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9일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 참석한 뒤 한승수 국무총리와 함께 걸어나오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권우성
존경할 만한 전직 대통령이 드문 정치현실에서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의 'DJ 열공'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친이계의 'DJ 열공'이 성공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경향신문>도 지적했지만, 친이계의 DJ 조명이 결국 '가치'가 아니라 '정치공학' 탐구라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우선, 청와대가 정권재창출의 다양한 사례 중 하나로 DJ를 연구하는 것은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특임장관실에서도 'DJ 열공'을 한다는 것은 이율배반이자 형용모순이다. 이른바 '왕의 남자'인 이재오 특임장관은 야당 시절에 그 누구보다도 '김대중 죽이기'에 앞장선 'DJ 저격수'였다. 그런 사람이 'DJ 열공'을 한다는 것이 간계(奸計)가 아니라면 열공에 앞서 '고해성사'부터 했어야 했다.
설령 친이계의 'DJ 열공' 의도가 아무리 좋더라도 선의가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하물며 선의마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그 무엇보다도 그런 선의를 집행할 당사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DJ 열공의 결과물(제안)을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다. 그래서 친이계의 'DJ 열공'은 실패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친이계의 'DJ 열공'이 형용모순(形容矛盾)인 또 다른 까닭은 친이계가 '박근혜와 맞서기 위해 DJ를 배우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친이계의 좌장인 이재오 장관은 11일에도 "대선 2년 전부터 대통령이 다 된 것처럼 일하는 건 국민을 많이 피곤하게 한다"고 박근혜를 겨냥한 발언을 했다. 따라서 박근혜에 맞설 비책을 찾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YS(김영삼) 열공'을 할 것이지, DJ 열공은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YS는 어제(13일)도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사임하자 개인 성명 내 "사랑하는 조국에 군사쿠데타라는 죄악의 씨를 뿌린 원흉이 바로 박정희 육군 소장"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지난달 20일에도 "박정희가 이 나라 군사독재 정권의 원흉"이라며 "수많은 국민이 유신독재의 무자비한 탄압과 고문에 의해 비명에 죽어갔다"고 비판해 보수단체의 원성을 산 바 있다.
DJ의 관용과 화해의 리더십을 배워라친이계가 DJ 열공에서 배울 게 있다면, 그것은 DJ가 박근혜와의 관계 속에서 용서와 화해, 관용의 정치를 실천한 것이다. DJ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박정희와 화해하고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했다. 형식적으로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특별사면 건의를 YS가 받아들인 것이었지만, DJ의 관용과 화해의 리더십이 낳은 결과였다.
DJ는 박정희의 최대 정적이자 피해자였음에도 대통령이 된 뒤에 박정희 대통령기념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했다. 영남권의 '표'를 얻어 대통령기 되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니고, 대통령이 된 뒤에 역사와 화해하기 위해 한 행동이었다. 기념사업 지원은 '초법적'인 것이 아니고 법적 근거도 있었다.
DJ는 99년 4월 광역자치단체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박 대통령의 고향인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시민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념관 건립에 매칭펀드 형식으로 200억 원을 지원했다. 기념사업회는 DJ를 고문으로 위촉했다.
이후 기념관 건립은 기념사업회에 기부금 500억 원이 모이면 208 억원의 국고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하고 2002년 1월 착공됐으나, 기부금이 목표치에 미달한 108억 원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3월 보조금 지급이 취소됐다. 이후 지지부진하다가 지난해 7월 행안부가 박정희·김대중 대통령 기념사업추진계획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함에 따라 708억 원(사업주체 부담금 500억 원+국고보조 208억 원)을 투자해 서울 상암동에 2014년까지 기념관이 건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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