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지기 직전 모습쓰러지기 직전 잠시 누워있는 모친. 아파서 누워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픈 것 눈치챘으면 뇌경색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친께 죄송하다는 생각 뿐이 없다.
김철관
젊었을 때부터 어머님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강인했습니다. 쉴 새 없이 농사일을 했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를 갔습니다. 쌀, 고구마, 콩, 감자, 오이, 보리, 깨, 옥수수 등을 혼자 재배해 서울에 있는 자식들에게 보내 주기도 했습니다. 어떨 때는 재배한 농작물들을 직접이고 짊어지고는, 서울까지 왔습니다. 물론 고속버스를 타고 온 것이지요. 불과 7년 전의 일입니다.
지난 7년 전부터 경기 남양주시로 모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은 잠시 쉬지를 않았습니다. 인근 놀이터에 있는 생수를 떠 날렸고, 은행을 주웠고, 인근 길가에서 쑥을 캐 오기도 했습니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한 때 경기 안산 작은형 집으로 잠시 갔었는데, 거기에서도 모친은 소일거리로 박스를 주워 몇 푼을 벌었다고 합니다.
갑자기 바쁜 농촌생활에서 한가한 도시생활로 환경이 바뀌다 보니, 적응하기가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작년 7월 3일(음력 5월 22일)은 의미 있는 날이었습니다. 84회(1927년 정묘년 생)를 맞는 모친의 생일이었습니다. 마치 그날이 안산 형의 아들(조카)이 군대를 가 첫 번째 면회를 가는 날이기도 합니다. 모친을 모시고 봉고차를 타고 면회를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