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단지
이민선
의사, 변호사, 검사, 판사, 요리사, 축구선수, 교사, 스튜어디스, 모델, 연예인, 아빠, 엄마...
요즘 아이들 꿈은 예전 아이들에 비해 참 다양해졌다. 딸 졸업식장에 가보니 아이들 장래희망을 사진, 간단한 신상명세와 함께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80년대, 그것도 농촌 아이들 장래 희망은 아무리 꼽아 봐도 열 손가락을 넘지 못했다.
영상으로 꿈을 소개하는 순서가 끝나자 봉인식을 했다. 아이들 장래 희망이 들어있는 단지 모양 함을 봉인하는 행사였다. 이 함을 30년 후에 개봉한다고 교장선생님이 힘주어 말했다.
30년 이라는 말이 귓전에 꽂혔다. 왜 30년 일까. 30년이면 꿈을 이루기에 충분한 시간일까! 아니면 30년이 지나도 꿈을 이루지 못했으면 실패했다고 단정지어도 괜찮아서일까. 30년 이란 말이 귓전에 박힌 이유는 이런 잡다한 궁금증보다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올해 꼭 30년 째기 때문이다.
30년 전 꾸었던 꿈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지만 아득하기만 하다. 어른이 되면 무엇인가 근사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만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은 보는 만큼, 경험만 만큼의 정보를 갖게 되는 것인데, 당시 농촌 마을 어른들 직업은 농사 밖에 없었다. 당연히 알고 있는 직업도 농사를 제외하면 몇 개 되지 않았고 그 몇 개마저도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는 알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어린 시절 누군가 장래 희망을 물어오면 참으로 난감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어른이 되면 농사를 짓겠다고 말 할 수도 없었다. 그 소리가 나오는 순간 어른들 입에서는 "예끼 이놈아 고작 꿈이 농사꾼이냐" 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이러니하게도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사는 농촌 마을에서 농사꾼을 가장 천한 직업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부모님은 입버릇처럼 "공부 열심히 해서 농사일은 하지 말라" 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농사일 말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라고는 가르치지 않았다. 아니 가르치지 못했을 것이다. 농사꾼 아들(딸)로 태어나 평생 농사만 지으시던 분들이 농사일 말고 다른 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