민들은 갈 데가 없어 만주로 넘어올 수밖에 없었소. 그런데 3년 전 '간도참변'을 일으켜 대학살을 하는 바람에 수만 명이 목숨을 잃어야 했소." 김규흥이 비감조로 나직이 말하자 풍옥상은 거대한 상체를 약간 앞으로 내밀고 진지한 표정이 됐다.
"일본의 야만적인 행동은 들어서 알고 있소.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마귀들이요.""그래서 한인들이 일본의 공격을 덜 받을 수 있는 내몽고 지역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글쎄요. 그게 꼭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정착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들 것 아니오?" 이때 박용만이 끼어들었다.
"펑 장군. 저희들 생각부터 말씀 드리지요. 일본은 소련의 공사주의가 팽창하는 것을 무엇 보다 주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장군께서 소련과 만주 사이에 있는 내몽고 지역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자고 일본측을 떠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니까 내몽고 요소요소에 새로 민병대촌을 조직하게 할 테니 일본에서 원조를 해줄 수는 없느냐고 말이지요. 그러니까 민병대촌이 정착될 때까지 영농자금을 대주고 또 군사훈련도 맡아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것이지요."풍옥상은 1926년서부터 공산주의에 호감을 갖고 접근하게 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박용만은 얘기를 계속했다.
"펑 장군. 문제는 내몽고 지역이 광활한데 비해 인구가 턱없이 적다는 것을 일본측도 잘 알고 있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만주에 출병한 관동군은 물론 조선총독부의 의견도 타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일본 농민들을 조선으로 끌어들이고 조선 농민들을 쫓아내야 하는 게 조선총독부입니다. 그래서 내몽고의 부족한 인력은 조선총독부에서 조선 농민들을 집단이주 시킴으로써 메울 수 있지 않겠느냐고 알아보자는 겁니다. 대신 군사훈련은 관동군에서 맡는다고 하면 총독부도 관심을 가질지 모릅니다. 현재 일본 경찰이나 헌병은 한인들을 많이 부하로 거느리고 있으니 한인들을 통솔하는 방법도 어느 정도 터득했을 줄 압니다." "알겠소. 참모에게 연구를 해서 추진하도록 조치하겠소." 묵묵히 듣던 풍옥상의 대답이었다.
그해 10월 박용만은 풍옥상의 밀사가 돼 서울로 갔다. 내몽고에 한인 둔전병촌을 설치하려는 밑그림은 감춘 채 그 정지작업을 위해 밀행한 것이다. 마고자와 스커트 비슷한 중국식 복장을 하고 중국인 여권을 가졌으니 영락없는 중국인이었다. 어디까지나 풍옥상이 보낸 밀사로서 총독부 관리들을 상대하는 임무를 띠고 떠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