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메르 3권이 책은 지난 2003년 11월부터 2004년 8월까지 <오마이뉴스>에 <수메리안>이란 이름으로 연재한 장편소설을 거의 5년에 걸쳐 새롭게 고쳐 쓴 고대 우리 민족 이동사를 되찾는 역사소설이다
이종찬
오늘날 '민주주의'는 소머리국 정치제도가 그 뿌리다 "아흔아흐레째가 되는 날이었다. 일행들이 들에서 쉬고 있을 때 신께서 환웅에게 가까운 마을에서 전쟁이 벌어졌으니 어서 가서 중재를 하라고 이르셨다. / 그곳으로 달려간 환웅은 폐허를 목격했다. 마을의 가옥들은 불타거나 무너졌고, 주민들은 모두 꿇어앉아 있었으며, 돌과 막대기를 든 갓옷 입은 사내들과 족장과 그 가족들을 징치하는 중이었다. 환웅이 소리쳤다. / '멈춰라!'"-제1권 '서장' 몇 토막한민족 대서사시 <수메르> 제1권 '한민족의 머나먼 원정길'은 환족이 삶터를 잡은 소호국 태왕으로부터 왕자로 뽑힌 조카 엔릴이 이민족 침입을 받은 같은 민족인 '딜문'(딛을문)을 구하기 위해 원정에 나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엔릴은 이 원정에서 스스로 역할에 눈을 뜨고 딜문을 정벌한다. 그 뒤 5개 도시를 차례차례 합치며 소머리국(수메르국)이라는 나라를 세운다.
"길가메시는 무엇보다 도시에 만연한 패배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염두에 두었던 홍익사상을 새로이 시민들 마음속에 뿌리내리게 할 기회는 바로 지금이라고 여겼다. 그가 이런 생각을 굳힌 건 동방을 여행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건강한 국가에는 예의지국, 홍익과 제세이화(민본정치) 사상이 성숙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제2권 '우크라 왕 길가메시' 몇 토막제2권 '영웅 길가메시의 탄생'은 기원전 2812년부터 126년 동안 수메르 수도 우르크를 다스린 길가메시가 겪는 삶을 들추고 있다. 길가메시는 가끔 백성들로부터 원성을 사지만 엔키두를 만나면서 스스로 깨치게 된다. 길가메시는 분신 같은 엔키두와 함께 괴물 후와와와 싸우며 스스로 힘을 키우지만 엔키두가 죽자 죽음이라는 문제에 깊이 빠진다.
"놈이 왕정체제를 선포했을 때도 우린 그렇게 믿었어.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밤마다 벽보를 붙이면서도 다음 날 새벽이면 새 세상이 올 것으로 기대했어. 시민들이 구름처럼 일어난다면 루갈란다를 몰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린 선동을 했어. 시청 앞으로, 시청 앞으로! 이튿날 아침이면 대다수 벽보는 사라지고 없었어. 그럼에도 4, 5백 명쯤 모인 적이 있었지. 당장 군인들이 포위하더군."-제3권 '신전과 사제' 몇 토막제3권 '인류 최초의 도시혁명'은 말 그대로 인류 최초 도시혁명가 우루카기나와 그 동지들이 민주혁명으로 나아가는 길을 더듬고 있다. 우루크에 별을 연구하는 사제로 가 있던 우루카기나가 고향인 라가시로 돌아온다. 라가시는 왕인 루갈란다가 저지른 폭정으로 도시 곳곳이 어지럽게 무너져 있다. 우루카기나는 역사클럽 친구들과 함께 평등, 평화를 내걸고 혁명을 이끄는데...
한민족 대서사시 <수메르> 1,2,3권을 읽고 있으면 오늘날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그 뿌리는 소머리국 정치제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이 소설이 탁월하다는 것은 바로 이 '민본정치'를 주춧돌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그대여, 이 소설을 읽어보라. 기원전 우리 역사와 지금 우리 역사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가를.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절로 입에서 튀어나오리라.
수메르 묘장제도와 순장은 고대 한국 풍습과 같다다음은 지난 1월 허리춤께 인사동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작가 윤정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수메르>를 쓰게 된 동기는?"1984년에 <교육신문> 여기자가 가져다 준 <수메르 역사>(문정창 저)라는 책을 읽었다. 처음엔 너무 엉뚱하고 놀랍다는 생각만 했다. 그러다 1998년 영국박물관에서 우연찮게 수메르 특별관에 갔다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숨이 멎는 듯 했다. 그때부터 수메르와 관련된 책을 죄다 구해 마구 읽었다."
- <수메르>가 한민족이 아닐 수도 있잖은가? 우리나라 학자들도 고개 흔드는 것 같다. "인종, 언어, 생활, 문화 등을 골고루 살펴볼 때 수메르의 뿌리를 지닌 건 한민족뿐이다. 수메르인들 스스로 '검은 머리 사람들'이라고 한 것이나 교착어와 청회색 토기를 사용하고, 순장풍습, 씨름 등 우리 민족의 원형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물론 수메르가 다른 민족과도 공통분모가 조금 있을지는 몰라도 그 원형은 다르다. 우리나라 학자들도 각성해야 한다. 세계 학자들은 수메르에 대해 엄청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학자는 거의 없다."
- 세계 학자들은 <수메르>를 어떻게 보고 있나?"미국의 언어학자 C.H 고든 박사는 '수메르인들은 동방에서 왔다. 그들이 메소포타미아로 들어갈 때 고대 문자식 기호를 가지고 온 듯하다'고 말했다. <브리테니커 백과사전>에는 수메르인들의 특징을 머리카락이 검고, 셈이나 함 어족과는 다른 교착어를 사용한다고 적혀 있다. 게다가 60진법과 태음력, 최고 지도자의 상징을 봉황으로 삼은 것도 한민족과 연결된다고 못 박고 있다."
- <수메르>에는 우리 학계에서 문제를 삼고 있는 <환단고기> <천부경> <삼일신고> 등에 실린 내용이 나오는데? "우리 학자들이 우리 고대사와 동양 고대사, 세계 고대사에 대해서 정말 깊이 있게 연구하고 있는지 의문이 간다.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책에도 수메르란 도시 이름이 나오는데 우리 학자들은 이를 어떻게 해석할 건지 정말 궁금하다. 특히 서양의 고대사 기록에는 <환단고기>에 적힌 내용과 같은 부분이 꽤 많다."
- <수메리안>을 <수메르>로 고쳐 펴낸 까닭은? "지난 2005년에 낸 <수메리안>은 수메르 자료를 정리하듯 글을 써서 소설이라고 하기엔 많이 부끄러웠다. 그동안 <수메리안>을 산 독자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하지만 다시 고쳐 쓰기로 독하게 마음먹었다. 첨엔 <수메리안>을 산 독자들이 원한다면 내가 <수메르>를 사서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출판사 측에서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수메르>를 보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